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과 한국어 가사

조회수 2018. 3. 9. 2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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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것=전통문화=국악인 것은 아니다.
2017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무대에 등장해 화제가 된 방탄소년단

케이팝을 다른 글로벌 팝음악과 차별화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한국어로 된 가사’라고 생각. 특히 해외 수용자들에게 있어서 이 ‘한국어 가사’가 갖는 상징성은 굉장히 크다. 한국어로 된 가사가 영어로 된 가사에 비해서 뭔가 대단히 시적이거나 훌륭한 의미를 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해외 수용자 대부분은 가사가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더불어 일반적인 케이팝 음악에서 가사가 갖는 중요성은 그리 크지 않다. 힙합이나 어쿠스틱 포크 음악처럼 가사가 담은 내용이나 운율(rhyme)이 곡의 질를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반적인 케이팝 음악 가사에는 영어 단어(혹은 간단한 문장)들이 꽤 높은 비중으로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한국어로 된 가사가 의미있는 이유는, 그것이 케이팝을 ‘케이팝답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해외 수용자들이 케이팝을 듣는 이유, 특히 동아시아 바깥의 수용자들이 케이팝을 듣는 이유는 대체로 일반적인 글로벌 영미 대중음악과는 다른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바깥 지역, 특히 북미의 케이팝 팬들이 만든 리액션 비디오를 보거나 해당 지역 미디어가 케이팝에 대해 설명해 놓은 기사들을 보면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케이팝에서 그들은 흔하디 흔한 팝 음악(혹은 EDM이나 힙합 음악)과는 다른 ‘대안(alternative)적 요소’를 발견한다.

케이팝 리액션 비디오로 유명한 KSpazzing

사실 음악적으로 보면 그 ‘대안’이라는 것이 별 것 아니다. 케이팝이 소위 ‘한국의 전통적인’ 어떤 요소를 강하게 품은 것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삼바(samba)나 레게(reggae)처럼 음악 그 자체로는 ‘다름’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물론 그것이 무대 퍼포먼스 및 패션과 결합되면 달라지지만). 그런데 한국어 가사가 붙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음악은 ‘이국적 정취(exoticism)’를 제대로 풍긴다. 


해외의 일반적인 수용자들에겐 일견 우스꽝스럽고 생경하게 들리겠지만, ‘대안’적인 음악을 찾는 소수에게는 케이팝을 흔한 팝음악과는 다른 느낌으로 만들어 주는 중요한 순간이다. 사실 케이팝은 여전히 ‘메인스트림 팝’이라기 보다는 영미 대중음악의 지배력이 다소 약화되고 취향이 다변화하는 현재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틈새 시장’을 잘 찾아가는 경우다(굳이 ‘메인스트림 팝’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의문스럽다).


따라서 해외 수용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팝음악과는 다른 ‘이국적인 정취’를 반드시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음악적인 양식에서 이미 글로벌 보편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음악은 그래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EDM(그리고 약간의 힙합 양념)이고, 그럼에도 ‘한국어 가사’에서 이국적인 맛을 내주는 것이다.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굴림 중에 굴림

물론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화려한 군무와 무대 퍼포먼스, 독특한 색감과 분위기의 뮤직비디오 등도 케이팝의 ‘이국적인 정취’를 만들어 주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한국말로 된 가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퍼포먼스, 뮤비, 춤, 가사야말로 해외 수용자들이 케이팝을 통해 느끼는 ‘한국적(혹은 이국적)인 어떤 것’이다. 


보통 ‘한국적인 것’이라고 하면 자꾸 전통문화적 요소를 떠올리는데, 그런 전통적인 요소만을 한국적인 미(美)라고 생각할 때 ‘강남스타일은 휘모리 장단을 바탕으로 한 곡’과 같은 억지스러운 해석이 등장하게 된다. 한국적인 것=전통문화=국악(혹은 민요)이 아니다.


따라서 케이팝의 세계화 (특히 미국·글로벌 시장 진출)를 위해서 영어 가사 붙이기를 자꾸 시도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다. 스웨디시 팝(Swedish Pop)은 영어 가사를 붙여서 세계에서 성공했지만, 글로벌 음악팬들이 스웨디시 팝에 기대하는 것과 케이팝에 기대하는 것은 다르다. 해외 케이팝 팬들이 ‘제발 영어 가사 하지 말고 계속 한국말로 불러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선 엑소

더불어 이것이 마냥 긍정적인 것인지는 좀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결국 케이팝의 인기, 특히 동아시아 바깥 지역에서의 인기도 과거 레게나 월드뮤직(world music) 같은 장르가 그랬던 것처럼 ‘이국적인 맛’에 기댄 측면이 강하다. 그들과는 달리 음악적인 개성이 분명하다고는 할 수 없는 케이팝이 어떤 식으로 글로벌 음악산업에 녹아들며 오랜 생명력을 유지할지 궁금하다. 


원문: 델리키트의 음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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