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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의 역사를 파보았다

조회수 2017. 9. 20. 19: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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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의 벽돌에 찍힌 상형문자.. 전설의 시작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자료 찾고 허덕이느라 글이 늦긴 했지만, 아주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브랜딩 나부랭이를 다루다가 보니 이런 것이 궁금해졌죠. 그럼 이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도대체 어떤 자식이 브랜딩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일까? 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찾아보다 보니… 어떤 사람이 만들긴 했더군요. 근데 그 사람이 이 행위를 만든 건 아니잖아요. 애시당초 우리가 쭈욱 하고 있던 행위에 이름을 붙인 것이지. 그래서 그 행위는 어떻게 변했는지가 또 궁금했습니다. 전 분석충이기 때문에 내면의 차크라를 끌어올려 주제를 파헤치는 것을 좋아하죠. 그래서 역사를 거슬러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전의 단순 시대까지 거슬러가다 보니 어느덧 이집트 고대문명까지 흘러가게 되더군요.


지금부턴 그 시간을 다시 되돌려 현재로 돌아와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브랜딩이란 것은 코딱지를 파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만연해있는 행위를 통칭하는 말이기에, 인간은 코를 언제부터 파기 시작했나? 라는 질문의 기원을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니 가설과 추측이 가득하죠. 이 점을 감안하신다면 킬링타임 용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전 브랜드나 브랜딩 같은 단어에 점점 큰 의미가 실리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브랜딩 하는거나 자기 책상을 치우는 거나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이나 무엇이 중하다 아니다의 경중을 따지거나, 마케팅이 짱이다 브랜딩이 짱이다 우리가 본질이다 넌 사짜다 허접이다 꺼져라 머더퍼커 이디엇츠 뭐 이러면서 논쟁하는 것도 좀 웃깁니다.


그러니 쉽게 쉽게 풀어보자면 이러합니다.



고대이집트

룩소르 신전의 벽돌엔 수많은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지

물론 저 상형문자는 신에 대한 찬양 또는 연대기가 적혀있는 메모장 같은 느낌이지만요. 어쨌든 고대 이집트에서는 돌 나르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아침 먹고 돌, 점심 먹고 돌, 저녁 먹고 돌, 몸 푸는 돌, 빡센 돌, 둥근 돌…. 게다가 고운 모래로 만들어진 사암이었기 때문에 뭔갈 새기고 표시하기에 나쁘지 않은 질감을 지니고 있었죠. 그러니 누웠다가 일어나서 그녀가 보고 싶으면 돌에다가 그녀의 이름도 적고, 내일 점심 메뉴도 적고, 금요일날 미팅 약속도 적어놓고… 파피루스가 발명되기 전까진 이들은 돌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벽돌을 만드는 전문가들이 생기기 시작했겠죠. 홍해 건너 윗동네엔 신비한 레시피로 벽돌을 만드는 놀라운 달인이 있다는데! (생활의달인 ver.)

“저, 저기요! 혹시 여기 그 놀라운 벽돌을 만드는 분 아시나요?!”
“어어 쩌기 언덕 너머 야자수 옆에 3번째 집에 가면(졸라 상세히 알고 있음) 맨날 벽돌만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해서 찾아가 봤더니 손끝으로 느껴지는 그 놀라운 태초의 모래와 지구 역사의 신비를 간직한 45억 년의 대자연의 음성이 들리는 듯한 신비한 벽돌이 있는 거예요. 이런 사람을 가만히 둘 리 없겠죠. 누가요? 왕이요. 그래서 왕이 불렀어요.

“니가 벽돌을 잘 만든대며?”
“뉍”
“그럼 내 무덤 니가 만들어.”
“잇힝. 견적 드릴깝쇼?”
“40,000개, 단가는 은 한 톨씩 줄게. (당시는 귀금속이 화폐의 단위였다)”
“40,000개는 혼자 다 못 만드는데요?”
“그럼 니가 10,000개 만들고 나머진 다른 업체 쓰지 뭐.”

이렇게 해서 4개 업체가 피라미드나 성벽, 건축물이나 신전을 만드는데 달라붙게 됩니다. 그런데 그중에 반드시 불량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근데 석조건물은 하나가 문제 생기면 전체 하중에 큰 영향을 주게 돼요. 그래서 불량에 대한 심사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단 말이죠. 왕은 이렇게 말했어요.

“나중에 문제 생기면 그놈을 혼낼 거니까, 돌에다 표시해놔.”

이때부터 표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초는 왕이 제품 개발한 사람들을 구분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각자의 표식을 심으라고 했던 목적이 주였어요. 이것은 나중에 토기와 도기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였죠. 이것들은 내수시장에 판매하는 용도보단 주로 무역과 조공품에 쓰였습니다. 무역의 문제는 곧 외교의 문제와도 같았죠. 그러니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려고 도기 바닥에 별이나 손바닥, 원, 특이한 형상들을 새기게 하였답니다.


상업적 측면에서는 브랜드가 처음으로 활용된 시기를 BC7세기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상인들이 항아리에 자신의 브랜드를 부착시켜 사용한 것이 최초로 기록되고 있죠. 이후 중세의 상인들이 저급한 모방제품과 구별하기 위해 제품에 브랜드를 부착하여 자신과 고객들을 보호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답니다.


이처럼 초기의 브랜딩은 감시와 책임을 위한 식별의 수단으로써 작용하였어요.



고대 유럽


유럽으로 넘어가 봅시다. 때는 4세기~6세기경이었습니다. 이때의 유럽은 로마가 통치하고 있었고 각지에 동, 서, 북게르만 족들이 흩어져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때가 그러하듯 인구는 늘어나고 경작할 곳은 부족해지니(특히 스칸디나비아 쪽이나 북유럽 쪽은 여행하긴 좋지만 경작해먹긴 좋지 않았죠) 대이동을 시작합니다.


북쪽에 있던 게르만족이 남하하면서 로마로 대거 침입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때 로마의 방어선인 라인강 유역은 허술하기가 내 방문과 다름이 없었어요. 게르만족은 엄마가 벌컥벌컥 내 방문을 열면서 이노무새끼 쯧쯧쯧 맘스터치를 선사하는 느낌으로 자주 로마의 문을 열어젖혔죠. 로마와 게르만의 전쟁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본격 대이동이 시작되면서 길고 지루한 전쟁의 서막이 열리게 됩니다.


이때 수많은 전쟁포로와 고아와 타민족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노예로 전락한 전쟁포로들에겐 인두로 노예의 표식을 몸에 남기곤 했어요. 고대 노르웨이어로 brand는 현재 영어의 Burn(불타다)의 뜻이죠.

시벌놈아 팔에다 새기라고!



중세시대


또한 표식의 의미 이외에 당시 로마교에서부터 활용하고 있던 십자가나, 추후 중세시대에 이르러 다양화된 수많은 기호/표식들은 그 신성성과 신비함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심볼을 신봉하고 기호·상징에 의미를 담기 시작한 것이죠. 각 교회와 정파들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양한 십자가를 활용하기도 했고, 성경이나 정파별 사제복을 다르게 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됩니다.

더불어, 기사단이나 가문의 문양도 독특한 스타일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본인의 가문만이 소유할 수 있는 고유한 것들이었어요. 이후 11~12세기 유럽에 대학들이 생겨나면서 각 대학의 문장으로 발전되기 시작하는데 가문의 규모와 유명세, 공적들에 따라 가문의 문장의 가치도 달라졌었죠. 이것이 대학사업이나 가문의 사업에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구요.


그래서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브랜드는 폐쇄적이고 감추어야 하는 것, 또는 신성한 것, 우리만의 것, 아무나 건드릴 수 없는 것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어요.



르네상스 시대


중세유럽은 십자군 전쟁의 패배와 더불어 흑사병이 터지면서 인구의 1/3이 사라져버리는 대격변을 맞게 됩니다. 이때 생존한 노동자, 농민들은 노동인구 수의 감소로 흑사병 이후 임금이 두 배로 상승되었죠. 이러한 노동력 감소는 지배계층의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켰습니다.


그런데 인구수의 급격한 감소는 곡물의 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토지수입에 의존하던 지주들은 높은 임금, 수입 하락의 이중고를 겪게 되었죠. 상업과 교역이 마비되었으며, 숙련공의 격감은 생필품 생산량 감소를 불러왔고, 생필품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갑이나 을이나 둘 다 살기 팍팍해지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갑의 횡포는 상식과 적당선이란 걸 모르죠. 이 시국에도 갑은 농민들을 갈궈대기 시작했고, 안 그래도 팍팍해서 살기 힘든 농민들은 결국 폭풍 반란을 시전합니다. 이는 추후에 계급제도의 몰락에 큰 영향을 주죠. 우리나라의 임진왜란 이후의 상황과 비슷하겠네요.


한편, 흑사병은 교육과 학문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대학의 피해가 컸으며 교수와 학생 수가 감소하여 많은 대학이 폐교했답니다. 이때 시에나 대학은 수년간 휴교했고, 옥스퍼드 대학과 아비뇽 대학은 전면 마비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국제어와 교회의 언어로 사용되던 라틴어 사용자들의 수도 감소시켜, 각국은 새롭게 자국의 언어로 성경과 문학 작품들을 출간하기에 이르는데, 이러한 자국 언어의 발달은 국민문학과 국민국가 형성과 발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충 상황이 얼마나 혼돈의 카오스인지 짐작이 되시죠? 상황을 보니 나라에 물건은 없고 사람들은 아우성이고, 뭔가 큰 것들이 잘게 쪼개지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어요. 상황이 안정되고 나서 다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상업과 제조업이 활성화가 되기 시작했죠. 출판물의 가짓수나 언어의 종류도 명확해지기 시작하면서 내수시장이 확대되었고 교류와 무역에 체계가 생기기 시작했죠. 이러한 16세기 이후의 여러 사건들은 자본주의의 토대가 되는 제도들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주얼적으론 이때 당시에 거래를 하던 각종 상선이나 무역선들이 서로를 식별하기 위해(특히 해적으로부터) 깃발이나 배의 문양을 새기는 형식이 주를 이루었고, 무역회사나 제조회사들이 동종업계의 제품이나 서비스로부터 본인을 드러내기 위한… 음, 어찌 보면 현대의 브랜드와 비슷한 개념의 브랜드가 자리 잡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직까진 나를 알리기 위한 홍보수단 내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강했달까요.

동인도회사의 로고

또한 통합로고를 사용했던 것은 동인도회사같이 14개의 크고 작은 회사들의 연합이 형성되는 그룹 형태의 대기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하나로 결속시킬 수단이 필요한 탓도 있었답니다. 사람을 하나로 묶는 데 있어서 ‘문장’와 ‘제복’와 ‘경례’ 는 아주 효율적인 수단이었으니까요.


르네상스 이후 근대의 브랜딩은 나를 알리고 소속감을 주고, 식별과 개성이 시작되는 태동기였어요.



현대의 브랜딩


현대 시대의 브랜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전쟁입니다. 1차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는 피폐와 발전이라는 모순된 길을 함께 걷게 되요. 패전한 국가는 끊임없이 전락하지만, 승전한 국가는 막대한 무기판매수익을 내기도 하고, 또한 냉전 이후 결국 자본주의 시장이 세계경제논리로 채택되면서 시장은 본격 경쟁트랙에 올라타게 되었죠.


놀라운 건 현재의 ‘브랜드’ 이라는 단어를 규정한 것은 고작 27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 현대의 브랜드개념을 도입했던 것은 최초 1990년 Murphy에 의해 “이름(name)이나 표시(presentation)에 의해 구별되는 특정 공급자의 제품이나 서비스”라는 정의를 통해서였죠.
  • 1991년 Asker는 “판매자 혹은 일단의 판매자들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식별시키고, 경쟁자들의 것과 차별화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독특한 이름이나 상징물(로고, 등록 상표, 포장 디자인 등)” 라고 규정했습니다.
  • 그리고 1992년에 이르러 ean-Noel Kapferer씨가 “공급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제품을 차별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략의 한 부분”으로 규정함으로써 드디어 브랜드에 ‘전략’이라는 단어가 추가되게 되죠.

이후 브랜드와 전략이 합쳐지면서 ‘브랜딩’이라는 명사의 동사화를 통한 신조어가 탄생하게 되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페북에서 매일 보고 있는 바로 그것의 시작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제 나이보다도 역사가 안 된 영역이긴 합니다. 더불어 브랜드에 전략이 합쳐지게 되면서 이 전략이란 것은 소위 경제학적 관점에서의 심리학적 접근이 주된 것이었어요. 행동, 인지심리와 같은 소위 소비자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죠. 이것은 융 세대에 들어서 분석심리학을 통해 분화된 심리학의 갈래로 발전했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수많은 분파와 논쟁이 많은 영역입니다. 브랜딩이 기초하고 있는 기저 학문 자체가 아직 뜨겁게 움직이고 있는 신생지구의 맨틀 같은 느낌이란 것이죠. 그러니 그 위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브랜딩은 얼마나 정신이 없겠어요.


사실 모아놓은 자료를 보아하니 이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사례와 특이케이스들이 존재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던 고대이집트의 사례는 하나의 일례일 뿐이고, 문명이 발생하고 무역이 성행했던 모든 곳에서 위와 비슷한 표식절차가 있었다고 해요. 브랜딩의 시작은 어찌 보면 굉장히 폐쇄적이고 생산자의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즘엔 통치의 방식이 바뀌었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해지니 그 권력이 소비자들에게 분산되게 된 것이죠. 판단의 주체가 개개인이 되면서 어쩌면 사업자 입장에선 수백만, 수천만 명의 왕을 모시고 매 순간 서로 다른 종류의 낙인에 찍히며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을 거예요.


이러한 혼란과 불규칙성에 사회과학적 규칙성을 부여한 것이 심리학의 힘이었고, 또한 경제태동기와 호황기를 거쳐 소비지상주의가 만연하면서 제품과 서비스가 급속도로 사회깊숙히 퍼져나갔던 오일쇼크 이전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냥 만들면 다 잘 팔리는 시기였죠. 누구나 땅 파서 한 건 해보는 게 꿈이었고, 보물이나 찾아보자며 말 타고 금 캐러 떠나는 시기였달까요. 이후 자본주의의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세계 경제는 대침체기에 휩싸이게 되었고(사실은 지금도 그 연속선상에 존재하는 듯) 버블이 가득했던 소비문화가 꺼지고 공급자는 과잉이 된 상태에서 기업들은 뭔가 다른 활로를 찾아야 했을 겁니다. 이때 기저 학문과 데이터에 근거한 통제력 안에서 대중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이론은 매우 매력적이었겠죠. 초기의 브랜딩은 제품의 차별화를 ‘알리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니까요.


그 데이터와 학문의 이론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맞는 말이었죠. 하지만 문제는 너무 급속도로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 속도에 따라가야 했고 더이상 100년 전의 심리학 이론이 통하지 않는 예외의 경우들이 시장에 드러나기 시작했죠. 이에 발 빠르게 대처한 몇몇 전략가들에 의해 브랜딩은 갈래갈래 찢어져서 다양한 방법론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답니다.


2000년대 이후 전자기기 전쟁에서 이는 아주 뚜렷해졌죠.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기업의 CEO가 자신의 방법론을 강연하기 시작하고 이것이 공유되면서 ‘이 사람이 사는법’ 따위를 연구하거나 ‘이 회사의 문화’를 분석한 자료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며 소위 ‘레퍼런스’가 되기 시작합니다.

거의 그 시발점에 가까웠던…

어때요 흥미진진하죠? 네, 저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흥미진진한 얘기죠. 사실 브랜딩이란 것이 기업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포커싱이 되어있다곤 하지만, 원래 브랜딩은 식별과 구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너와 어떻게 다른가 말이에요. 내 모습을 스스로 만들고 어떤 모습을 드러낼지를 결정하는 자아형성(융의 분석심리학 모델 中) 또한 칭하는 단어가 다를 뿐 개인적인 브랜딩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찌 보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기질이 만들어지고 역할을 지니고 삶을 영위하는 모든 과정에서 우린 일반적인 집단 무의식과 개인경험의 의존한 개인 무의식과의 화합과 갈등을 계속해나가요. 이것은 브랜딩 일반론에서 외치는 ‘유사성과 차별성’ 이론과 거의 같은 맥락이죠.



마치며


브랜딩은 사실 인류 역사와 함께해 왔고 그 목적과 성격이 어떠하든 인간의 본성에 근접한 행동 중에 하나입니다. 누구나 이미 숨 쉬듯 하고 있는 것들이에요.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에도 나를 드러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숨어있죠. 너무 호들갑 떨거나 신앙처럼 여길 워딩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하고, 당연하고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되어야 정상입니다. 신박하고 창의적인 것은 2차적인 문제죠. 우리를 드러내는 것은 언제나 거대한 무의식 속 가치관이 아닌, 고작 밖으로 드러나는 말투, 패션, 행동, 인사하는 법, 삐딱한 자세, 식성, 소품, 방안 꼬라지 같은 것들이에요. 주로 사람들은 나의 진실된 마음과 중심을 보기보단 드러난 와이셔츠를 먼저 보죠.


앞으로의 브랜딩은 어떤 개념이 되어갈까요?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론, 내부의 문화를 실체화하는 것이 브랜딩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결국 브랜딩은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디테일’의 무게가 커져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원문: Aftermoment Creative Lab


표지 이미지 출처: marketisi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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