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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남은 자들을 위하여

조회수 2018. 3. 16. 16: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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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서 무얼하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 쓸쓸해 하는 나의 존재가 내 앞에서 라면을 먹는 사내를 쓸쓸하게 해주었을 일을 생각하면 더욱 쓸쓸하다. 쓸쓸한 것이 김밥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간다.

- 김훈, 『라면을 끓이며』

먹지 않아도 아는 맛이 있다. 외롭고 쓸쓸한 맛이다. 모두가 떠난 곳에 남아본 적 있는 이는 알 것이다. 그해 설에는 유독 눈이 많이 왔다. 폭설이 발걸음 소리마저 삼켜버린 그 날도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나처럼 갈 곳 없는 한 줌의 취준생들이 책상을 지키고 있었다.

출처: 중앙일보

섬처럼 넓은 책상을 쓰면서도 낯모를 그들이 있어 조금은 든든했다. 두려운 건 배고픔이다. 연휴에는 학생식당도 문을 닫는다. 기댈 곳은 도서관에 딸린 편의점과 빵집뿐. 나는 빤한 메뉴를 고민하며, 공복감을 참고 또 참았다. 당이 떨어져서 어지러울 무렵, 용기를 내어 일어났다. 그래, 가자. 가보면 뭐라도 있겠지. 


빵집에 들어서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뭘 먹나 한 바퀴 둘러봤다. 3,000원 이상의 메뉴를 사 먹는 사람이 없다. 샌드위치는 사치다. 소보로빵, 치즈빵, 마늘빵 등을 움켜쥔 손 옆에 텀블러가 놓여 있었다. 저 속에는 분명 카누가 들어 있겠지. 나는 텀블러를 든 손이 부끄러워 슬며시 아래로 떨구었다.


편의점 메뉴도 별 볼 일 없기는 마찬가지다. 컵밥을 고를까 고민하다, 하도 먹어서 내 트림 냄새마저 물릴 지경인 라면과 삼각김밥을 집었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창밖으로 난 긴 테이블에 앉았다. 곁눈질로 보니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모두 컵밥 아니면 컵라면이다. 오로지 빨리 먹기 위해 먹기에 열중하는 사람들. 구차한 메뉴를 껴안고 다닥다닥 붙어 앉은 이들이 부담스럽기는 피차 마찬가지다.


나는 컵밥을 안 먹어도 그 맛을 알 것 같았다. 자석의 동극처럼, 너무 잘아서 멀리하고 싶은 그런 맛이겠지.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등 돌린 거울이었다. 창밖에 쌓인 눈 위로는 고양이 발자국이 나 있었다. 자주 보이던 새끼 고양이는 어미 품에서 따뜻하게 보냈을까. 쓸쓸한 건 인간만으로 족한데.

출처: tvN
드라마 〈청춘시대〉의 윤진명. 일요일마다 자신을 위로하는 의식으로 맥주를 한 캔씩 마신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등 돌린 거울이다 


한여름의 카페에서 그해 겨울의 도서관을 본다. 주말이면 콘센트 넉넉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취준생으로 붐빈다. 자소서 쓰는 취준생A, 토익 공부하는 취준생B, 스터디 하느라 모인 취준생C, D, F….


이들의 모양은 대체로 비슷하다. 테이블 위에는 몇 시간째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얇아진 지갑 탓에 취향이 사라지고, 동등한 맛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물론 컵라면이 아메리카노에 비할 바는 못 된다. 하지만 홀아비 심정은 과부가 안다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그 짧은 틈에도 취준생은 다른 취준생의 경제적인 선택을 알아본다.


본격 휴가철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서 자리를 지킨다. 한 취업포털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취준생의 절반은 휴가를 가고 그중 삼 분의 일은 부모님이 준 돈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그럴 여유가 없는 이들은 이 기나긴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출처: 조선일보

나는 도시에 남은 이들이 늘 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좋지만 가끔은 계절 음료도 시키고 호화롭게 케이크도 먹었으면 좋겠다. 남들 놀러 가는 때 머리 싸매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 


집에 가는 길에 맥주를 사다가 재밌는 영화라도 한 편 다운받아 보고 잠드는 건 어떨까. 아니면 근처 공원에서 시원한 분수를 구경하며 여름밤을 산책하는 것도 괜찮겠다. 몸도 마음도 축축 늘어지는 계절이다. 이런 날씨에는 자신을 너그럽게 대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한테 가혹하게 굴면 타인에게도 가혹해지는 법이다.



‘행불행의 총량제’를 허하라


불행에도 총량제가 있으면 좋겠다. 돈과 시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숨이 막힌다. 낯모르는 사람들의 불행이 거대한 구름이 되어 내 머리 위로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다. 그것이 미약한 형태의 연대로라도 이어지면 좋으련만, 우리는 철저히 혼자다. 도서관에서, 독서실에서 저마다 책에다 코를 박고 시간과 사투를 벌인다.


그럼에도 타인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지는 못해 조그마한 것에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불행의 크기를 어쩌지 못할 바에야 너도나도 평등하게 불행한 게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때 ‘비싸지도 않은 빽다방 커피 마셨다고 다른 수험생에게 쪽지를 받았다’며 논란이 된 한 취준생의 포스트잇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어느 공시생이 독서실에서 받았다는 포스트잇

‘평등한 불행’은 실제로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우리는 지금까지 숨 쉬듯이 불평등을 목격해왔다. 부모의 재력이 다르고, 졸업한 학교가 다르며, 체득한 문화적 수준도 다르다. 이 누적된 차이에 비하면 빽다방과 카누의 차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취준생이라는 이름으로 한시적인 불행을 공유하지만 알고 보면 저마다 다른 계층 출신의 사람들이다. 저 포스트잇의 주인도 알 것이다. 빽다방 커피에 항의해봤자, 이미 옷과 가방, 신발에서 드러나는 격차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자신한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타인의 작은 행복 정도야 너그럽게 봐주면 어떨까. 사정이 달라도 그래 봤자 서로의 거울 같은 사람들인데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소수에게 행복이 집중되는 사회구조가 문제인데, 이를 건드리기 어려우니 눈앞의 만만한 이웃에게 그 화살을 돌린다. 상대적 박탈감은 뉴스를 보고 느끼는 게 맞다. 정권 실세와 가깝다는 이유로 공무원이 되고, 공기업에서 일하고, 국가대표가 되는 세상이다. 교육부 고위 공무원이 민중을 개돼지라 부르는 것은 백날 일해봤자 우리가 그들의 발끝도 못 좇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에도 ‘총량제’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 집단에 불행이든 행복이든 그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을 때, 강제로 환기하는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이러다가는 불행한 공간에서는 질식해서, 행복한 공간에서는 부패로 다 죽게 생겼다. 새 정부가 열심히 그 시스템을 만들고 있으니 앞으로는 좀 나아지려나.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사회가 주는 독이 있다. 필기에서, 면접에서 불합격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 멍이 든다. 겉으로는 태연해도 속은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저마다 가슴속에 시한폭탄을 하나씩 품고 매일 아침 독서실로 향한다. 멀쩡한 사람도 괴물이 되기 쉬운 환경이다. 


그러니 가끔은 독서실이나 도서관을 탈출해 그 야만의 시간을 버티는 자신에게 보상을 해주는 게 어떨까.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오롯이 자기만족을 위한 텃밭을 마음속에 가꿀 필요가 있다. 내가 어디서 무얼 하든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기억하고 확인하기 위해서다. 괴물 같은 세상에 산다고 꼭 괴물이 될 필요는 없다.


원문: 김은화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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