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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에 대한 인간의 메스꺼운 믿음

조회수 2017. 10. 5. 17: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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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기반을 둔 인간이 모든 동물을 통제한다는 믿음 하에 벌어지는 일들

아프리카 등의 사냥터에서 사냥한 동물들을 박제한 것. 트로피는 북미의 사냥꾼들에게 이런 의미로 인식된다. 그들은 사자, 기린 등의 동물들을 빅5라 부르며 가장 중요한 트로피로 여긴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매년 세계 최대의 사냥-사파리 박람회가 열린다. 이곳에선 북미의 최상위 소득자, 가령 치과의사나 변호사, 석유회사 중역 등의 사람들이 원활한 사냥 및 트로피 수집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업체들이 각자의 부스를 차리고 홍보한다.


그들은 사자, 기린 등의 동물 사냥을 돕는데 값을 매기고 상품화하여 부유층 사냥꾼들에게 판매한다. 희귀한 동물일수록 값은 올라가고 코뿔소가 빅5 중 가장 비싼 가격을 받는다.


사냥꾼과 이러한 사냥을 주선하는 사람들은 합법적인 사냥이 무분별한 밀렵과는 다르게 오히려 생물종의 개체 수를 늘린다고 주장한다.


다름이 아니라 그들은 사냥감이 될 사자 등의 야생동물들을 직접 사육하기도 한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돈이 되는 동물은 멸종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냥꾼들과 대비되는 인물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코뿔소를 기르는 존 흄이다. 그는 2년마다 코뿔소의 뿔을 자름으로써 그들이 밀렵 당하는 것을 방지한다. 이를 관리하는데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지만, 실제로 코뿔소의 개체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허나 그의 논리 역시 전 세계의 코뿔소를 같은 방식으로 관리하거나, 결국 코뿔소의 뿔을 팔아야 유지할 수 있는 자본 논리 속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사울 슈워츠와 크리스티나 클루지 아우의 다큐멘터리 <트로피>는 거대한 산업이 되어버린 사냥이 자본 논리와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파헤친다.

영화는 한 사냥꾼이 열 살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아들을 데려가 사슴을 사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린아이의 손에 라이플을 쥐여주고 사슴을 쏜 뒤, 죽은 사슴의 머리통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게 하는 장면은 사뭇 충격적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존 흄의 직원들이 코뿔소의 뿔을 자르는 수술을 하는 장면이다. 그들은 고통 없이 수술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전기톱으로 뿔을 베어 버리는 모습은 굉장히 섬뜩하다.


카메라는 남아공의 악어농장으로 향한다. 그곳을 관리하는 주인은 악어들이 돈이 되기에 멸종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트로피>가 그려내는 야생동물의 사육과 사냥 등이 작동원리는 꽤 명확하다. 성경에 기반을 둔 인간이 모든 동물을 통제한다는 믿음 하에, (백인) 인간의 쾌락과 자본 논리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야생동물의 사육과 사냥이 진행된다.


그들은 사냥을 위해 동물들이 사육되고 결과적으로 개체 수가 늘거나 멸종되지 않게 된다는 궤변을 늘어놓지만, 그들의 궤변 속에는 생태계 전반의 유지라던가 당장 생계가 문제가 되는 아프리카 현지의 주민들에 대한 고려는 빠져있다. 그들의 입장은 완벽하게 성경적이고 백인 중심적이며 자본 중심적이다.

<트로피>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당연하게도 어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저 상황을 직시하고 기록하여 관객에게 보여준다. 107분의 길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수많은 문제의식을 쏟아낸다.


사냥꾼과 아들의 모습에서부터 끝없이 이어지는 사냥 장면들에서 드러나는 생명을 스포츠로 다룬다는 것에 대한 윤리의 문제, 결과론적으로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보전된다는 이유만으로 사냥을 위한 혹은 가죽 등을 위한 사육이 지속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


이러한 사육과 밀렵 금지가 현지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 아프리카 현지에서 멀찍이 떨어져 채식만으로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의 사람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현지의 관점에서 과연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사실 <트로피>에서 이러한 문제의식들 말끔히 정리하여 제시하진 못한다. 어떠한 입장을 선으로, 다른 입장을 악으로 지정한 채 영화를 전개하지도 않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트로피>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악으로 여길 수 없을 것이다(물론 그중에도 끔찍한 인간들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속에 메스꺼웠다. 단순히 영화 내내 전시되는 사냥 장면들 때문만이 아니다.

 

어느 입장에서 있는 사람이든, 인간이 야생을 통제할 수 있다고,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드러나기에, 그러한 생각들 때문에 메스껍다.


원문: 동구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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