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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결심했을 때

조회수 2017. 11. 27. 15: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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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들과 살기 이전의 삶을 이제는 상상하기 힘들다

하루에 두번 선이와 투닥거렸다


하루에 두 번 선이와 투닥거렸다. 선이는 많이 아팠다. 외이염을 앓고 있었는데 귓속에 문제가 있는 병이라고 한다. 그걸 내가 안 건 선이 귓밖으로 진물이 튀어나왔을 때였다.


다급하게 병원을 데리고 갔는데 의사 선생님은 ‘어린애인데 좀 많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날 나는 말도 못 하는 고양이한테 하루 종일 미안하다고 말했다.

선이, 감시받는 걸 싫어해서 종종 CCTV 전원을 꺼버린다

처음엔 그냥 연고 치료만 했다. 아침과 밤마다 서툰 방식으로 선이 귓속에 연고를 집어넣어야 했다. 여느 고양이에게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야옹’ 소리를 선이는 잘 내지 않는다.


아직 어린아이라서 힘도 약하다. 탄탄이었다면 내 몸에 몇 개의 생채기를 냈을 텐데 선이는 꽉 붙잡힌 내 품 안에서 아등바등 거리기만 한다. 세 번째 방문이 되어서야 선생님은 약을 건네주셨다.


약 먹기 싫은 건 냥이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의사 선생님은 ‘신기한 거 하나 알려줄까요? 고양이는 입안으로 들어간 걸 뱉지 못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이는 먹일 때마다 뱉어냈다.


아침저녁으로 억지로 약을 먹였더니 생각보다 빠른 호전세를 보였다. 선이 귀는 많이 깨끗해졌다. 물론 아플 때나 아프지 않을 때나 여전히 엄청 뛰어다닌다. 간식을 당분간 끊으라고 해서 덩달아 간식을 못 먹는 탄탄이에게도 미안할 뿐이다.


 

미아동 옥탑방엔 세 식구가 산다


탄탄이와 선이, 미아동 옥탑방에는 두 냥이가 나와 함께 살고 있다. 누군가는 ‘애완’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이 둘을 그저 나와 함께 동거하는 존재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두 냥이는 각자의 라이프 사이클을 갖고 있고 나는 그걸 훼방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두 냥이는 나를 배려할 이유가 없다. 한밤중에 둘이 같이 ‘우다다’를 시전하며 내 잠을 깨울 때면 나는 성질을 낸다.

내가 일할 땐 꼭 컴퓨터 앞에서 잔다
“아 잠 좀 자자고!!!”

집에 설치한 cctv는 애들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녹화해서 보여준다. 탄탄이는 제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지만 선이는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한 시간에도 몇 번씩 움직이고 뛰어다닌다.


이따금 탄탄이가 내려오면 바로 괴롭히러 간다. 선이는 귀찮아도 그냥 꾸역꾸역 참아내다 결국 다시 올라간다. 그러다 지치면 선이는 제 자리에서 발라당 누워 잔다.


엿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하다. 혼자 미소를 짓는다. 서둘러 퇴근해서는 두 냥이들한테 외친다.


“고양이들아 나 왔다”

탄탄이는 퉁명스럽게 쳐다보다 내가 짐을 풀고 씻고 침대에 누우면 그때야 내 곁으로 온다. 선이는 내 곁으로 잘 오지 않는다.


대신 내가 잘 때 내 등에 기대서 쌔근쌔근 잔다. 탄탄이는 불만 끄면 내 몸속으로 파고든다. 털 있는 짐승 둘과 동거하는 건 꽤나 마음에 큰 도움이 된다.


 

동거, 그 행복의 이면


첫 번째 내 동거묘, 탄탄이를 들이기 전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나조차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는 내가 다른 생명을 제대로 책임질 수 있을까.


퇴근하고 현관문에 들어설 때 마주하는 텅 빈 방을 온기로 채워주며, 컴퓨터를 켜고 남은 일을 할 때 무릎에 앉아 외로움을 나눠주는 고양이의 위대함이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옷에 묻은 고양이의 털을 매번 떼어내야 하는 귀찮음을 떠올려야 했고, 혹시나 이불에 실례라도 하면 엄청난 양의 이불빨래를 해야 할 번거로움을 상상해야 했다.


매달 나가는 사룟값과 간식비, 화장실 모래 등등은 적지 않은 돈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혹시나 아프기라도 하면 보험도 되지 않는 동물병원에 내 월급만큼의 돈을 쏟아부을 각오를 해야 한단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탄탄이, 오버워치 궁을 쓸 줄 알고 전기장판을 켤줄 안다

스스로가 못 미더워서 처음에는 탄탄이를 석 달만 맡기로 했다. 나는 고양이와 부대껴 살 때 필연적으로 따라올 불편함이 어느 정도 크기일지 가늠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석 달은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석 달 동안 우리는 꽤 친해졌다. 내가 집에 들어가면 꼬리를 흔들며 반기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는 동선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졸졸졸 쫓아다녔고 나는 장난감을 흔들며 탄탄이의 고공 점프 쇼를 보고 깔깔 웃어댔다.


석 달이 지나고 나서 임시 보호를 요청했던 보호자는 사정이 있으니 조금 더 맡아줄 수 없겠냐고 했다. 그때 나는 이미 누군가와 동거하는 불편함보다 서로의 등을 맞댈 때 느껴지는 온기가 더 절실했다. 탄탄이는 나와 가족이 되었다.


탄탄이와 같이 살기로 결심한 뒤 몇 번은 크게 짜증이 났었다. 격무로 피곤해져 잠을 억지로 청하자마자 온방을 사정없이 뛰어다녔다. 화를 내도 소용이 없었다. 나와 고양이의 말하는 방식은 달랐다.


어느 날은 하루걸러 이불에 일을 보았다. 나는 복도에 나와 혼자 욕지거리를 했다. 그달에 이불을 스무 번은 넘게 빨았을 거다. 그 이유가 탄탄이의 몸에 변화가 생겨서인 걸 알고 나서야 비로소 탄탄이에게 사과했다.


하루는 잠깐 열린 문 사이로 탄탄이가 뛰쳐나갔다. 나는 그걸 모르고 있었다. 한참을 조용해서 온 방을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집 주위를 둘러보았다. 옥탑방 구석진 곳에서 탄탄이가 무서워 떨고 있었다.


이리 오라고 해도 겁이 많은 탄탄이는 낯선 환경 때문에 모든 걸 경계 했다. 재빨리 방문을 활짝 열고 탄탄이에게 다가갔다.


탄탄이는 나를 피해서 옥탑방을 돌고 돌아 방으로 들어갔다. 집 나가면 고생이란 걸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나는 그날 식은땀을 많이 흘렸고 그날 이후로는 문을 열고 닫을 때 고양이들의 위치를 항상 확인한다.


 

애완의 대상을 넘어


‘고양이는 혼자 두어도 외로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여섯 평 남짓의 썰렁하고 좁은 방에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혼자 보낼 탄탄이가 매일 신경 쓰였다. 선이가 우리 집에 들어오기까지의 결심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집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선이

둘은 제법 성격이 다르다. 탄탄이는 집에 손님이라도 들어오면 구석에 숨어서 벌벌 떨며 하악질을 해대지만 선이는 금방 친해지고 몸을 부빈다.


반대로 탄탄이는 나에게 매우 의존적이다. 잠도 항상 나와 자려고 하지만 선이는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묵묵히 한다. 어느 날 선이를 감싸 안으면 10초도 채 되지 않아 내 품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탄탄이는 내가 누워있으면 내 가슴팍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는다.


선이는 우리 집으로 온 첫날부터 탄탄이를 연신 괴롭혀댔고 탄탄이는 도망가기 바빴다. 견디다 못해 탄탄이가 선이를 쥐어박으면 선이는 5초 정도 시무룩해지다가 다시 괴롭히기 시작했다.


천방지축인 선이가 집에 온 뒤로 탄탄이는 갑자기 의젓해졌다. 반년이 지나서야 둘은 포개어 같이 잠도 자고 종종 서로를 그루밍해주기도 한다. 이제 미아동 옥탑방의 세 식구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와 빈자리를 쉽게 느낄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명백한 서열

누군가가 고양이와 동거하고 싶다고 말하면 나는 불편한 면부터 부각한다. 당신이 혼자 살던 그때보다는 훨씬 더 번거로움이 많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당신이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절대 이전으로 되돌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꼭 덧붙인다.


고양이는 당신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쏟아붓고, 사랑의 수명이 다했을 때나 혹은 불편함의 크기를 감당할 수 없었을 때 다시 치울 수 있는 애완품이 아니라 당신의 집에 당신과 동등하게 거주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 한다. 나는 이 두 냥이들과 같이 살기 이전의 삶을 이제는 상상하기 힘들다고. 나는 내가 서툴 거라고 생각했지만 두 냥이들 덕분에 이제는 누군가와 같이 살아가는 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다고.


만약 당신이 고양이와의 동거를 시작하고 싶다면 그를 애완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볼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여러 번 되물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만 준비되면 나머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양이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귀엽고 당신은 그 귀여움에 짓눌려 노예 같은 삶을 살게 될 테니…


원문: 백스프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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