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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성격설'은 과연 쓸모없는가?

조회수 2017. 11. 25. 19: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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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믿음이 사회적으로 고착화되면, 그 믿음은 결국 '진실'이 된다.
A형은 내성적이고 우유부단, 소심한 성격
B형은 자기주도적이고 외향적인 성격
O형은 인정 많고 매사에 둥글둥글한 성격
AB형은 생각이 유별나고 스릴을 추구하는 성격

‘아직도’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혈액형 성격설의 한 예시다. 혈액형 성격설은 분명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허구이지만 아직도 혈액형 성격설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기사: A형은 소심하다?…10명 중 6명 “혈액형별 성격 믿는다”).


만약 아이들이 혈액형 성격설을 믿는다고 말했다면, 그 이유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직관적인 차이에 솔직하고 민감하여 지극히 사소한 ‘차이’만을 가지고도 네 편, 내 편 가르는 데 익숙하다. 또한 부정확한 정보를 거르거나 현상 간의 논리적인 연관을 파악하는 사고 능력이 아직 한창 발달 중인 시기이기에 더더욱 혈액형 성격설에 취약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 외부에서 모신 의사 선생님께서 내가 다니던 학교에 오신 적이 있다. 건강 검진 목적으로 나를 포함한 반 아이들의 피를 뽑아 가셨는데, 며칠 후 검사결과지를 받아보니 그곳에는 내 혈액형 유형이 적혀 있었다. 그 날, 나와 친구들은 서로의 혈액형 유형을 토대로 각자의 ‘인간성’을 논했다. 네가 A형이라 성격이 평소 그런 행동을 자주 했구나, AB형이라 그렇게 장난을 많이 치는구나, B형이라 어떠하구나 등등. 그런데 혈액형 성격설에 심취해 버린 한 친구는, 검사결과지를 받은 날부터 내게 자신의 물병을 건네 물 한 모금 마시게 하는 호의를 거두어 버렸다. 자신과 나는 혈액형 유형이 서로 달라서 안된다나.


그러나 어른이 된 우리들은 혈액형 성격설을 믿지 않아야 한다. 단순히 개인 ‘취향’으로서 믿는 것까지는 모두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혈액형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이, 사회 외부로 흘러나와 타인을 향한 ‘차별’의 근거로 작동하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


혈액형 성격설에는 타당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을 뿐, 사실 개개인의 성격 차이를 결정하고 조절하는 인자들은 별개로 존재한다. 어쩌다 혈액형 유형과 특정 성격 유형 간 상관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착각적 상관(illusory correlation)의 한 예시일 뿐, 두 변인이 인과적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심리학자, 생물학자들을 포함한 여러 과학자들이 그렇게도 ‘혈액형 성격설’의 허구성을 부르짖는 것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비록 때로는 혈액형이 성격을 결정한다고 믿고 싶겠지만, 누적되고 또 누적되어 온 과학적 반박 증거들을 섣불리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유형론에는 ‘새는 구멍’이 있다


한편, 혈액형과 성격 간 관계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혈액형이 성격을 ‘결정한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터넷에 떠도는 혈액형 성격설은, ‘유형론(typology)’의 한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형론의 가장 대표적인 한계점은 하나의 유형과 다른 하나의 유형 사이, 그 사이의 ‘예외’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특정 군집의 사람들로부터 공통적으로 추출될 수 있는, 유형은 분명 있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것이 현재 가장 신뢰받고 있는 성격 이론 중 하나인 성격 5요인 이론(‘Big 5’. 외향성/성실성/개방성/동조성/신경성)이다.


그러나 성격 5요인 이론과 혈액형 성격론 간의 가장 중대한 차이점은 곧 ‘수준(level)’에 대한 반영이다. 성격 5요인 이론에서는 가령 ‘외향성이 높다’라고 하더라도 사람들마다 다 같은 수준의 외향성을 보유하고 있으리라 가정하지 않는다. 외향성은 그 강도에 따라 높고 낮은 수치로 표현되며 이는 나머지 다른 4가지 요인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결론적으로 성격 5요인 척도에 응답하고 나면 우리는 오각형으로 이루어진, 나의 성격에 대한 프로파일(profile)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혈액형 성격론에도 ‘수준’이라는 개념이 반영되어 있었던가?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므로 혈액형 성격설에 입각한다면, 가령 A형인 사람들은 모두 다 똑같은 성격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과연 그런가?

그러나 혈액형 성격설에 대한 논의는, 단지 ‘혈액형 성격설은 거짓이다’는 결론으로 끝날 수 없다. 왜냐하면 혈액형 성격설의 참/거짓 여부와 관계없이, 사람들이 실제로 그 설명을 ‘믿고 있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타 과학적인 학문들과 달리 심리학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하고도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혈액형 성격설에 대한 고정관념(Blood-Typical Personality Stereotypes)이 갖는 영향력에 주목했다. 특히 혈액형 성격설이 붐을 일으켰던 곳은 일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여기에 일본 심리학자들의 관심은 상당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Kudo(2003)는 혈액형 성격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사회심리학의 확증 편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석했다(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들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분석 결과, 혈액형 성격설을 믿는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정보를 습득할 때, 혈액형 성격설에 부합하는 사례를 향한 편향성을 나타냈으며 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였다. 쉽게 말하자면, 혈액형 성격설을 믿는 사람들은 가령 ‘소심한 A형’에 대해서는 개방적인 태도를 갖는 반면, 고정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소심하지 않은 A형’과 같은 정보는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혈액형 성격설에 대한 믿음은 비단 타인의 성격을 판단하는 잣대로만 활용되지 않는다. 혈액형 성격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들마저, 자신의 혈액형 유형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심리학의 자기충족적 예언과 혈액형 성격설에 대한 고정관념은 그렇게 서로 연관된다. 자기충족적 예언이란 스스로가 믿고 기대하는 미래의 모습대로 되고자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방향성을 조정하려는 성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를 혈액형 성격설에 대한 고정관념에 접목시키면 다음과 같은 예측이 만들어진다.


‘B형은 자기주도적이고 외향적이다’라고 믿는 B형 개인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자기주도적이고 외향적’인 방향으로 맞추어 갈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가진, 혈액형 성격설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길이요, 미래의 자신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혈액형 성격설에 대한 고정관념과 자기 충족적 예언 간의 관련성이 한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일본에서는 1984년을 기점으로, 혈액형 성격설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일본의 심리학자인 사카모토와 야마자키(2012)는 1984년을 전후로 혈액형 유형과 성격 기질 간의 관련성이 달라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었다. 구체적으로, 1984년도 이전의 데이터에서는 혈액형 유형과 실제 사람들의 성격 간에는 별 관련이 없어 ‘혈액형 성격설’이 틀렸음을 보여주었으나, 1984년 이후부터는 혈액형 유형과 성격 간 유의미한 상관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잘못된 믿음이 사회적으로 고착화되면, 그 믿음은 결국 실체를 가진 ‘진실’이 된다.

심리학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만이 아니다. 혈액형 성격설의 예시가 보여주듯, 인간은 때로 ‘진실’보다는 ‘진실에 대한 나름의 믿음’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바꾼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현상의 사실관계 여부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믿고 행동하고 있는가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때에야 비로소 더욱더 타당하고 신뢰로운 인간 이해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쩌면 심리학자 드웩(Dweck)의 주장으로 유명해진 암묵적 이론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암묵적 이론이란 ‘변화 가능성’에 대한 개개인의 암묵적 믿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능력, 도덕성, 정치적 성향 등이 실제로 변화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개개인이 그 변화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믿는지 여부에 따라 목표 추구를 향한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Dweck & Leggett, 1988).


이 암묵적 이론은 무수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검증되었으며 사실 못지않게, 사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로 남게 되었다.


출처: 허용회의 브런치


참고 문헌

  1. Dweck, C. S., & Leggett, E. L. (1988). A social-cognitive approach to motivation and personality. Psychological Review, 95(2), 256-273.
  2. Kudo, E. (2003). The Effects of Blood-Typical Stereotypes in Person Perception: What is Affected by the Belief in Blood-Type Based Personality Theory? Japanese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3(1), 1-21.
  3. Sakamoto, A., & Yamazaki, K. (2012). Blood-Typical Personality Stereotypes and Self-Fulfilling Prophecy: A Natural Experiment with Time-Series Data of 1978-1988.
  4. http://citeseerx.ist.psu.edu/viewdoc/download?doi=10.1.1.533.7518&rep=rep1&type=pdf에서 2017. 11. 20 자료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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