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멋진 단어들이 브랜딩을 망친다

조회수 2017. 11. 12. 18: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남들이 아는 단어 써라

보통 브랜딩을 시작하면 슬로건을 비롯해 브랜드를 설명하는 부연설명이나 의미에 관한 텍스트를 정리합니다. 그리고 ‘이 로고는 어떤 의미가 있고 우리 슬로건의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 등을 설명하려고 하죠. 디자이너들도 로고 시스템을 정리하면서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그것을 풀어서 재설명하곤 합니다.


흔히 이 과정에서 멋진 단어들… 그러니까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같이의 가치’ ‘꿈의 무대가 되다’ ‘당신의 미래가 바뀌는 곳’ 뭐 이런 따위의 표현과 함께 ‘가치, 공유, 함께, 꿈, 행복, 미래, 변화, 혁신’ 등의 단어가 쓰입니다. 이런 멋진 단어와 추상적인 말이 브랜딩을 얼마나 망쳐놓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 전에 먼저, 오늘의 글은 매우 진지하고 복잡할 수 있습니다. 이제껏 대부분 웃자고 쓴 개그코믹유머 어그로성 글을 썼지만 이번에는 좀 심도 있게 파고들어 가보려고 하니, 진지함이나 어려운 단어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근엄/진지

이 글에는 언어에 대한 이해, 생물학적인 내용과 심리학적인 내용이 함께 들어가 있으니 뭔가 모르는 용어 포비아가 있으시거나 어릴 적 생물시간에 간전중후말을 듣고 경기를 일으키셨던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셔서 무방합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이 글의 결론은 결국 ‘남들이 아는 단어 써라‘입니다. 다만 그 이유와 우리의 브랜딩이 망가지는 이유를 상세히 기술하였을 뿐이니, 결론이 궁금하셨던 분들은 여기까지 읽으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당.



선형성과 비선형성


브랜딩이란 것은 경영전략적 측면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이지만 그 근본은 인간의 행동과 인식체계에 대한 이론에 기반 둡니다. 단순히 통계적인 수치로 데이터화 시키기 어렵다는 점이 특징이지요. 그래서 브랜딩과 어휘에 대한 얘기를 엮기 위해선 ‘인간은 어떤 식으로 언어를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해보아야 합니다.


언어는 선형적으로 움직인다


언어에는 선형성이란 특징이 있습니다. 모든 언어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징이죠. 이 반대가 되는 개념은 비선형성입니다. 이 선형과 비선형에 대한 얘기를 해보죠. 선형성의 기본 조건은 하나의 변수와 비례관계인 하나의 해가 1:1 대응 관계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일차함수의 직선 그래프 같이 x=y로 단어와 의미가 하나의 대응 관계를 이루죠.


자동차란 단어는 말 그대로 자동차를 의미하고 명사이며 명사 위치에 들어가야 합니다. ‘뛰다’라는 서술어는 뛰는 동작을 나타내며 서술어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처럼 언어는 의미나 문법적으로 1:1 함수 관계를 지니며 인간은 그 단어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큰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선형성의 가장 큰 특징은 ‘의미의 일방향적 나열’이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자동차를 타고 마트에 간다. 

이때 ‘나/자동차/타다/마트/간다’라는 5가지의 의미가 나열되면서 하나하나의 문법적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합니다.

  1. 인간인 나를 먼저 그리고
  2. 자동차를 그린 뒤 나를 집어넣고
  3. 그것을 타는 장면을 그린 뒤
  4. 목적지인 마트를 그리고
  5. 그 후 가고 있는 운동 이미지를 그려냅니다.

실제로 이 모든 장면은 별개의 것들이 아닙니다. 사실 자동차 안에서 운전하고 있는 하나의 장면을 표현하는 것이죠. 그러나 언어는 이 하나의 장면을 하나의 것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 자동차를 탔고, 마트에 간다.
  • 마트에 가기 위해 자동차를 탔다.

라는 식으로 의미의 나열과 분해를 통해 인과관계로 인식하려고 합니다. 그 기저에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프레임이 깔려 있죠. 사피어 워프는 ‘언어체계가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라고 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 또한 어순 차이 때문에 사고체계뿐 아니라 시각정보를 취하는 순서도 다릅니다.


한국인은 ‘어항 속의 물고기’를 보면서 방 → 어항 → 물고기 순서로 수렴적 시각을 지닙니다. 외국인들은 물고기 → 어항 → 방의 순서로 발산형 시각정보를 취합니다. 환경과 주변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한국 문화, 핵심과 개별적인 대상을 중요시하는 외국 문화의 차이점은 이렇듯 언어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죠.

그럼 고양이는 어떻게 볼까…

이런 언어체계 때문에 인간은 대부분의 ‘현상’을 분해하여 나열하는 형식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들을 때도 그렇게 듣죠. 듣고 말하는 부분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시각이나 촉각 등 다른 감각정보는 어떨까요? 


현상은 비선형적으로 인식한다


촉각을 나누어서 인식하진 않습니다. 뜨거운 주전자에 손가락에 데었는데 두뇌가 “아! 손가락을 뜨거운 주전자에 대었더니 허벌 뜨거워서 손이 시뻘겋게 타버릴 듯하니 손가락을 떼야겠다.”라는 사고과정을 거치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위 문장의 모든 의미가 한꺼번에 합쳐지면서 바로 행동으로 발현이 되죠.


이렇게 나열의 형태가 아닌 ‘겹쳐진 의미’의 형태를 지닌 것이 바로 비선형성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편할 것 같습니다. 선형성은 기름종이에 하나하나의 그림을 그려 그것을 나열하는 방식이고, 비선형성은 그 기름종이를 모두 겹쳐놓은 형태와 비슷하죠.

위의 이미지를 볼게요. 선형적 언어는 각 요소가 나열되고 순서대로 인식됩니다. 하지만 표지판이나 이모티콘, 픽토그램, 이미지와 같은 시각정보는 보는 순간 하나의 의미로 인식되죠. 바로 이 부분에서 첫 번째 모순이 발생합니다. 보통 브랜딩의 비주얼적 요소, 즉 로고나 패턴이나 아이콘 등은 비선형적 요소입니다. 로고를 보는 순간 정보를 획득하고 해석을 합니다. 순간적으로 획득한 정보가 나름의 의미로 변환되는 것이죠. 


앞에선 그것을 설명하는 텍스트나 슬로건, 문구 등의 언어는 선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둘 간의 정보해석 방식의 차이가 인식의 괴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다면 정보는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간극이 발생하는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정보를 인식하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처리하는 두뇌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해봐야겠죠. 우리의 몸은 꽤 똑똑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는 것’에 대한 구별이 아주 확실하죠. 청각정보를 예로 들어볼게요.


일반적으로 주변의 소음에는 청신경이 크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정보를 해석하지도 않죠. 그저 외이와 중이의 작용에 의해 소리를 듣는 ‘활동’만을 계속할 뿐입니다. 하지만 뭔가 귀를 잡아끄는 이야기나 내 앞에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청지각력’이 작동합니다.


보통 고막을 진동시킨 음파는 중이를 거치며 음파를 압력파로 바뀝니다. 이 압력은 와우라고 불리는 기관 내의 액체를 움직이게 하고, 이 압력의 정도 차이를 청신경은 전기신호로 바꿔서 두뇌에 전달합니다. 이때 입력된 청신경의 전기신호를 해독하고 위에서 말했던 선형적 나열형태로 이해하는 기관이 베르니케 영역입니다.

좌측 전두엽의 중간부에 위치한 청각정보 해독기관 베르니케는 언어를 이해하고 의미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적절한 응답을 하기 위해 다시 언어정보를 재조합하여 브로카 영역으로 이를 전달하죠. 브로카 영역은 운동피질 영역과 붙어있으면서 조음기관, 즉 성대, 혀, 입술 등의 움직임을 지배합니다. 베르니케에서 해석된 정보를 운동정보로 바꾸어 소리로 만드는 곳입니다.


시각정보도 비슷하게 움직입니다. 우선 시지각영역에서 인식된 정보를 ‘자극’과 ‘억제’의 요소로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애플 로고를 봤다면 ‘사과와 베어진 부분’은 자극요소이고 ‘베어진 방향’ ‘꼭지’ 등은 억제요소가 되는 것이죠. 이렇듯 자극요소는 뉴런을 자극하고 시냅스를 통해 해당 정보를 전달합니다. 억제요소는 전달과정에서 손실되거나 정보전달력을 저해시킵니다.


시냅스의 전달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볼게요. 기억의 저장형태는 여러 가설이 많지만, 가장 유력한 학설은 시냅스 그 자체라는 이론입니다. 모든 정보는 이온위상차에 의한 전압 때문에 일방향으로 흐르고 전기신호와 단백물질의 형태로 전달됩니다. 이때 이런 전기신호들은 시냅스들을 변형시킵니다. 이를 시냅스 가소성이라고 부릅니다.


시냅스는 신호를 발생시키는 시냅스 전뉴런과 신호를 받아들이는 시냅스 후뉴런, 그리고 두 뉴런 사이의 좁은 간격, 약 20~50nm(나노미터) 정도 벌어진 시냅스 틈으로 구성됩니다. 시냅스 전 뉴런에서 전기가 발생하면 시냅스 말단에서 시냅스 틈으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이는 시냅스 후 뉴런의 수용체를 자극해 전기를 발생시키죠. 이때 신경전달물질은 도파민이나 글루타민산염과 같은 자극물질의 지배를 받는데 이 때문에 자극이 강한 정보만이 단기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이 정보는 추후 반복과 충격에 의해 그 수명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단 한 번일지라도 시냅스에 충분한 전기자극이 흐르면 기억이 지속되기도 합니다. 이 경우엔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의 일종인 NMDA 수용체가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MDA 수용체에 NMDA가 결합한 뒤 열린 통로로 칼슘이온이 들어와 다양한 효소를 활성화시켜 시냅스를 강화하는 형식이죠. 시냅스를 강화한다는 건 정보의 자극 정도가 기존의 시냅스와 연계발동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인가?‘가 중요하단 얘기죠. 그래서 위에서 얘기했던 애플 로고는 자극정보만 남고 억제정보는 손실된 후 우리가 알던 ‘사과’ 이미지와 ‘베어진’ 이미지가 합쳐지며 사람마다 기묘한 형태의 불완전한 시각정보로 잔존하게 됩니다. 아래의 이미지를 한 번 보실까요. 사람들이 보지 않고 그린 애플의 이미지입니다.

‘사과’ ‘은색’ ‘베어졌다’라는 형태적 이미지만을 기억하고 그 방향이나 베어진 정도, 크기, 사과 꼭지 등의 이미지는 억제한 결과입니다. 무엇이 먼저 기억에 남는가에는 수많은 가설이 존재하지만 보통 색상보단 명도 우선, 부피보단 크기 우선, 넓이보단 높이 우선, 파랑보단 빨강 우선 등으로 구분됩니다. 이 기억과 정보인식체계의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지 맘대로 기억한다.

시각정보뿐 아닙니다. 요즘 브랜딩의 화두가 되는 경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때도 마찬가지로 시각/촉각/청각/후각 정보의 다각적인 정보들을 인식하는데 하나같이 지 맘대로 기억합니다.


사람마다 도파민 수용체의 정도가 다른 것도 있고, 배경지식이나 정보의 해석능력이 상이한 탓도 있죠. 또한 단순히 두뇌의 신경전달과정뿐 아니라 그 이외에 부교감적인 부분, 소위 마음/가슴/애정 등이라고 불리는 비측정요소도 이것에 관여합니다. 그러니 제공자의 브랜딩 경험 제공 및 비주얼 제작에선 반드시 이런 ‘자극인자’와 ‘억제인자’를 유념해두어야 합니다.


두 번 강조합니다. 제공자의 브랜딩 경험 제공 및 비주얼 제작에선 반드시 이런 ‘자극인자’와 ‘억제인자’를 유념해두어야 합니다. 어떤 것을 기억에 남기고, 어떤 것이 손실될지 예측해야 하죠.



정보를 이해하다


위에서 강조한 자극과 억제. 어떤 것을 기억하고 어떤 것을 지울지, 또는 어떤 것을 오해하고 어떤 것을 올바르게 전달할지 결정하는 건 칼 융 님의 도움을 받아보도록 합시다. 융 씨는 1913년 리비도의 개념을 확장시켜 분석심리학의 기본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원형’이라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 원형의 형성과 콤플렉스의 발현이 위의 두 부분, ‘선형적인 언어’와 ‘비선형적 이미지’를 연결하는 고리이기 때문이죠. 원형이란 다름 아니라 출생 이후 포대기에 싸여서 바라보는 세상과 사물에 대해 만들어내는 일종의 선입견을 의미합니다.

  • 엄마 = 따뜻한 존재
  • 아빠 = 수염 따가워
  • 강아지 = 보드라워
  • 빨강 = 먹으면 아파
  • 초록 = 맛없고 써

등등. 다양한 대상에 대해 일종의 1:1 대응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얼핏 보면 선형적 언어와 흡사하죠. 하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언어로는 단순히 ‘엄마 = 나를 낳아주신 분’으로 인식하는 반면 내가 형성하는 원형은 내 경험을 대상에 압축시키는 개념입니다. 즉 개인적으론 엄마란 “내가 아플 때 찬 물수건으로 내 열을 내려주던” 존재인 것이죠.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등장했던 구슬이 기억나시나요? 구슬에는 하나의 기억이 존재합니다. 그 기억은 비선형적인 이미지로 저장되어 있죠. 영화에서 등장했던 그 각각의 기억이 하나의 원형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좀 편할 듯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언어로 ‘엄마’를 말할 때는 단어의 의미 자체로써의 관념적 ‘엄마’와 내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든 원형으로써의 ‘엄마’가 오버랩되면서 구현되기 마련입니다. ‘엄마’란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는 것은 엄마란 단어 자체가 슬픈 게 아니라 그 단어에 녹아든 개인의 경험이 떠오르기 때문이니까요.


보통 이런 원형은 일관적인 감정의 형태를 띠거나 혼재한다고 해도 주된 감정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어떤 대상에 대해서는 그 감정의 힘겨루기가 매우 강하거나 정체를 규정짓기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죠. ‘애증’과 같은 감정이 그러하고 ‘용서와 미움’ 이란 감정도 그렇습니다. 이런 복잡성이 드러나는 것들이 바로 콤플렉스가 되죠.


앞에서 설명했던 두뇌의 정보처리 과정을 거쳐 저장된 기억은 이런 기존정보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때문에 핏방울을 연상시키는 로고를 보고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단순히 언어적 정보뿐 아닌 그것에 섞인 개인적 경험이 발현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원형의 형성과 개인적 경험의 차이는 대상에 대한 ‘이해도’와 ‘공감의 정도’를 규정합니다. 브랜딩 전략을 짤 때는 이런 개개인의 경험을 모두 고려하기 힘드니 ‘보편적 원형’을 찾아내서 그것에 포인팅하는 것이 보통이죠. ‘고양이: 도도함’ ‘개: 친근함’ 등의 원형적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형적 이미지 내에서 사람들은 지 맘대로 기억하게 됩니다.

정리하며


엄청나게 긴 설명이었습니다. 위의 내용들을 이제 하나로 합쳐보겠습니다. 정리하자면 3가지의 문장이 되겠군요.

  1. 언어는 선형적이지만 심볼·패턴·광고물 등 시각정보는 비선형적이다.
  2. 비선형적 정보는 손실이나 강화를 통해 제멋대로 해석된다.
  3. 그 해석은 보편적 원형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얘기해 볼 수 있겠습니다. 비선형적 정보인 로고 등 비주얼브랜딩 요소들은 인식되는 즉시 고객에게 어떠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이미지는 개인적 경험 또는 사회적 보편성의 범위 내에서 지 맘대로 변형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곤 순식간에 고착시킵니다. 우리가 설명할 시간이나 의미에 부연을 덧붙일 틈도 없이 이미 소비자들의 마음엔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초기 정보를 바꾸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니 로고를 설명할 슬로건이나 홍보물을 설명할 부연 텍스트를 만들 때는 소비자의 마음에 어떤 이미지가 형성되었는지 판단하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의 파동에 맞추어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죠.


형성된 이미지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수프를 파는 곳’인데 멘트는 막 “당신의 건강을 생각합니다.”라고 해봅시다. 나쁜 말은 아니죠. 니 건강 생각한다는 게 왜 나쁘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로고나 색감, 둥근 폰트 등에서 부드러움을 느꼈습니다. ‘당신의 건강’이란 어휘는 정보 중심적이고 의학적인 뉘앙스를 먼저 풍기죠. 비주얼적 요소와 다른 파동을 지닌 어휘라는 겁니다.


멋진 단어라고 언급한 것들은 대부분 추상적이거나 그 형태를 이미지화시키기가 어려운 것들입니다.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같이의 가치’로 예를 들어볼게요. 물론 언어유희를 써서 연결한 것은 좋습니다. 분명 로고나 엠블럼도 뭔 사람들이 손잡고 있는 그런 연결의 의미이겠죠. 하지만 이런 추상적인 이미지와 단어에 질문을 던져볼게요.

  • 무엇을 자극하고 무엇을 억제할까?
  •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존 정보가 있는가?
  • 그것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떠올리게 할 수 있나?
  • 사회적인 원형의 이미지로 구현할 수 있는가?
  • 엠블럼은 같이, 가치라는 단어를 비선형적 의미로 구현하고 있는가?


사실 어떤 것도 대답할 수 없는, 그냥 만들라니까 만든 짜맞추기식 비주얼브랜드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래서 브랜드를 설명하는 어휘는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 자극과 억제 요소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해요.
  • 사람들의 배경지식과 연결이 가능해야 합니다.
  • 경험을 위주로 한 설명이 되어야 합니다.
  • 그 경험은 보편적이고 긍정적이어야 해요.
  • 로고는 단어가 아닌 완결된 스토리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낙서가 물티슈만으로도 지워지는 벽지를 개발했다고 해볼게요.

  1. 사람들은 여러 시각정보 중 ‘낙서’를 기억해야 해요. 나머지 가구나 아이의 얼굴 등은 억제되어야 하죠.
  2. 사람들의 배경지식에 낙서는 자유롭고 즐거운 것이지만, 벽에 하는 것은 난감한 일이어야 합니다.
  3. 그런 부정적 경험들을 되살려 주어야 해요.
  4. 부정적 경험을 긍정적인 솔루션으로 바꿔줍니다.
  5. 로고는 “아이와 함께 맘껏 낙서하세요.”라는 완결된 스토리를 담아야 합니다.

CF는 아이가 벽지에 낙서를 해서 난감해진 엄마와 벽지를 바꾸고 난 후 함께 낙서를 하는 엄마의 모습을 대비해서 보여주겠죠. 더불어 설명 문구에서 주어와 서술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크게 달라지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주어를 바꾼 경우

  • “당신은 아이의 낙서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 “아이는 마음껏 낙서할 수 있습니다.”


서술어를 바꾼 경우

  • “당신은 아이의 낙서를 쉽게 지울 수 있습니다.”
  • “아이가 더 이상 눈치보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포인트를 잡는가는 물론 제작자의 몫입니다. 로고의 이미지가 자유를 의미한다면 위가 맞을 것이고, 손쉬움을 의미한다면 아래가 맞겠죠.


결국 시각적/경험적 브랜딩의 핵심은 “보이는 것과 제공하는 정보를 일치시키자”는 것입니다. 모든 단어는 개개인의 경험과 이해수준 내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것을 이미지화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되는 것이죠.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설명할 땐 내 서비스가 아주 잘났다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예로 들어줘야 합니다.

  • 복잡한 개념의 금융 서비스를 설명할 땐 수치를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은행에서 어려웠던 경험을 되살려 줘야 합니다. 수치는 브랜딩이 충분히 이루어진 뒤 상세정보를 원할 때 제공해도 늦지 않죠.
  • 생소한 첨가물의 화장품을 설명할 땐 성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거울 앞에서 자신을 보며 느끼는 감정들을 되살려줘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분은 원할 때 알려주는 걸로.
  • 교육 서비스를 설명할 땐 아이들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를, 소비자가 겪었던 긍정적 경험이나 부정적 경험을 건드리고 그것을 개선/증폭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단어를 써줘야 합니다.
  • 플랫폼 서비스를 설명할 땐 그냥 ‘편리하고 쉽다’는 맹목적인 포인트보다 이곳을 이용하는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를, 이곳을 이용한다는 것은 평소에 꿈꿔온 힙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아주 쉽고 구체적인 언어들로 말이죠.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설명할 수 없거나 이해하기 힘들 때 두루뭉술한 언어를 선택합니다. 선형적 서술을 뭉개는 어휘죠. 관념의 논리성을 깨버리고 인과관계를 흐리게 만들어 버리죠. 자꾸 멋진 단어로만 우리를 설명하는 이유가 어쩌면 나조차도 내 비즈니스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실제로는 어떤 경험을 제공하는지 나도 확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지 냉엄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의 비즈니스는 구름 위 세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힌 이곳, 현실에서 성장해 나갑니다. 언어와 이미지가 지닌 안개를 걷어버리고 누구나 이해 가능한 명확한 정보로 접근하면 더욱 좋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문: Aftermoment Creative Lab의 브런치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