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아몬드

조회수 2017. 11. 30. 14: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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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과 공평함, 그리고 상속에 대하여

기득권을 아무런 대가 없이 혹은 아주 헐값에 근본적인 이득을 취한 그룹이라 정의한다면, 전문직은 의외로 기득권이 아니다. 타인은 물론 자신까지 그렇다고 착각할지라도.

모두에게 24시간이 평등하게 주어졌다. 주당 40시간을 일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A가 한 달에 대략 120만 원을 번다. 그런데 B는 여가보다 돈을 소중히 여겨 주당 80시간을 일했고, 야간 휴일 수당까지 270만 원을 가져간다.

한편 주당 120시간을 일하기로 결심한 C는 360만 원 이상을 가져간다. 이때 C가 3배 이상을 번다고 해서 A보다 기득권이라 할 수 있을까? A도 자기 시간과 노력을 얼마든지 아르바이트에 배분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비록 통장의 숫자로 보이지 않지만, 여가라는 무형의 가치가 A에겐 돈을 상회하기 때문이다.

C에게 자동차를 사는데 필요한 돈은 여가와 수면의 가치를 상회한다. 양적으론 같은 댓가지만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A보다 3배 ‘잘 사는’ C는 괜스레 자기가 기득권이 된 것 같고 더 베풀어야 할 것 같은 부채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C에게는 A에게 밥을 살 시간조차 없었고 가끔 A의 자조 섞인 비아냥을 들을 뿐이었다.

40시간을 일하기로 한 아르바이트생, 80시간을 일하기로 한 아르바이트생을 넘어 아예 청춘과 목숨까지 걸고 베링해 꽃게잡이에 나선 D는 완전히 소식이 끊어졌다가 몇 년 후 편의점 알바들이 범접할 수 없는 자금을 마련해 살아 돌아온다.

물론 그 삶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A,B,C가 얼마든지 택할 수 있는 길이었지만, 그렇게 한 사람은 D뿐이었다.

모두에게 평생 먹을 아몬드 초콜릿 1000개를 똑같이 나눠주었다. 어떤 사람은 평생이란 제한을 생각하지 못하고 눈앞에 당장 가득 쌓인 초콜릿을 젊은 시절에 다 먹어치워 버리다가 배가 터져 응급실에 갔다. 노년에 배를 곯은 것은 물론이다.

아몬드를 먹으면 안 되는 이유 : 그 아몬드는 할머니가 초콜릿을 빨아먹고 남은… …. (생략)

다른 사람은 배만 채우는 딱딱한 아몬드는 먹지 않고 겉의 초콜릿만 빨아 먹었고, 젊은 시절 배가 터지지는 않았지만, 노년까지 남겨둔 아몬드는 이가 다 썩어 아쉽게도 먹지 못했다.


한편 현명한 사람은 젊은 시절에 초콜릿을 일일이 쪼개 분리한 아몬드만으로 젊은 시절의 식도락을 아쉬운 대로 달래다가, 노년에는 그다지 썩지 않은 이로 남아 있는 초콜릿을 먹으며 수월하게 지냈다.


그리고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아몬드 초콜릿을 통째로 적당히 아껴먹다가, 적당히 남은 아몬드 초콜릿은 이가 약해져 아몬드만 남기고 초콜릿을 빨아먹었다.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인생이었다.


그 외에는 젊은 시절에 무조건 초콜릿을 아끼다 아사한 이도, 아몬드만 먹다가 목이 막혀 죽은 이도, 한 번도 초콜릿을 먹지 않고 남겨뒀는데 음식 알레르기로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도 있었다.


젊은 시절에 초콜릿을 몽땅 다 먹어버린 이는, 젊은 시절에 아몬드를 먹고 노년에 아껴둔 초콜릿을 편하게 먹는 이를 기득권이라고 시기한다. 이가 썩고 아몬드만 남은 이들도 정도는 다르지만 마찬가지다.


분명히 모두가 잠재적으로 즐길 수 있는 초콜릿의 수는 같았지만, 먹는 전략에 따라서 결과적으로 즐긴 초콜릿의 수는 천차만별이었다.


선 아몬드 후 초콜릿 전략은 영리하게 효율만 높았던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인내라는 희생을 필요로 한 것이다.


노년에 후회한 이들은 머리가 나빠 전략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인내를 택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물론 베짱이 전략에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노년의 미각은 젊은 시절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렇게 불평등한 노년을 보내고 마지막 상속의 때가 왔다. 이번에는 썩은 이로 아몬드를 먹지 못해 남겨둔 할머니가 승자가 될 차례다. 젊은 시절에 아몬드를 먹고 노년에 초콜릿을 즐긴 사람은 노년까지 즐거웠지만 남겨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손자들은 아몬드 할머니를 좋아했다.

현실에서는 모두가 초콜릿을 똑같이 받지 않는다. 꽃게잡이를 하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못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이도, 80시간을 일하고 싶어도 몸이 약해 40시간밖에 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심지어 40시간 일해서는 기본 생계조차 이어나가기 어려울 때 불만이 심할 수밖에 없다. 80시간은 유일하게 남은 선택이니까.


꽃게잡이는 수입으로 보면 최고이지만 단지 이성에게 인기 있는 이미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결혼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모두의 출발선이 다르고, 모두가 원하는 것이 다른데 선택이 자유롭지 않을 때 기득권이 그려진다.


기득권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칼로 자르듯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다. 그러나 자신의 노동력과 대가를 선형적으로 교환해야 하는 전문직은 기득권의 애매한 정의에서도 상당히 벗어나 있다.


단순히 지불한 가치뿐만이 아니라 포기한 가치까지 생각한다면 그것은 가치관에 따른 선택의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초콜릿을 아주 좋아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 생각한다면 이득의 대소는 더욱 비교하기 어려워진다.


그저, 각자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최선을 선택하는 것일 뿐…


원문: 펜시브의 무권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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