"획일적 일조권 규정이 국민을 범법자로 만들어"

조회수 2018. 3. 14. 20: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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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다양성과 창의성 존중하는 건축의 시대 도래..경제 논리에 갇힌 건축관 바꿔야"

“이제 대량 생산과 찍어내기가 주도하던 건설의 시대는 갔고, 건축의 시대가 왔습니다. 건축의 역할과 개념도 다시 돌아봐야 할 시점이죠.”


지난 8일 대한건축사협회 32대 회장으로 취임한 석정훈 태건축설계건축사사무소 대표. 그는 최근 땅집고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제는 얼마나 많은 집을 짓느냐 보다는 얼마나 안전한 집을, 얼마나 편안한 집을 짓는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대한건축사협회 제공

대한건축사협회는1965년 창립한 국토교통부 산하 법정단체로 한국건축가협회와 함께 대표적인 국내 건축인 모임이다. 석 회장은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 서울건축사회 회장을 거쳤고 임기는 3년이다.


석 회장은 인구가 줄고 건설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건설의 양보다는 질을 중요시하는 ‘건축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했다. 그는 “건설경기가 어려워졌지만 오히려 차별화된 건축물을 지으려는 건축사들에겐 기회”라며 “우리 자신을 좀 더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건축사는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켜”


석 회장은 지난해 경북 포항 지진과 여러 차례 발생한 화재 사고에서 건축사들이 조연으로 밀려나는 걸 보고 개탄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우리 건축사들의 소통능력이 없기 때문이죠. 사건이 터질 때마다 매스컴에 나오는 건 건축사가 아니라 구조기술사나 지질학자들인데 실제로 집을 설계하고, 짓고, 고치는 모든 작업을 하는 건 건축사인데 말이죠.”


그는 “의사는 생명을, 변호사는 인권을, 세무사는 재산을 지킨다고 한다면 건축사는 사람들의 안전과 재산을 담보하는 수호자”라며 “건축하면 아름다운 집처럼 문화적인 부분만 생각하는 인식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 회장은 건축사들도 스스로의 변화도 촉구했다. 그는 “건축사들은 개인으로 일을 하는데 익숙해져 있어 소통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며 “국민들과 소통하면서 안전에 대한 인식 제고, 건축 문화의 창달 같은 사회적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 건축사의 책임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석정훈 회장이 조직위원장을 지낸 2017 UIA 세계건축대회 행사로 진행된 건축 강의. /서울시 제공

■“오로지 경제 논리로 왜곡된 건축관”


석 회장은 현재 우리나라 건축 시장이 많이 왜곡돼 있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건축을 오로지 부동산 가치 상승 수단으로만 다루다보니 건축이 담보하는 삶의 질과 예술성, 창의성 등 숨은 가치를 무시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공간에 살면 사람들이 편하고 심성도 고와지죠. 반면 좋지 않은 공간에 살면 공격적이 되기 쉽고 삶도 팍팍해집니다. 우리나라엔 서민들이 사는 건축물에 철학이 없어요. 오로지 부동산 가치와 이익만 따지다보니 기본적인 삶의 질을 소홀히 여기고 있죠.”


건축계에 대한 국민 인식을 제고하고 시장을 바로 잡기 위해선 스타 건축사도 필요하다고 했다. 석 회장은 “건축 문화의 발전은 한 나라의 초석”이라며 “잘 만들어진 건물 하나가 도시를 바꾸고 국가 브랜드를 바꾸는 사례들을 수없이 봐왔다”고 했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런 건물을 보려고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온다”며 “우리나라 관광객이 한해 1500만~2000만명 가까이 되는데 건물을 보러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지은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조선DB

프랭크 게리(Gehry)가 지은 구겐하임 미술관은 매년 100만명 이상 방문객이 찾으며 철강업 쇠퇴로 침체했던 빌바오 경제를 되살렸다. 건물이 도시와 국가 브랜드를 바꾼 사례의 전형으로 꼽힌다. 안도 다다오는 산업폐기물 처리장이었던 나오시마 섬을 한해 30만명이 방문하는 문화의 섬으로 탈바꿈시켰다.


■“일조권 등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 개선도 필요”


시대에 맞지 않는 건축법규 개선 필요성도 강조했다. 대표적인 게 일조권이다. 그는 현재 일조권 규정은 많은 국민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요즘엔 생활패턴이 달라져 집에 하루종일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서 “획일적인 일조권 규제 때문에 건물을 무단 증축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 원룸·고시촌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이상빈 기자

집을 지을 때 이웃 대지 경계선까지 이격 거리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무조건 사방 1m로 하지 말고 대지 여건에 맞게 총량제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그는 “어떤 면은 0.5m만 띄고, 어떤 면은 3m까지 띄도록 하면 발코니 공간 등 다양한 공간을 꾸밀 수 있다”면서 “지금은 획일적 규제에 맞춰 경제 논리로만 집을 짓다보니 삶의 질이 파괴되는 것”이라고 했다.


석 회장은 정부도 건설의 시대에서 건축의 시대로 가겠다고 이야기한 만큼 획일화된 토목 논리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하는 건축 논리로 옮겨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양산과 규격화라는 토목의 잣대로 건축을 바라보면 다양성과 창의성이 사라진다”고 우려했다. 대량 생산 논리가 지속되면 경험 많은 대형 건축사 사무실은 계속 커지고, 신진 건축사는 일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글=이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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