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 선 적폐청산과 문재인 정권

조회수 2018. 6. 4. 15: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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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지지도가 70%를 훨씬 넘기고 민주당 지지율도 50%를 넘어서 역대 최고치를 달하고 있는 지금 언뜻 보면 지금의 여권에게 모든 일은 순조로운 것 같다. 나라가 하나로 뭉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지금이 탄핵 국면 시작 이래 문재인 정권의 최대 위기라고 본다.


남북한 고위급 회담이 무산된 사실 하나로 흔들리는 세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제 북미회담은 한반도의 미래, 문재인 정권의 미래, 적폐청산의 미래 모두를 건 도박으로 변했다. 그러는 가운데 적폐청산의 연대는 약화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과 안철수를 비교하면서 지지하는 이유를 대라는 말에 시민들은 문재인에 대해서는 적폐청산 때문이라고, 안철수에 대해서는 도덕성이라고 제일 많이 답했다고 한다. 따라서 시민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권의 가장 큰 의미는 역시 적폐청산일 것이다. 박근혜에게서 적폐의 폭발을 본 시민들은 문재인에게 그 적폐를 청산하라는 임무를 준 것이다. 적폐청산의 좌초가 곧 문재인과 민주당의 좌초다. 


그런데 어느새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적폐청산에 대한 시민적 공감대는 최순실 박근혜 탄핵국면에서는 더욱 분명했다. 그때는 이 세상의 문제가 정유라 부정입학 같은 적폐가 더욱 분명했으며 그런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자기를 희생하면서 촛불을 드는 심정으로 거기에 참가하겠다는 분위기가 컸다.


문제는 그 개혁에 대한 열망과 에너지가 흐르다 흐르다 많이 분열되고 그나마 남은 것도 이제는 어느 정도 변질해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부분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보수 정치권이 지리멸렬하는 가운데 지방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개혁의 연대는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즉 정치가며 시민은 이제 자신의 미래와 자신의 이익, 자신의 메시지에 더 신경 쓰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전에는 박근혜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나를 돌보지 않았다면 이제는 탄핵당한 지리멸렬한 보수정치권을 보고 적은 이미 쓰러졌다고 판단한 것 같다. 따라서 자신의 요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이미 전쟁에 승리한 집단이 자기 기여를 정산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재용의 재판을 보고도 이 땅에 사법 정의가 살아 있다고, 적폐가 사라졌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적폐의 큰 뿌리는 결국 돈이며 재벌들이 깔아놓은 인맥의 힘은 여전히 살아있다. 지금도 권성동 수사, 대한항공 수사로 국민은 답답함만 느끼며 삼성 수사에 이르면 말문이 막히는 상황이다. 완전한 개혁의 완성이란 물론 영원히 오지 않겠지만 개혁의 불가역적인 진전이란 결국 경제시스템의 불가역적 변화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 기업의 운영 관습이며 한국 돈의 흐름이 달라지지 않은 개혁이란 신기루에 불과하다.

출처: 아시아경제

김대중-노무현 시대가 이명박-박근혜 시대가 되고 만 것처럼 다시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니 더할 수도 있다. 지금 완전히 중단된 무능한 국회를 보라. 그들은 틈만 나면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말하지만 그런 제왕적이고 무책임하고 무능한 국회가 나라를 주도하는 내각제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이것은 그야말로 불가역적 개혁의 실패다. 촛불혁명 같은 기회가 다시는 있을 수 없어 보이는 일본 같은 나라로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 북미회담이 한국의 모든 것을 건 도박이 되어간다고 느낀다. 물론 북미회담은 성공되어야 하지만 본래는 한반도 평화문제와 한국 내부의 적폐청산 문제는 원칙적으로는 별개의 문제다. 다시 말해서 어느 나라의 잘못이건, 설사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잘못이라고 해도, 북미회담의 실패나 불발이 국내의 적폐청산을 그만두게 만들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현실적으로는 마치 그런 것처럼 되어가고 있다. 한반도 평화회담의 분위기와 이미 개혁은 승리했다는 안도감 속에서 적폐청산에 대한 에너지는 조용히 소멸해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개혁연대가 분열하고, 여러 집단이 문재인 정부에게 개혁의 결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개혁이 불가역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때 개혁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정산서를 내밀기 시작한다는 것은 개혁의 실패를 예감하게 하는 중대한 사태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잘 못 느끼는데 정국이 북미회담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북미회담이 성공하고 남북 경협이 진전되면 자연스럽게 적폐청산도 진전되는 면이 클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 재벌 가문이 건재한 지금 시민들이 이미 개혁은 불가역적으로 일어났다고 느낀다면 도박의 성공으로 에너지가 증가한다고 해도 그 에너지는 빨리 소모될 것이다.


어느새 사람들의 관심은 적폐청산이 아니라 파이의 분배로 옮겨간다. 수도관을 고쳐야 모두가 물을 마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수도관에서 나오는 물을 나부터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개혁의 동력은 고갈된다. 요즘 우리는 어느새 그곳에 가까이 가고 있다.


대한항공 재벌 일가를 아무리 욕해도 그걸로 속이 후련하면 뭐가 바뀌겠는가. 결국 그들을 경영에서 손 떼게 해야 개혁은 불가역적으로 완수된다. 지금 당장 욕하고 그들의 사과를 받는다고 해도 그룹의 지배구조가 그대로라면 그들은 결국 모든 것을 과거로 되돌릴 것이며 오히려 과거보다 더 철저히 지배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이건희의 갑작스러운 쓰러짐으로 인해 생긴 무리한 경영 승계 과정이 결국 최종적으로 합법 처리되고 그에 대한 손해 배상이 국가의 몫으로 최종적으로 정리되면 박근혜 탄핵과 촛불혁명이라는 것도 결국 재벌들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미리미리 정치권에 더 많은 돈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뿐이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불법적으로 조성한 자금을 추적해서 회수하지 못하면 미래에도 ‘국정을 농단해 크게 해 먹으면 누구도 그걸 잡아낼 수 없다’는 선례를 만들 뿐이다.


맹자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러 가자 왕이 말한다.

선생처럼 고명한 분이 우리나라에 왔으니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맹자는 말한다.

왜 이득을 말하십니까. 진정 중요한 것은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정의와 인의가 있는 나라에서 이득은 저절로 따라 온다. 모두를 위한 수도관을 고쳐서 물이 넘치면 모두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득에 먼저 눈이 가는 순간 사람들의 관점은 어느 새 달라진다. 통일이, 적폐청산이 얼마나 이득인가 말하는 것은 언뜻 좋기만 한 일처럼 보인다.


북한에는 자원이 있다든가,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다든가, 적폐를 청산하면 이런 인권문제 저런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은 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게 나라냐며 길거리에서 촛불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이득을 떠올린 게 아니다. 개혁은 이득을 보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정의와 인의를 보고 갈 때 이뤄지며 이득은 저절로 따라온다.


그런데 좋기만 해 보이는 요즘 시국에 나는 인의의 연대가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진다. 너무 많은 것이 북미회담에 걸렸고 사람들은 어느새 정의와 인의보다는 이득을 말하기 때문이다. 적폐청산보다는 우리 동네 민원에 집중하는 것도 같다. 이런 분위기가 좋기만 하진 않다.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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