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들의 딥다크한 울분과 화병에 대하여

조회수 2018. 5. 10. 14: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사회적 상급자에게 모두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회천! 팔괘장!

한진 일가의 다양한 동영상과 녹음파일을 통해 우린 ‘갑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갑질이 이슈화가 크게 되는 건 꽤 건강한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절망적인 건 누구도 그러한 행위에 대해 입도 뻥끗 못 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죠. 

으아아아아

‘갑질’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화’에서 비롯됩니다. 물론 ‘화’라는 단어 안에는 우울, 절망, 초조, 억울, 부끄,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녹아 있고 이러한 감정은 많은 에너지를 지녔습니다. 화학적으로도 그러하지만 고에너지의 물질은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방사능이나 반물질이나, 플라즈마 같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죠.


하지만 통제수단 없이 그냥 세상천지에 고에너지가 방출되면 주변의 수많은 존재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감정도 그렇죠. 빡침과 울분과 딥다크한 암흑감정은 때론 매우 강렬한 동기가 되어주기도 하고, 실천력의 큰 에너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적절히 통제되지 못하면 물건 집어 던지기를 실천하고 욕을 하고 죽빵을 날려야겠다는 동기를 유발하죠.

출처: 이미지 내 포함

문제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닌, 거기에 ‘상하관계’가 부여되었을 때의 얘기지요. 그렇습니다. 보통 인간도 동물인지라 누군가가 공격태세를 취하면 우리도 아드레날린을 뿜뿜 하며 근육에 혈액을 보내 회피, 반격, 죽빵, 아스바리 등 다양한 리액션에 대비합니다. 이러한 본능적 방어태세를 억누르는 건 바로 사회성이죠. 


슬프게도 인간은 사회화 과정을 어릴 적부터 거친 터라 몸과 정신은 단순히 본능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억누르고 제어하는 사회적 자아가 있기 마련이죠. 때문에 사실 계급장 떼고 맞다이 까면 1분이면 물리칠 것 같은 존재일지라도, 법률과 사회적 지위에 의해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갑질은 비단 대기업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스타트업 대표부터 단순한 식당 손님이나 파워블로거지, 작은 동아리나 조별과제에서도 발생하죠. 2명 이상이 모이면 일단 서로의 지위를 본능적으로 정하려고 하는 인간의 특성상 완벽한 평등이란 어렵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서로의 인권과 영역을 존중해주면서 다치지 않게끔 배려하는 현명함을 발휘할 순 있죠. 특히 사회적 상하관계에 있는 직장 내에서라면 더더욱 필요한 덕목이고요.


제목에는 ‘대표님’을 썼지만 팀장이든, 부장이든, 이사든 상관없이 어쨌든 사회적 상급자에게 모두 적용되는 이야기일 듯합니다. 단순히 잘못되었으니 돌로 쳐죽일 놈들이다! 하고 비난하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본인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면 빨리 깨닫고 좀 더 현명한 방식으로 갈등을 풀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번 읊조려 보고자 합니다.


대표님들의 마음속엔 어떠한 울분이 쌓였는지 지금부터 알아봅시당. 참고로 아래 내용은, 모두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해당 감정이 과잉되었을 때 잘못된 방향으로 발현되는 경우를 적은 것입니다.



인정욕구

인정욕구에는 어릴 적의 보상심리가 크게 작용합니다. 대표도 엄밀히 한 개인이고, 개인의 삶을 만들어 온 지난 기억과 경험이 있는 법이죠.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잖아요. 지금껏 우리의 경험은 누군가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행위가 많았습니다. 


그게 환경이나 능력 탓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땐 그 비난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기도 해요. 심리학에선 자기편향이라고도 합니다. 제 경우 어릴 적의 경제적 어려움과 이런저런 경험이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으로 발현되더라고요. 마치 사회에서 내가 지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래서 대표가 된 이후 ‘난 이곳의 대표야! 내가 여기 있다고! 날 인정해줘!’라고 외치는 듯한 행동을 하다가 폭망했던 경험이 있습니당.


‘대표’는 회사의 대표란 얘기지 그게 내 인생의 어떤 보상 내지는 지위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에요. 직급 없이도 내가 나로써 존재할 수 있어야 하죠. 내 주변 관계와 능력과, 인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라는 직함으로 인해 만들어진 관계나 부풀려진 능력은 사실 나의 것이 아니에요. 회사의 이름을 업은 것뿐이죠.



외로움

생각보다 많은 대표님이 외로워합니다. 보통 대표님은 미래와 비전을 바라보고 고뇌와 모발 뜯기를 반복하는데, 실무자들은 주어진 현실에 더 집중하곤 하죠. 컨설턴트는 자꾸 과거를 돌아보라 하고요. 모두 각자의 시선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대표님은 자기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줄 사람을 필요로 해요. 하지만 생각보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더군요. 내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사건건 아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같은 대표라고 해도 얘도 힘들고 나도 힘든데 서로 힘든 얘기만 하다간 ‘누가 더 힘든가’ 겨루는 시간이 되어버리기도 하거든요.


이러한 고립감이 심해진 대표님은 작은 관계에 집착합니다. 직원 중 한 명이라도 ‘말이 통한다!’라는 사람이 있으면 큰 애정과 관심과 거대한 일감을 몰아주게 되는 것이죠. 잘못된 사랑의 표현입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직원들에겐 편애나 불공평으로 보일 수도 있고요.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젓겠지만, 문제는 자꾸 내 책상에 사직서가 점점 많아진다는 데 있습니다. 회사에서 말 통하는 사람을 찾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각자의 할 일이 있는 것이지요. 말 통하길 바라시면 그냥 절 찾아오세요 010-654……(응?)



불안함

부란부라누부라우부루ㅏ안부라안불안불안불안

이건 별개의 감정이라기보단 모든 내적 에너지의 근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은 태생적인 불안을 안고 있어요. 이러한 불안은 삶을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만들어주고 더 나은 어떤 것을 갈망하게끔 만들죠. 하지만 방향을 잃어버린 불안, 그러니까 불안해하는 것을 불안해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버리면 이상한 행동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괜히 계속 뭔가 정리된 내용을 또 정리하라고 시킨다거나, 계속 뭔갈 빼먹은 듯한 느낌이 들거나, 회의를 빅뱅 이전부터 해왔어도 결론이 없는 듯한 늪에 사로잡히죠. 진실을 왜곡하기 시작하고, 불안이 가득한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최악은 이 불안한 시선이 사람을 향하면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점이죠.


더 무서운 건 뭔 줄 아세요? 정작 본인은 자신의 눈에 불안이 씌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자꾸 했던 얘길 또 정리하고, 말이 바뀌거나 ‘정리가 안 된 듯한’ 느낌이 든다면 주변에 물어보셨으면 해요.

내가 요즘 불안한 눈빛과 거친 생각을 지니고 있니?

라고. 불안은 전염되는 속성이 있어서 상대의 불안을 금세 눈치챌 수 있어요.



부담감

인생의 jim

확실히 돈이 쪼들리기 시작하면 예민해집니다. 내 깜냥 이상의 거대한 장벽을 마주했을 때도 그렇죠. 부담과 책임감은 사업에 큰 원동력이 되어주지만 너무 커지면 현재 상황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요. 자꾸 직원들이 내 돈 뺏어가는 루팡놈들처럼 보인다거나 ‘내가 이렇게나 돈을 주는데 네 놈들이 고작 9시간 일하고 정시퇴근을 해?’ 같은 보상심리도 콤보로 찾아오죠. 


모든 걸 혼자 짊어진 것 같아서 옥좌에 앉아 책상을 치며 피눈물을 흘리는데 직원들의 웃는 소리라도 들리면 ‘나 혼자만 이 모든 걸 짊어지는 건가… 하아… 난 X나 아틀라스야.’라는 생각도 듭니다. 응, 아니에요. 모두가 비장하고 부담을 진 채 근엄격한 표정으로 일할 필욘 없습니다. 직원들이 고작 월급이나 뜯어가자고 헬게이트 2호선을 뚫고 출근해서 잔뜩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다들 현재 자기 역량에서 뭔가 잘해보고 싶어 해요.


전 디자이너니까, 디자인을 생각해볼게요. 사실 대충 만들라면 30분이면 만들 수 있는 것들입니다. 소스 처발라서 그냥 대강 글씨만 바꾸기만 해도 돼요. 하지만 몇 개 시안을 끊임없이 만들고 내 맘에 들 때까지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건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한 알랑방귀라든지 내 능력을 인정해달라는 발악이 아닙니다. 내 업에 대한 애정이자, 양심이고 열정이죠.


부담은 대표님 혼자만 진 게 아닙니다. 입에서 자꾸 “나 혼자만…”이란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겁니다. 본인의 마음이든, 조직이든…



분노

분노는 매우 확실한 감정입니다. 〈분노의 윤리학〉이란 영화에서 조진웅의 대사 중, ‘화가 날 땐 다른 감정이 들지 않잖아. 아주 순수한 감정이라고!’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네, 그렇죠. 분노는 순수한 감정 그 자체입니다. 기쁘거나 슬프다가도 빡칠 수 있어요. 하지만 화가 날 땐 갑자기 기뻐지거나 즐거워지지 않죠. 온전히 그 감정에만 몰입하게 된달까요.


분노가 잦은 이유는 너무도 많지만, 그 확실하고 명확한 몰입감에 중독되어 가는 중일 가능성이 큽니다. 소리를 지르고 집어던지고 상대를 밀치고, 뭔갈 내려치는 등… 나의 감정을 아주 명확하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죠. 흔히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할까요?


오히려 분노가 잦은 분들은 그 외에 다른 생활에서 전반적으로 에너지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존재가 희미해져가는 느낌이죠. 집안 문제라든가, 결혼 생활이라든가, 또는 형제 관계가 꼬여있는데 뭔가 명확지 않게 그냥 꼬여만 있는 경우… 또는 평소에 내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해서 모든 것이 애매하게 응축된 상태라든지…


이건 회사와 사업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오히려 외적인 요인이 더 클 때가 많습니다. 대표 개인 가정사나 건강상 문제 등등 말이죠. 빠른 상담과 치료와 요가와 명상, 찬물과 운동을 권하는 바입니다. 이미 분노가 뿜뿜한 상태라면 다른 감정으론 그 녀석을 통제하기 어려워요. 헐크의 손가락을 잡아주던 스칼렛 요한슨 정도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러니 ‘스스로 할 수 있어!’라는 건 자칫… 자만심이거나 착각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죄책감


뭔가 일이 잘못되거나 회사가 아마존처럼 되지 않은 건 당신 탓이 아닙니다. 아다리가 안 맞아서 그래요. 갓 댐. 사업은 진인사대천명 법칙을 철저하게 따릅니다. 우리는 항상 아다리의 신비함을 인지하고 있어야 해요. 그 신비한 마법 가루가 없으면 제 아무리 날고 기는 능력자라도 다들 마이너스 당기순이익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예민함

예민함은 매우 중요합니다. 스파이더 센서와 같은 털 곤두섬까진 아니더라도 사람을 대하고 트렌드를 읽고 직원들과의 관계를 위한 ‘촉’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하지만 괜히 픽셀 하나에 집착하거나 자간이 신경 쓰여 미치겠다거나 어제 컨펌한 문구가 너무 맘에 안 들어서 저 단어를 제발 바꿔버렸으면 하는 마이크로 매니징으로 번지게 된다면 음… 서로 피곤해질 것 같아요.


대부분 당신이 신경 쓰는 그런 미미한 것들은 사실 일의 결과 측면에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냥 지금 현재 당신 상태와 기분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투사입니다. 정말 정렬이 틀렸을 수 있어요. 그럴 땐 그냥 “여기, 여기 맞춰줘.”라고 하면 될 일입니다. 그걸 가지고 노발대발 막 소리를 지르면서 “여, 여… 여기가 안 맞았잖아! 이런 (욕)!” 할 일은 아니잖아요?


첫째, 그런 식의 예민함은 자랑이 아니고, 둘째, 예민하단 게 무슨 몽골인인 양 모든 게 눈에 보인다는 뜻도 아닙니다. 셋째, 픽셀 틀어진 건 눈에 보이면서 자신의 샤우팅을 묵묵히 듣는 상대방의 마음은 보이지 않나요? 자꾸 직원들의 모니터에 집착하고 있다는 건 나의 불안함을 그들의 결과물에 투사하고 있다는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본인 모니터를 보도록 하세요.



우울감

난 미립자와 같은 존재다…

모든 것이 날 떠나고, 세상에 나 혼자 버려진 느낌… 또는 앞으로 난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모든 것이 막막해진 느낌… 우주 한가운데 버려진 샌드라 블록 같고 150억 광년 우주의 역사 앞에 난 우주왕먼지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면… 


음, 정상입니다. 우울한 건 나쁜 게 아녜요. 혼자 방구석에 쪼그려서 어둠의 다크함을 느끼는 것은 때론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 내면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을 주죠.


하지만 이게 무기력이나 신체적 문제로 번진다거나 자기 파괴적 생각으로 번진다면… 반드시 상담을 받아보시길 바랍니다. 이유 없이 어디가 아프고, 같은 생각(인데 결론은 없는)이 끊임없이 맴돈다면 유의미한 위험 신호일 수도 있거든요. 우울증은 분명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가벼운 것도 아닙니다.



마치며


한 회사를 운영하고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은 개인 홀로 짊어지기엔 어려운 일임이 확실합니다. 모든 대표님은 다들 마음이 견딜 수 있는 어려움 이상을 견뎌내기 마련이죠. 그래서 때론 어딘가 일그러진 형태나 불완전함, 또는 과도한, 부족한 모습으로 약한 곳들이 터지곤 합니다.


위에 언급한 감정들은 모두 자연스럽고 좋은 감정입니다. 이 외에도 소위 긍정적인 감정이란 것들도 넘치면 다들 독이 되기 마련이죠. 감정 자체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감정이 왜곡되거나 곡해되서 자신과 타인을 공격해선 안 되는 거니까요. 더 현명한 처신이 필요합니다.


위의 감정들은 외부의 자극이나 내면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인지라 방어기제가 매우 튼튼합니다. 방어기제가 튼튼하단 얘긴 내가 현재 저런 상태인지 전혀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높단 얘기죠. 끄덕거리며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는 당신 또한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그렇고요.


상담은 치료와 제거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발견과 자각’을 우선으로 하죠. 일단 내가 어떤 상태인지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대표님들은 어딘가 모두 힘들고 어렵습니다. ‘괜찮아! 일이 좋아! 난 버틸 수 있어!’라고 외치는 것도 좋지만, 때론 ‘난 괜찮을까? 일도 나를 좋아할까? 난 버틸 수 있을까?…’라고 물음표를 던져보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아요. 마음 잘 챙기는 5월 되길 바랍니다 :)


원문: 애프터모멘트 크리에이티브 랩의 브런치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