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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 그 무거움에 대하여

조회수 2018. 5. 18. 10: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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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행선지를 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직장인 대상 ‘커리어 코칭’을 하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언제 그만둬야 할까요?”이다. 그러면 기계적으로 답한다.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선택의 무게감을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선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사직서, 절대 함부로 던져서는 안 된다. 때로는 그 무게감을 견디고 적절한 때를 기다려야 한다.



매일 같이 사표를 쓴다

드라마 미생 중 오 과장

〈미생〉의 오 과장은 마치 직장생활에 목을 맨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언제든 가슴에 사표를 품고 회사를 다니며 책임질만한 일을 했을 경우 책임지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사표를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쉽게 표현하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일을 지속하는 사람이다. 마치 수백 년 전 전쟁에서 패해 돌아오는 장군이 스스로 자신의 목을 배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단순 돈벌이라 인식하지 않는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혼을 담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와 동일시하게 여기는 산물(産物) 또는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칭하기도 한다.


사표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분들도 있다. 주로 ‘회피의 도구’로서 말이다. 오 과장과는 정반대의 경우로, 일을 돈벌이로 시작했고, 언제든 상황이 바뀌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이들이다. 물론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깔끔한 뒷마무리는 기본이다. 후임자에게 적절한 인수인계를 포함, 별도의 매뉴얼 작성 등도 필요에 따라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마도 사직서를 내기 직전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만두겠다” 류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 사람 치고 즉각 실행에 옮기는 이들이 거의 없다. 보통은 쉽게 할 수는 없는 이야기이며, 실행에 옮기기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우선 여러 가지가 발목을 잡는다. 특히 다음 회사를 정하지 못했다면 여러모로 낭패다. 아직 채우지 못한 적정한 연차, 다음 달 카드값을 포함해 내가 받던 각종 경제적 혜택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이른바 현재 가진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위축되는 것도 함께 두려워한다.


어딘가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늘 이름 앞을 수식하던 회사 이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제 자연인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살아 본 적이 있는가? 혹은 그런 삶을 살기 위해 평소에 준비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는 것으로부터 가장 불안함을 느낀다.


위의 다양한 요인으로 늘 품 안의 사표를 꺼내려다 참는다. 수십 번 고민하다가 겨우 내미는 것이 사직서이다. 그만큼 무겁고도 쉽게 내밀 수 없는 어려운 존재이다. 그래서 그 선택으로 닥치게 될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 때 내미라고 말씀드린다.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끝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마치 이별이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버티지 않고, 뛰쳐나오는 것도 ‘때’가 있다


하지만 무작정 “버티세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버티는 것도 나름의 꿈과 희망 그리고 기대가 있어야만 가능하고 그 나름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일을 ‘돈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사표’를 꺼내 들 때는 나름의 전조현상이 있다. 조직 내 ‘성장 가능한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스스로 판단했다면 사직서를 내기까지 나름의 임계치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성장하기 위해’라는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직장에 입성했다. 하지만, 곧 자신의 성장 한계치를 맞닥뜨리고, 결국 다른 성장 거름을 줄 수 있는 곳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들을 올바르게 일하게 만든 요인은 적절한 경제적 보상이 전부가 아니었다. 각자 나름의 ‘동기’가 있었지만, 과거에 나름 통했던 동기가 이제는 통하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만둬도 된다. 단, 다음 행선지를 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동기만이 지속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동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몇 번이고 주변에서 ‘그만두지 마’라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스스로 발동된 퇴사 동기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나가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나가야 할 이유가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과정을 지나면 어느새 손에는 사직서가 들려있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때가 되었을 때, 특정 요인으로 사표를 던지기 위한 트리거가 작동된다. 


코칭할 때 참다가 도저히 버티지 못하겠으면 그만두라고 말씀드린다. 살기 위해, 더욱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선택이기에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단지 본인이 가진 우선순위에 의한 결정이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분명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하는 일인데, 그것이 현재의 삶을 위협한다면 지속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이미 더 커졌기 때문이다. 다만 몇 가지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



세상은 바뀌고 있으니 그때까지만 버티자


앞으로 우리 한국 사회도 유럽, 미국과 유사한 형태로 고용 시장이 발전할 것이다. 채용도 해고도 이전보다 쉬워질 것이며, 이는 고용주의 편의뿐 아니라, 피고용인 입장에서도 권익 신장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일할 사람보다 일할만한 사람을 뽑고 싶은 고용주와 괜찮은 직장을 골라 가고 싶은 피고용인의 니즈가 시장에 반영된 결과이다.


특히, 피고용인의 직장 선택의 요인 중에 경제적 요인에 의한 직장 선택이 현재보다는 줄어들 것이다. 그로 인해 더 이상 기업이 연봉으로 채용 과정의 주도권을 가지는 모습이나 비중은 현저히 줄어들고, 직장인 스스로가 누릴 내적 성장과 함께 관련된 가치를 보존해야만 원하는 인재를 채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위와 같은 내용을 기업에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검증된 고성과자(High Performer)는 일부에 불과하기에 자연스럽게 평균적인 몸값 또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지금의 마케팅 환경의 주도권이 고객에게 넘어갔듯 채용 시장(환경)도 고용주에서 피고용인으로 전세 역전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이러한 고용의 유연성 증가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일하는 문화의 변화’이다.

tvn 행복난민 중

tvn에서 방영한 프로그램 ‘행복난민’에서도 개인이 조직의 한 일원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충분히 숙지하고, 그에 맞게 자율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비쳤다. 물론 유럽 중 한 국가의 특정 회사이기 때문에 모두 그렇다고 볼 수 없지만, 합리적으로 일하는 문화에서 부러움과 동시에 우리도 언젠가는 그러한 문화를 지향하고 실현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이러한 흐름이 우리에게는 어색하지만, 분명 세대가 바뀌고 그에 맞춰 일하는 문화도 변화됨에 따라 스스로 맡은 역할과 책임하에 각자의 역할이 움직이는 형태로 변화될 것이다. 이는 기업의 일하는 문화가 ‘개인의 책임하에 모든 업무가 진행되는 자율적 업무 방식’을 채택할 것을 의미한다. 아직 사내 규율에 의한 움직임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자율적 업무체계가 가진 효율적 합리성이라는 장점에 기대를 걸고 업무 환경의 변화를 꿈꿔본다.

그냥 버티지 말고, 뭐라도 준비하자


위와 같은 변화는 역시 누군가에게는 기회 및 위기가 될 수 있다. 4차 산업 혁명으로 사람이 하던 육체노동의 일부가 기계로 대체되는 비중이 과거에 비해 현격히 높아지고, 단순 노동을 넘어 일부 인간적 서비스를 행하는 부분까지도 대체됨으로써 인간의 노동은 또 한차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에 각자가 가진 노동의 가치적 채산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1. 과연 내가 대체될 것인가 
  2. 대체된다면 얼마의 기간이 남았는가
  3. 대체되는 것을 늦추거나, 혹은
  4. 다른 자리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단기적으로 볼 때 현재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는 것 이상의 장기적 시각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어떻게 쌓아야 할지 고민과 그에 따른 적절한 실행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 소속된 비즈니스 또는 직무의 커다란 범주 안에서 평생을 머무른다는 것을 가정하고, 현재 하는 일이 ‘육체 중심 노동 vs. 두뇌 중심 노동’ 어느 축에 속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그럴 때 아래 사진 속 페퍼처럼 나를 당장 위협할 만한 위험 요인이 언제 나타날지 생각해봐야 한다. 무조건 육체노동이라고 로봇에 대체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면을 만드는 기계가 비싸서 사람으로 대체한다는 여느 국숫집처럼 의외의 부분이 나타날 수 있다. 사람이 가진 역량(적성과 재능의 합)에 대한 시장에서 통용되는 가치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은행의 로봇행원 페퍼

결국 소속된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앞으로 ‘채산성'(수입과 지출이 맞아서 이익이 있는 성질)이 어떻게 변화할지 고민해보고, 적절한 대처를 지금부터 해나가는 것이다. 이는 현 상황에서 미래로 어떻게 흐를지 생각만 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시장의 흐름에 예의 주시하며, 더 나은 결과를 위한 노력이 평소에 있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사직서를 던지려거든 더 꼼꼼하게 


위에서 언급한 고민에 충분한 답이 내려졌다면 ‘때’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책임감, 충분한 준비성, 생존을 위해 더욱 기민하게 움직일 여러 무기를 장착했다면 이제는 현실적으로 충분히 분석해보고 따져봐야 하는 문제가 남았다.


조직에 입사한 이후로 여러모로 쌓인 내 안의 ‘자산(Asset)’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따르는 것처럼 퇴직이라는 결정에도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이 있다. 물론 당장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아니지만,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부분으로 퇴직 이후에 감당해야 할 미래 비용 또는 이익과도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 퇴직의 두 비용

  • 기회비용: 재직 중에 포기했지만, 상황에 따라서 일부를 회복 또는 기회가 올 수 있는 것들을 의미 
  • 매몰비용: 재직 중에 얻은 권리 중 퇴직 이후에는 행사할 수 없는 것 등으로 ‘포기해야 하는 권리’

⑴ 비즈니스 네트워크 측면


소속된 조직의 이름으로 구축했던 인적(비즈니스) 네트워크 중 일부는 기회 또는 매몰비용이 될 수 있다. 모두 놓고 나올 수도, 그중 일부만 건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A 기업과 B 기업이 거래 관계라면 거래의 주체는 기업이지만 실무는 각 담당자가 맡는다. B회사의 담당자가 퇴사해 자신이 옮겨간 C회사로 거래를 가져가는 것은 쉽지 않다. 


기업 간 거래 시 구축된 신뢰는 그동안 기업이 보여준 여러 면을 포함하고, 이는 대부분 개인에 의해 구축된 신뢰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기존에 다니던 조직에서 누렸던 비즈니스상의 우월한 부분을 내려놓고 어떤 부분을 가져가거나, 유지할 수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⑵ 재직 중에 얻은 지식과 노하우 


다소 작게 보일 수 있지만, 개인으로서는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온전히 내 안에 담아 가져갈 수 있으며,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만들었던 다양한 보고서와 자료 등은 성과와 성취를 증명해줄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대부분 회사의 자산으로 귀속되지만 보안상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은 별도 보관해 따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포트폴리오 또는 경력기술서를 만들 때 귀중하게 쓰이는 Raw Data로 활용하고, 업무적 과거를 되돌아보고, 동일한 실수 또는 실책을 줄일 일종의 참고서로도 활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위 두 가지를 중요하다고 꼽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혀 다른 직무 또는 산업으로 옮기는 전직이 아니라 유사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라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경험하고 공부했던 것으로부터 새로운 도전과 응전을 위한 발판이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무형적 자산이자, 내가 가진 커리어를 대변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물이다.


따라서 나오기 전에 그런 무기를 갈고 닦고 정리함으로써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독특한 특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퇴사의 준비는 바로 그때부터 진짜 시작이다. 내가 가진 공적을 정리하고, 적성과 재능의 합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역량’을 시각화(Visualization)하는 것이다.


이때 방식과 방법은 각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의 메시지 및 진정성의 가치만큼은 따라 할 수 없다.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옮겨갈 새로운 직장과 직무를 통해 만나게 될 모든 이들에게 보여주는 가장 첫 번째가 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 이것마저도 없다면 생존하기 어렵다.



사직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앞으로 우리가 살 시대는 경력의 연차 길이가 실력을 증명해주지 못하는 시대일 것이다. 조직이 가진 타이틀에 기대 퇴직 이후에도 전관예우의 권한을 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지금보다 투명해진 세상에서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다양한 수단을 개발하고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곧 생존하기 위한 정도(正道)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시대에는 지금보다는 사직서가 가벼워질 전망이다. 쉽게 채용되고, 쉽게 사표를 던지고. 하지만 표면상 쉬워 보일 뿐이지 그런 결정을 하는 이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그 무게감을 견딜 것이다. 책임져야 할 나를 포함한 다양한 이들을 위한 일을 택하는 것, 일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게 최초의 선택 때부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사직은 또 다른 의미의 새 출발이니만큼, 스스로에게 주는 ‘바통터치’와 같다.

내가 결정한 트랙 안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날 이끌어줬던 조직으로부터 나와 다른 조직 또는 스스로가 만든 조직으로 온전하게 넘어가도록 쿠션의 역할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쿠션을 만드는 것도 쿠션을 통해 완화된 충격을 견디는 것도 스스로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래야 ‘후회’를 덜 할 수 있다.


원문: 김영학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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