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이디어는 충분히 '익혀 먹어라'

조회수 2017. 12. 7. 15: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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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새롭기만 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창의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창의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진부한 질문이지만, 포드식 생산 체계를 벗어나고 이제는 너도나도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며 외치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생각해보자. ‘창의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새로움이다. 창의적인 생각, 창의적인 물건이라 하면 일단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와야 한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 우리로 하여금 감탄을 느끼게끔 만드는 것. 그런 것들이어야만 우리는 일단 그 대상에 창의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새롭기만 하면 될까? 단지 새롭기만 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창의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창의성은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되고 규정되는 것이다


창의성에 대한 정의(definition)는 학자들마다 천차만별이다. 새로운 발상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자체에 주목하는 학자가 있는 반면 그러한 아이디어가 현실을 만나 어떻게 적용되어 가는지에 더 역점을 두는 학자도 있다.


창의성을 성격의 한 유형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 문제 해결 능력의 일환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심지어 창의성을 일종의 증후군(syndrome)으로 보려는 이도 있다.


수많은 창의성 연구자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창의성의 정의에는 대개 두 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새로움. 그리고 유용성(사회적 가치).


단지 새롭기만 해서는 창의적인 산물이라 여기기 어렵다. 전문가, 혹은 다수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아이디어가 곧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혹은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더라도 이후 산출해 낸 결과물들을 통해 그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 낸 아이디어가 곧 창의적인 것으로 칭송받을 수 있다.


단지 새로움의 영역에만 집착해서는 우리가 흔히 새 시대의 경쟁력이라며 집착하는 그 창의성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인지심리학 분야에는 창의적 인지 접근(creative cognitive approach)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이는 창의적인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 기저에 있는 심리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한 접근 방법 가운데 하나다.


창의적 인지 접근을 다루는 심리학자들은 두 종류의 인지 과정을 제안한다. 생성(generative)과 탐색(exploratory)이 바로 그것이다.

생성이란 기존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말 그대로 새로움이 깃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상투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개념을 확장(conceptual expansion)시킨다든가, 기능적 고착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등을 통해, 혹은 기존에 잘 알려져 있던 개념과 개념 사이의 다양한 조합에 따라 우리는 일차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해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단지 새로움만으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라 하기 어렵다. 생성된 아이디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한계점을 의논하는 가운데 현실적인 활용 가능성을 고민해보는 탐색 과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창의성은 바로 이 탐색 과정에서 나온다.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분명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정형화되어 굳은 우리의 사고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켜 준다.


그러나 탐색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이디어는 정제되지 않은, 말 그대로 설익은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는다. 스타트업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투자심사 현장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심사 테이블에 올리는 것 자체는 의외로 그렇게 어렵지 않다.


누구나 살며 한 번쯤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만나고, 평소 사업에 관심이 있던 이는 그것을 곧 잠재적인 사업 아이템으로 연결시킨다.


그러나 그 새로운 아이템이 비로소 현실 적용 가능한, 실제로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 아이디어가 되기 위해서는 더 구체적으로 그 아이디어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가운데, 온갖 현실적인 제약들을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괜히 심사자들이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창의적 마찰(creative abrasion)이라 불리는 현상에 주목한다. 이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놓고, 이것이 실제적으로 현실에 잘 먹혀들어갈 수 있는 아이디어임을 주변에 설득하려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아이디어 내의 다양성이 커지며, 결과적으로 해당 아이디어의 잠재력이 더 커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나의 주장을 가지고, 타인을 설득한다는 행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 내 생각이 옳은지 적절한 근거를 통해 제시해야 함은 물론, 다른 생각들보다 유독 내 생각이 가치 있고 우선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설득의 대상이 되는 청중의 특성을 고려하는 일이 더해진다면 설득 행위의 어려움은 더더욱 커진다.


그렇다. 설득을 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고민, 그리고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이것은 초기 세상에 내어 놓았던 아이디어를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형태로 정제시키고 그것을 외부에 설득시키는 과정에서 비로소 두 번째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설득력을 더해가는 과정, 즉 창의적 마찰의 과정이 더욱 효율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설득 과정에 참여하는 토론자들의 다양성(diversity)은 간과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변인이다. 


출신, 배경, 성격, 경력, 가치관 등이 다양한 토론자들이 모여, 상호 의견의 타당성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의적 속성을 더욱더 단련시켜 준다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내포하고 있는 근본적인 가정에 대한 의문 제기에서부터, 실질적인 활용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소소한 물음들에 이르기까지, 의구심을 갖는 과정에서는 성역(聖域)이 없어야 한다.


더 다양한 상황과 조건 등을 고려했을 때에도 통용될 수 있는, 그런 완성도 높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정리해보자. 생성된 아이디어는 충분히 익혀 먹어야 한다. 탐색 과정을 거쳐 그것을 현실적으로 활용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과정 속에서 설익은 아이디어는 더더욱 정제되고, 단단해져 간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타인들이 납득 가능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 입안자나 설득자의 창의적 역량은 더욱 커진다.


다시 말해, 창의성이란 단지 새로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토론과 고민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얻어낼 수 있는 가치로운 산물임을 기억하자.


단지 생성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탐색, 창의적 마찰에 함께 주의를 기울여 상호 균형을 갖출 때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원활히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이 조성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이상과 현실이 절묘히 배합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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