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띄어쓰기를 회의한다

조회수 2018. 9. 20. 12: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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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명확한 원칙이나 논리가 없다.

글 좀 쓴다는 사람이 유난히 많이 틀리는 띄어쓰기가 있다. 바로 ‘그중’과 ‘그동안’이다. 이 둘은 한 단어여서 붙여 쓰는 게 원칙이나 글쟁이의 태반이 띄어 쓴다. 원흉은 바로 MS 워드. 붙여 쓰면 틀렸다고 빨간 줄이 뜨기에 다들 띄운다.

출처: 국립국어원 트위터

이는 재미난 현상을 야기한다. 아래아한글을 주로 쓰는 작가와 공무원은 붙여 쓰고 MS 워드를 주로 쓰는 기업체 직원은 띄어 쓰는 경향이 짙은 것이다. 거짓말 같으면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한번 유심히 살펴보라. 얼추 들어맞을 것이다. 


누군가는 질문을 던지고 싶을 것이다. 그게 왜 한 단어야? 그냥 띄어 써도 되지 않아? 일리 있는 말이다. 실제로 ‘그중’은 붙여 쓰고 ‘이 중’은 띄어 쓰는 게 원칙이다. 전자는 한 단어로 사전에 등재돼 있고 후자는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이중’을 검색하면 다른 뜻만 여섯 개 뜬다.


그러면 ‘이’는 띄우고 ‘그’는 붙이는 게 원칙일까? 그렇지 않다. ‘이외’ ‘이후’는 붙여 쓰고 ‘그 외’ ‘그 후’는 띄어 쓴다. 이외, 이후만 한 단어로 사전에 등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붙이고 ‘그’는 띄우는 경우니까 위의 사례와 반대다. 심지어 ‘그 후’는 띄우는데 ‘그전’은 또 붙인다. (엄밀히 말하면 이외, 이후 등은 별도의 한자어다.)


보다시피 명확한 원칙이나 논리가 없다. 그때그때 검색해서 정확히 쓰며 몸에 붙이는 것 외엔 달리 도리가 없다. 나처럼 일일이 따지면서 글 쓰는 부류가 아닌 이상 계속 틀리는 게 당연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처: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그러니 맞춤법/문법 검사기를 꼭 돌려보자.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이거 틀리는 게 뭐 대수인가? 의미 전달에 하등의 문제가 없지 않나. 원래 우리말엔 띄어쓰기가 없다. 예전 문서를 보면 죄다 한 덩어리로 된 줄글이다. 가독성과 편의를 위해 현대에 들어와서 뒤늦게 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물론 이를 두고 띄어쓰기 무용론을 주장할 수는 없다. 그건 청소기, 세탁기 등을 다 없애고 다시 빗자루로 쓸고 손빨래를 하자는 것과 같은 소리다. 띄어쓰기는 우리의 소통을 비약적으로 증진시킨 가히 혁명적인 장치다. 다만 그 기준이 항상 명료하지 않다는 것뿐.


일정 수준의 띄어쓰기는 누구나 생활화하고 있다. 이걸 등한시하는 건 곤란하다. 하지만 세밀한 영역까지 완벽하게 통달하기란 도통 쉽지 않다. 똑같은 단어도 접사나 조사로 기능하면 붙여 쓰고 의존명사로 기능하면 띄어 쓴다. ‘뿐’을 예로 들면 ‘그뿐이지’는 붙이고 ‘그럴 뿐이지’는 띄우는데 대다수의 사람은 이를 명료히 구분하지 못한다. 그저 편한 대로 쓸 뿐.


난 이런 게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직업적인 글쟁이나 편집자라면 꼼꼼히 공부하고 신경 쓰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 외에는 어느 정도 편하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맞춤법은 주의를 기울이는 게 옳으나 띄어쓰기는 관대히 여겨도 된다는 입장이다.


간혹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한데 묶어 이야기하는 경우를 만나는데 동등한 층위에서 다룰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규정집대로면 띄어쓰기 또한 맞춤법의 부분집합이다. 이 단락에서는 협의로 활용했다.)


원문: 길들지 않기를 꿈꾸는 철부지의 생각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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