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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상대에게 불가능한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그냥 내 편을 들어주고, 무조건 내가 옳다고 해주고. 이걸 안 해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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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작성일자2018.03.14. | 68,504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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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여러 관계가 있다. 그중 부부 관계를 보자. 부부 관계에서 가장 많이 저질러지고 있는 오류가 하나 있다. 바로 상대방에게 어떤 걸 요구하는 경우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간단한’ 것들이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서든 무조건 자기편을 들어주는 것.

당신이 누군가와 언쟁이나 다툼을 벌일 때 그가 무조건 당신이 옳다고 해 주는 것.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때, 당신이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 우선 당신의 기분부터 봐주는 것.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우선 당신의 의견부터 찬찬히 들어주고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것.

당신이 말한 것에 대해서 무조건 해결책이나 답을 주기보다는 그저 고개만 끄덕여 주거나 “그랬구나.”라고 말해 주는 것.

왜 이렇게 간단한 것들을 해주길 바랄까? 왜냐하면, 당신이 바라는 것은 정답이나 해결책 제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 :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때로는 상대방이 왜 이 간단한 것 하나 못 해주는지 정말 답답하지 않은가? 내가 무슨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이 몇 가지만 해 주면 이제까지처럼 다투거나 싸울 일이 없을 텐데. 부부 관계가 훨씬 평화롭고 행복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미안하지만 당신이 바라는 것은 ‘간단한 것’들이 결코 아니다. ‘쉬운 것’도 아니다. 매우 어려운 것이다. 당신이 바라는 그것들은 엄청나게 수준 높은 마인드가 있어야 하는 행동들이다.


진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정말 많은 훈련도 필요하다. 결코 그냥 되는 것이나 어느 정도 마음먹었다고 되는 것들이 아니란 말이다. 진짜다.


연습 되지 못하고 훈련되지 못한 상대에게 위에 말한 걸 요구하는 건 마치 중, 고등학생에게 박사급 수준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처음부터 그런 것에 재능이 좀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이 제대로 할 수 없는 반응과 행위들이기 때문이다. 유언, 무언으로 당신의 그런 요구와 바람을 느끼는 상대방은 얼마나 황당할지 생각해 보라.

‘아니, 왜 나에게 그런 수준을?’

문제는, 상대도 상대이지만 그걸 바라고 요구하는 내가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는 아주 간단한 일인 것 같은데 나에게 그거 하나 안 해 주네.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는 거야.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날 존중하지 않는 거야. 날 무시하는 거야. 네가 최선을 다 하지 않는 거야.’라는 생각이 결국 본인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왜?


안될 걸 계속 바라기 때문이다. 상대방도 하기 싫어서,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게 아니다. ‘못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계속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요구하면서 그게 안 되는 것에 대해 계속 유무언의 압박을 가하면, 상대도 괴롭고 나도 괴로워지는 것이다.


물론 때에 따라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애씀으로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정도의 수준이 있다는 말이다. 박사급은 아니어도 대학 학사급 정도는 되는 수준이 분명 있다. 그런 건 물론 상대방도 노력하고 연습하고 해서 좀 해 주면 좋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엔 내가 상대의 그 정도 수준에 만족하지 못한다. ‘겨우 그 정도로? 안 돼~’, ‘더 할 수 있잖아’, ‘적어도 ~정도는 해 줘야지’. 이렇게 요구하게 된다.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에 상대방이 기껏 보인 수준으로는 나도 만족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 순 없다. ‘현실’은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물론 개인적인 노력에 따라 상대방이 정말 내가 원하는 그 수준으로, 박사급 수준으로 내가 원하는 반응을 해 주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케이스는 드물다. 마치 수 백 명 초중고 학생 중에 나중에 박사가 되는 이의 수가 적듯이 여기서도 마찬가지란 말이다. 그러므로 정말 ‘현실’을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그게 나에게도 이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 노력할 수 있는 경우는 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하나 더. 상대방이 아니라 ‘나’는 어떤가? 상대방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을 요구하는 나는 정작 어떤가 말이다. 그런 요구를 할만한가? 내가 상대에게 그런 걸 요구하고 바라고 있다면 상대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내 요구만 정당화될 수 있을까? 적어도 할려면 ‘같이’ 해야 공평하지 않은가 말이다. 요구할 건 요구하자.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돌아보는 것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냥 포기하고 계속 불편하게 살란 말인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가 해 볼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전에 일단 위에서 말한 것, 즉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상대에게 요구하는 그 수준이 정말, 정말 높은 수준의 것이란 걸 눈치채는 게 중요하다. 아주, 아주 중요하다.


그래야 일단 불가능을 요구하며 키웠던 마음의 불만족이 잦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만 되어도 우리가 얻는 건 아주 크다. 그리고 원한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바로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는’ 단계이다. 아예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가능할 수준의 것이 마치 가능한 것인 양 착각해서 그걸 계속 욕구하는 것도 아니라, 정말 할 수 있는 만큼 차근차근 해 보는 것이다.


여러 가지가 있다. 요즘에는 그런 걸 배우거나 연습할 수 있는 여러 강연, 프로그램 등이 있다. 상담과 코칭도 있다. 만약 나와 상대의 수준이 뭔가 부족하다면, 그래서 계속 원하지 않는 충돌과 다툼이 생긴다면 그러면 배우는 것이다. 연습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관계와 대화 등은 ‘그냥 되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세상에 그런 건 없다. 그냥 되는 건 없다.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하려면, 어떤 한계를 넘으려면 노하우와 테크닉을 더 배우고 체화해야 한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관계는 더더욱 그렇다. 그걸 공짜로 잘 되길 바라는 건 그냥 하나의 착각일 뿐이다.


남들은 배우지 않고도 다 잘 한다고? 왜 나와 우리 부부만 그렇게 애써야 되냐고? 오해다. 그런 경우는 없다. 당신이 보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한 곳에서 그들도 다 애쓰고 노력하고 연습하고 훈련한 결과이다. 그게 그냥 되었다고 여긴다면 그들의 노력에 대한 모욕이다.

 

뭔가 안 된다면, 그럼 원인은 간단한 거다. 뭔가 부족하고, 뭔가 빠뜨리고 있고, 뭔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해결책도 간단하다. 부족한 것을 채우고, 빠뜨린 것을 찾고,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 외에 답은 없다. 물론 쉽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안될 것도 아니다.


우리는(나는) 나름 할 노력 다 했고, 해 볼 거 다 했다고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은 더 이상 할 게 없다고, 어쩔 수 없는 것이다고 항변하고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실제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아직 더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해 볼 수 있는 게 있고, 더 할 수 있는 게 있다. ‘어쩔 수 있는’ 게 있다.


이것은, 노력이 부족하니 더 “노오오오오력을 해야지”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게 아니라 ‘아직 가능성이 더 있습니다’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어지간히 해 봤기 때문에 더 이상 정말 아무런 가능성, 가망이 없는 관계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 경우라면 잘 끝내면 된다.


그러나 아직 찾지 못한 가능성이 더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나와 너가 할 수 있는 게 더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찾으면 된다. 결코 의무나 강요, 설득으로 말하는 게 아니다. 끝낼 관계면 끝내라. 다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가능성이 더 있다는 것.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상은 꼭 부부 관계에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다. 연인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 관계,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다. 관계마다 고유성에 따라 조금씩 적용이 달라질 순 있겠지만 큰 원칙은 똑같다.


사실 인간의 모든 관계는 그 구성원이 달라질 뿐 똑같다. 즉,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이 관계를 맺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되는 ‘인간 공통의 문제’가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게 꼭 부부 관계라서, 연인 관계라서, 부모와 자식 관계라서 그런 어려움과 고통이 발생하는 게 아니다. 그냥 인간이 둘 이상 있게 되면 본래 생기는 문제들이다. 왜냐하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또한 동물이다. 전전두엽이 발달하고, 말을 할 수 있고, 손을 좀 더 쓸 수 있고, 털이 없다뿐이지 인간도 당연히 동물이다. 그렇기에 같은 공간에 있거나 관계를 맺어 연결이 있게 되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게 현실이니까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면 오히려 더욱 적절히 파악할 수 있고, 반응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다른 동물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자신들의 현황을 직시하지도 못할뿐더러, 본능과 패턴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동물이지만 특유의 이성 기능으로 이런 것을 할 수 있다. 여러 부정적 패턴을 의도적, 의식적으로 멈추거나 바꾸고,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다. 물론 쉽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안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어이구, 내가 저 인간만 안 만났어도’, ‘저 인간만 아니면 내가 참 잘 살 건데’ 등의 생각은, 진실도 아닐뿐더러 전혀 도움도 안 된다. 어떤 인간을 만났어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물론 서로 케미가 잘 맞는 경우들도 있고, 그런 관계들은 다른 경우보다는 한결 좋고 편안한 관계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드물며, 그들조차도 기본적인 충돌과 갈등은 같다. 상대적 차이가 있겠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의미 있는 정도는 아니다. 타인들의 관계를 눈에 보이는 대로만 오해하지 말라.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또 안 보이는 건 거의 다 비슷하다.


다시 말하지만, 정히 안 될 관계 같으면 어떤 식으로든 잘 끝내라. 하지만 ‘가능성’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면 충분히 그 가능성과 여지를 살리라. 어차피 다른 이를 만나도 인간관계는 다 비슷하다. 그러니 지금 관계에 가능성이 있다면 그걸 잘 살리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관계는, 많은 경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 필로 이경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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