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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한국 맥주를 무시하지 마라

조회수 2018. 4. 13. 2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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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주는 전통을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오늘도 우리는 편의점 맥주 코너 앞에서 사대주의자가 된다. 한국인에게 맥주란 생필품으로 자리 잡은 지가 오래거늘 아직도 국내산 맥주는 소맥용 혹은 어른이들의 청량음료수 취급을 받고 있다. 오오 통재라! 그래도 마실 법한 우리의 맥주가 있었더라면…


오늘도 나는 수입 맥주의 유혹에 넘어가고 마는 것인가. 하지만 난세의 영웅은 언제나 있는 법. 넘쳐나는 수입 맥주의 바다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나라의 맥주가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 맥주인지도 모르고 마시는 사람이 허다하다. 바로 조선 제일 맥주 퀸즈에일이다.



맛있는 맥주? 못 만든 게 아니라 안 만든 거야

사실 마트나 편의점에서 종종 봤었지만 국내(심지어 하이트진로)에서 생산된 맥주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조금 투박한 디자인 때문에 손이 잘 안 가면서도, 저 녀석은 실력파 아이돌 같은 포지션이구나…라고 생각을 했을 뿐이다. 심지어 이름도 퀸즈에일(Queen’s ALE)인데 어떻게 알아. 


하지만 퀸즈에일은 요즘 자주 접할 수 있는 에일맥주의 단군 할아버지 같은 맥주다. “한국 맥주에서는 오줌 맛이 난다”는 비아냥에 정면 반박하기 위해 하이트진로가 칼을 갈았다. 전문가와 마니아도 나름 인정해주지만 자랑을 더 보태자면 WBC(World Beer Cup)에서 은상을 수상했고, 식품계의 올림픽인 몽드셀렉션에서 에일맥주 부문 금상을 수상한 맛의 라이센스가 있는 녀석이다.


퀸즈에일은 밸런스가 좋은 페일에일인 블론드 타입(BLONDE TYPE)과 강하고 쓴맛이 강조된 비터 타입(BITTER TYPE)이 있는데, 비터 타입은 시즌 한정이라(고 말하고 선호도가 조금 떨어진다고 답한다) 블론드 타입만을 맛볼 수 있다. 참을 수 없다. 마셔봐야지.



기다림, 퀸즈에일을 100% 즐기는 방법

에일맥주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맥주란 자고로 차게 해서 한 번에 들이켜는 것’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에일맥주는 마시는 방법이 양반스럽다. 더욱 여유 있고 품격 있다고 해야 하나? 병이든 캔이든 일단 컵에 따르고 향기가 피어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퀸즈에일 역시 마찬가지다. 반짝이며 컵 안에 떨어지는 저 맥주를 어떻게 기다릴 수 있는지…라는 생각과 함께 30분 같은 3분이 지났다. 붉고 짙은 황금빛 맥주에서 나는 향이 꽤나 근사하다. 역시 사람이건 맥주건 향기가 좋으면 다시 생각이 나는 법이다. 퀸즈에일이 그렇다.



“이게 정말 우리나라 맥주가 맞아요?”

맛이 괜찮다. 새로운 맥주들은 튀어 보이기 위해서 어느 한쪽을 도드라지게 만들어 해괴한 맛을 내는 데 반해 퀸즈에일은 밸런스가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첫 모금에 상큼한 향과 함께 들어가는 느낌부터, 마지막에 살짝 남는 씁쓸함까지 과하지 않고 기분 좋은 편이었다. 


알콜도수는 5.4%로 보통의 맥주보다 높아서 살짝 몽롱했다. ‘이렇게 괜찮고 대중적인 맛인데 왜 4년 동안 뜨질 못했을까…’ 고민의 끝에 생각한 답은 우리가 한국 맥주에 기대하는 것은 ‘맛’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조선 제일 맥주의 난적, 필라이트

좋은 재료를 써서, 맛있는 에일맥주를 만들었다. 당연히 가격이 비싸다. 500㎖ 한 캔에 3,600원이다. 웬만한 수입 맥주와 견주어도 결코 싼 가격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까 더욱 대중성 있는 수입 맥주로 손이 가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국산차보다 해외차에 엄지가 올라가는 그런 현상과 비슷하다.


동시에 팀킬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하이트진로의 떠오르는 효자 발포주 필라이트(Filite)다. 한국 맥주는 ‘값싸고 시원한 것’이라는 공식을 더욱 강화시키는 맥주로 퀸즈에일 한 캔 살 돈으로 필라이트 2캔을 사고 딸랑딸랑 동전이 남는다. 역시나 가격이 깡패여서 인기도 엄청나다.


사실 퀸즈에일과 필라이트는 우리나라 대기업 맥주의 방향이 어떻게 나갈지를 결정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맥주회사들도 값이 싼 발포주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판세는 기울고 있다. 퀸즈에일을 싸게 만들면 되지 않냐고? 세금의 영향에서 제법 자유로운 발포주도 수입 맥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퀸즈에일을 마시는가

단순한 가격 문제라고 여겼고, 실제로도 그것이 클 것이다. 하지만 퀸즈에일에는 더욱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다른 해외 맥주는 가졌는데 퀸즈에일은 가지지 못한 것. 바로 ‘전통’이다. 빠른 시간에 맛있게 만들었지만 인지도나 이야기, 절대적으로 즐겨 마신 사람이 부족하다. 이것은 하이트진로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생각이 날 때마다 퀸즈에일을 마시려 한다. 이렇게 좋은 맥주를 단종시키는 것은 보기가 싫어서 보이콧이 아니라 일종의 바이콧(Buycott)을 하게 된다. 이런 맥주는 전통을 만들어주는 게 참된 맥덕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퀸즈에일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 ‘다시는 한국 맥주를 무시하지 마라’라고 하는 맛.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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