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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선의 마지막 주막'이다.

조회수 2017. 10. 5. 21: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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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모가 버선발로 뛰어나올 것 같은 예천 삼강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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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좋고, 요즘 같은 날 어디 야외 정자 같은 곳에 앉아서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싶지 않으신가요?
그럴 때 생각나는 곳, 바로 주막입니다.

주막은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무려 2천여 개나 있었다고 하죠. 술도 마시고 밥도 먹고 잠도 잘 수 있는, 보부상들에겐 꼭 필요한 그런 공간이었는데요,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술집, 식당, 여관 등으로 그 기능이 분화되면서 다 사라졌죠.
이젠 그냥 민속적인 느낌이 나는 관광지에 간다거나 혹은 축제 중 임시로 설치된 주막 세트에서 분위기 정도 낼 수 있게 됐어요. ㅠㅠ

그런데 아직 '조선의 마지막 주막'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아니 주막이 아직 있었어?)


길고 긴 연휴를 맞이해 달려가 봅니다. 그곳으로~

경북 예천군의 낙동강변. 이 곳에 바로 조선시대의 마지막 주막이 남아있다고 하는데요.
여기가 바로 그 주막, 삼강주막입니다.
그런데 왜 '삼강(三江)' 주막일까요?
출처: 다음 지도
사실 이 곳은 낙동강과 그 지류인 내성천, 금천의 세 줄기 강물이 모이는 곳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보부상이나 과거길에 오른 선비, 각종 화물선이 쉬어 가던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죠.
낙동강, 내성천, 금천, 이렇게 세 개의 강물이 모인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삼강주막은 1900년 즈음에 만들어졌습니다.

1933년 대홍수를 겪었고 2007년엔 리모델링을 했기 때문에 완전 옛 모습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이 위치에 100년이 넘게 주막이 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구성으로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큰 삼강주막, 그래서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기도 했다죠.
출처: YTN
지금 삼강주막은 마을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실제로 개인이 운영했다고 하는데요.
출처: YTN
삼강주막의 2003년 모습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선의 마지막 주모가 살아계셨습니다.
출처: YTN
바로 70년 가까이 주막을 운영해오셨던 故 유옥련 할머니. 지난 2005년 10월, 아흔의 나이로 별세하시면서 주막은 방치됐었지만 2007년 예천군에서 옛 모습대로 복원했습니다.
벽에 있는 할머니의 외상장부가 인상적입니다. 생전에 글을 알지 못했던 할머니께서 만든 빗금인데요, 술 한 잔은 짧은 금, 한 주전자는 긴 금, 세로 줄은 '외상값을 갚았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지금 유리 케이스 안에 외상장부가 잘 보존돼 있다고 합니다.
삼강주막을 방문한 날, 날씨가 매우 좋았어요. 때맞춰 축제도 열리고 있었다는.
낙동강, 내성천, 금천.. 삼강의 유래를 적어놓은 시 한 소절. 과거엔 여기서 묵은 뒤 문경새재를 지나 한양으로 가면 장원급제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합니다.
조선시대로 돌아간 느낌 빙의해서 주모 세트를 주문해봅니다.
막걸리, 부추전, 두부와 도토리묵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주모 2 세트에 잔치국수를 추가합니다. 주막에 갔으니 머슴(?)처럼 먹어줘야죠!
이렇게 야외에 앉아서 먹으니 진짜 잔치를 하면서 먹는 국수의 맛입니다.

낙동강을 타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막걸리 한 잔을 쭈욱 들이켜자니 조선시대의 보부상이 된 것 같기도 하네요.
길고 긴 연휴, 가족·친지·친구들과 함께 특별하게 한 잔 하고 싶으시다면 '조선의 마지막 주막'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네요!

[리얼푸드=김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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