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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 빈곤율에 대하여

상대적 경제 수준은 모든 방면에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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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작성일자2018.04.17. | 2,322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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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공동 연차라 휴무였던 지난해 12월 29일, 서울에 볼일도 있고 급하게 처리할 일도 있어 잠시 회사에 나왔다. 아이들 유치원이랑 학교를 다 데려다주고 길을 나서니 아홉 시가 넘었는데 오랜만에 늦은 오전 1호선 전철에 몸을 실었다. 


늦은 오전에 탔지만 대략 18년 전 1호선 전철로 인천-서울 통학하던 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노인도 많이 보이고 방학을 맞아 서울 구경을 하러 가는 청소년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다 대방역 정도에 어느 아저씨가 전철에 탔다. 맨발에 다리도 조금 저는 분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였고 대략 미남형 얼굴이기도 해 아직도 선명히 기억이 난다. 거기다 그 엄동설한에 맨발이라니.


아저씨가 탑승하고 얼마 후 사람들은 해당 칸에서 떠났다. 사람에게 이런 단어를 써서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악취가 진동했다. 나도 자연스럽게 옆 칸으로 이동했다. 문득 무슨 사연으로 저 아저씨는 가난해 살기가 어려울 수준, 그러니까 빈곤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보육이나 양육, 교육부터 잘 받지 못하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본다.



상대적 경제 수준은 생활에도 영향을 준다


얼마 전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상대적 경제 수준에 둔감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특히나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는 그 객관적 인식이 더 떨어지기 마련인데 예나 지금이나 한국이나 외국이나 사람은 자신이 사는 환경에서 타인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도 부친이 교사시고 외벌이를 하셔서 대학에 다닐 시절까지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살았다. 대학에 가서 강남 출신 친구들이 방학 때 스페인과 같은 곳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나의 그 자괴감은 더욱더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군대에 가고 훈련소 생활을 하면서, 무작위로 추첨해 훈련소와 사단이 배정되는 군대라는 특이한 조직을 통해 나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어나서 인서울 대학을 다니는 사람은 처음 봤다는 훈련소 동기들을 보며, 대대장에게 우리 대대 100여 명 중에 너의 수능점수가 가장 높을 것이라는 이야길 전해 들으며, 무언가 내가 알던 상대적 경제 수준이 현실과는 괴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소득이나 학력과 같은 것뿐이 아니었다.


훈련소 생활 3주 차가 된 어느 하루, 옆자리에 있던 동료가 감기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양치를 하지 않길래 나는 그 동료에게 어서 양치라도 하고 누워있으라 했다. 아플 때 몸을 더 깨끗이 해야 빨리 낫는다고. 그 동료는 주섬주섬 관물대를 뒤지더니 보급 칫솔을 뜯었다. 분명 훈련소에서 해당 칫솔을 나눠준 것은 3주 전이었는데 이 친구는 3주가 되어 처음 뜯었던 것이다. 기겁하고 그럼 여태 한 번도 양치를 안 했던 것이냐고 물어보니, 그 친구는 원래 양치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하더라.

야전병원 사망자 대부분의 원인이 비위생적 환경에 기인함을 보여주는 나이팅게일의 장미 그래프(나이팅게일이 무덤에서 탄식하시겠다…)

이 거짓말 같은 대화는 자대 배치 후에도 이어졌다. 좌우 구분을 못 하고 시계조차 읽을 줄 모르는 동기를 만났다. 이 친구는 도대체 어떻게 군대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소대장이 하도 걱정해 내가 백일 휴가 갈 때 그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가라고 할 지경이었다. 누구보다 즐거워야 할 백일 휴가. 가족들도 어서 보고 싶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지만 그 동기 집인 안양까지 가서 동기 어머님을 뵌 후에야 인천 집에 갈 수 있었다. 



결과의 평등은 모두의 빈곤을 만든다


나의 단편적인 경험에서 보이듯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곳에 살면서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환경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꽤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강남이나 잠실과 같은 곳에 살고 부모 및 형제가 교사나 공무원과 같이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함에도 본인은 중산층이 아니라서 장학금 혜택을 꼭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대학생도 여전히 있다. 평생 보아 온 주변 ‘상대적’ 부자 친구들과 비교하다 보니 그러한 ‘주관적’ 판단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지 않나 싶다.


물론 대부분 대학생은 늘 경제적으로 충분하지 못한 생활을 하며 장학금 혹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이를 극복한다. 하지만 한정된 재원의 정부재원 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이 누구에게 가야 할 것인지의 고민은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재원의 우선순위에 관한 고민도 함께 말이다. 여전히 한국은 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닌 나라다. 고등학교 학자금과 대학의 반값등록금,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는 고민해보자면 후자보다 전자가 더 시급한 사회적 과제가 아닌가 싶다.

2017년 12월 기준 상대적 빈곤율을 보여주는 소득분배지표.

출처 : 통계청

통계청 소득분배지표 결과에 따르면 상대적 빈곤선은 중위소득인 183만 원의 절반 수준인 91만 원. 이에 해당하는 인구가 무려 14.6%다. 흔히 스카이에 진학하는 학생이 대략 수능 3%대, 인서울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대략 10%대라고 가정하면 주변의 그 수많은 사람 만큼이나 상대적 빈곤선 이하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간혹 정말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인류사적인 시도는 이미 소비에트 유니언이나 중국, 인도 같이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이미 시행해보고 실패 사례도 많이 만들어 놓았다. 중국의 대약진 운동, 인도의 네루 시절 힌두 성장률이 이를 보여준다.


국가 재정이라 하는 것은 경제가 활성화되어 소득세, 부가세, 법인세를 통해 창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수를 늘려 상대적 빈곤에 처한 사람에게 지원을 해주는 편이 오히려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제는 어느 정도 보편화된 상식이다. 결과의 평등은 그런 예산을 오히려 줄이게 만들어 모두의 빈곤을 만든다.

1950년대 중국의 대약진운동. 결과의 평등과 인력을 통한 기계화 저지는 결국 수천만 명의 아사로 귀결되었다.

전 세계에서 복지 수준이 가장 높다는 북유럽에 가도 거지나 밤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은 많이 존재한다. 분명히 복지의 수준이 우리나라에 비해 현격히 높을 것임에도 이러한 빈곤의 늪은 해결하지 못한다. 어디서부터 문제고, 어떠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인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통계청에서 제시하는 상대적 빈곤선 소득은 91만 원 수준이지만, 하위소득계층 평균소득의 관점으로 가자면 더 낮은 55만 원 수준이다. 그렇게 하위소득계층은 계속해서 소득을 발생시켜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빈곤 갭의 값이 점점 커지게 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아마르티아 센 같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은 불평등과 빈곤을 연구하고 관련 연구결과 및 저서를 많이 내놓는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결과는 어찌 보면 전 지구적 관점의 시각이고 우리나라에 적합한 연구가 아닐 수 있다.


물론 한국 경제학계도 빈곤 연구는 많이 진행하는 것으로 한다. 정부도 빈곤 계층의 최소 생활 유지를 위해 현금·현물 지원을 하고는 있다. 하지만 빈곤율의 측정부터 과소보고 혹은 보고 누락 등의 이유로 현실을 정확히 반영시키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떠한 지원이 이들을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할지 해결책은 찾기 어렵다.



정부의 우선 과제, 빈곤율 해결이었으면


9년 만에 진보 정부가 들어섰다. 외교나 정책이나 다양한 방면에서 변화가 이루어진다. 보수 혹은 진보만 집권하는 나라는 건강한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리영희 선생의 말씀대로 진보와 보수가 균형 있게 사회를 변화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번 문 정부가 5,000만 국민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켜 줄 것이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다. 보수 정권이 잘 해 놓을 수 있는 것이 있고, 진보정권이 잘 해 놓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빈곤이라는 사회적 주제가 이번 정부 안에서는 어느 정도 더 활발하게 논의되어, 조금은 더 빈곤율을 낮출 수 있는 정책이 수립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세상 어느 문제 하나 쉽게 해결되기는 어렵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존재한다. 150년 전 메이지 유신만 하더라도 다양한 변수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조용한 혁명이라 생각한다. 사쓰마 번이나 죠슈 번의 활약, 에도막부의 조용한 퇴장, 라스트 사무라이와의 전투, 페리 함대의 위협, 이와쿠라 사절단의 서양문물 학습,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메이지 유신을 이룬 과정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어느 것 하나만 빠져도 이 조용한 혁명은 성공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이 아시아에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조용한 혁명도 결국 쇼와시대 제국주의로 이어져 수많은 아시아인에게 죽음을 안겼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지 않았더라면, 에도막부의 지배가 계속되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역사의 가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쿠라 사절단, 1871년부터 2년간 영미를 포함한 12개국을 시찰했다. 우측에서 두 번째 인물이 훗날 일본 초대 내각총리대신이자 조선통감부의 통감을 역임한 이토 히로부미.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응당 변화시켜야 할 것은 존재한다. 이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가능하면 최선을 다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상대적 빈곤율, 빈곤 갭이지 않나 싶다. 어렵겠지만 부디 이번 정부가 잘 해결해 나가길 기원해 본다. 


원문: 퀘벤하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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