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으로 알아보는 클라이언트의 유형
곰곰이 생각해보니 클라이언트님마다 표정에 독특한 특색이 있었습니다. 문득 이것을 정리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표정뿐 아니라 행동까지 포함하죠.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데 표정과 행동만큼 솔직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거기에는 몇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디자인할 때, 또는 디자인을 진행하기 전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이걸 파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시안이 어떻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함께 일할 사람의 성향을 알아내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디자인 작업 자체보다 이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훨! 씬! 많습니다. 우주 대진상을 만날 수도, 카이저 소제를 만날 수도, 대천사 미카엘을 영접할 때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알아볼 내용 중 반은 웃자고 쓴 겁니다. 게다가 대충 그린 그림이라서 꼭 그렇다! 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사리 분별에 능하고 전두엽이 잘 발달한 성인들이시니 적당히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헤헷(괜한 애교)
1. 뭔가 완고
이런 분들에겐 살갑게 헤헤헤 손잡고 으흐흐 같은 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보통 저런 행동의 원인은 3가지 정도가 있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2. 나는 갑이고
3. 너는 을이다
1번의 경우 사실 뭔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을 겁니다. 2번의 경우 갑의 입장이지만 아부에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걸 싫어하기도 하지요. 3번의 경우엔 내가 뭘 해도 별생각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할 말만 딱 하고 나오는 편이 낫습니다.
의외의 반전은 저런 분들이 역량을 잘 갖춘 상태라면 꽤 일 처리를 챡챡 빠르고 정확하게 잘 해주신다는 것입니다(돈도 바로바로 입금해줍니다).
2. 세상은 아름다워
미팅할 때는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살갑고 행복한 분들과 일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재미있습니다만… 오히려 일 처리에 있어서는 칼같이 딱! 딱! 딱! 할 것과 안 할 것, 계약과 입금, 시안 전달과 내용 피드백 등 아주 정확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분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팅뽕에 잠시 취해 있다 보면 정작 해야 할 말이나 중요한 내용은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는 일이 잦습니다. 게다가 가끔 메일이나 커뮤니케이션에 말이 너무 많아서 핵심을 찾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디자이너 쪽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좀 송곳같이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주스에 취하지 마세요.
3. 뭔가 뚫어져라 보는 타입
의외지만 사실 그냥 보시는 겁니다. 달리 뭘 분석하거나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그냥 뭔가 할 말 없거나 아이컨택포비아가 있거나 원래 손에 계속 뭘 쥐는 걸 좋아하는 타입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땐 귀에다가 이것저것 설명해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당신이 보고 계신 그 포폴에 대해서 설명해주도록 합시다. 여기를 보시면 이런 거고, 저기를 보시면 저런 겁니다. 의미 없이 포폴을 보고 있다면 포폴을 봐야 할 이유를 주는 것이지요.
이처럼 행동에 맞추어 화제를 적절히 바꿔주면서 행동과 대화를 일치시켜주면 주도권을 가져오기가 쉽습니다. 이것은 디자이너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이지요. 반대로 클라이언트님들도 적용하실 수 있습니다.
뭔가 어색해서 종이컵 주변만 뜯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아, 그 주스 오늘 애들이 사 온 건데 덜 시원하시면 바꿔드릴까요?” 하면서 행동 포인트와 말을 맞춰주면 묘하게 주도권이 슬슬 자기 쪽으로 넘어오는 현상이 벌어진답니다.
4. 짐은 미륵이야
성격에 따라 다르게 대응하시면 됩니다. 음… 사실… 솔직하게는 통장 잔고에 따라 행동하시면 됩니다. 잔고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다면 “별로 듣고 싶어 보이지 않으시네요.” 하고 나오면 됩니다. 실제로 해봤습니다.
하지만 통장에 자신감이 없다면 신하 된 예를 갖추어 뭔가 칭찬할 거리와 맞장구거리를 잘 찾아보면 좋습니다. 배알도 없이 그냥 ‘아이고 나으리, 구두를 닦아드릴깝쇼?’ 하란 얘기가 아닙니다. 보통 저런 분들은 인정받고 싶고, 자신이 대단하단 것을 인정받기 좋아합니다. 1번 유형과는 좀 다르게 조금만 맞장구를 쳐줘도 좋아하시죠.
심리학적으론, 상대에게 저렇게 배를 내밀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자세를 취하는 것은 상대를 약자로 보는 강자의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합니다. ‘내가 누워서 발로 툭 차도 넌 죽을 거야’라는 제스처죠.
의외의 반전은 한 번 맘에 들면 시안의 퀄리티 같은 것과 상관없이 그냥 “아 뭐 잘했겠지” 하고 넘긴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가끔 말도 안 되는 주문을 하는 것도 저런 분들입니다. “이걸 못해? 나 같으면 이렇게 딱 하겠구먼.” 마인드죠. 사실… 저런 미팅은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5. 면접관
대답은 반드시 단답으로 합니다. 길게 얘기하면 안 좋아하실뿐더러 하나하나 궁금한 게 많으므로 본인이 물어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보통 이런 제스처는 원래 성격이 분석가 기질이 있거나 예전에 한 번 데인 경우입니다. 이번이 두 번째 외주오퍼인데 겁나 신중하고 싶은 거죠. 저번 실패로 아주 많이 깨졌거나 재정적 손실이 좀 있었던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분들 앞에선 아주 쿨하고 자신감 있게, 짧게 딱딱 대답해줍니다.
6. 제가 나오려던 게 아닌데요
실제로 함께 일할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 미팅할 경우, 그래서 그 내용을 전달해야 할 경우엔 말을 많이 하면 안 됩니다. 잘못 전달되거나 누락될 수도 있습니다. 할 말 하고 나머지는 메일로 받도록 합시다.
특히 “오늘 여기서 확정 지어야 할 사항이 어떤 건가요?”라고 정확히 물어봅시다. 그 이외의 것들은 실제 실무자와 유선이나 메일로 다시 커뮤니케이션하도록 합시다. 번거로워 보이지만 나중에 말 틀려져서 피곤해지는 사태를 아주 많이 목격했습니다.
7. 난 말하고 넌 들어
“잠시만요” 하고 끊으면 좀 그래 보이니까 화장실을 다녀오도록 합시다. 다녀와서 “아, 그럼 정리를 해볼까요” 하면서 먼저 말을 꺼내는 게 키포인트입니다.
8. 왜… 왜 웃는 거지?…
주로 관찰하면서 사람 파악하시는 분들이랄까요. 좋은 케이스는 ‘들어보자…’ 하는 의도지만 가끔 ‘난 뭐 너 같은 사람 잘 알아’ ‘난 네 머리 위에 있어’ 타입일 수도 있습니다.
보통 이렇게 말없이 ‘계속 말해보세요. 네, 계속하세요’ 하시는 분들에게 계속 말하다가는 말리기 십상입니다. 끊으세요. 그리고 이제 피드백을 달라고 하거나 질문을 하세요. “왜 웃어요?”라고 물어보고 싶겠지만 그건 참읍시다. 눈치 보거나 초조해 보이면 지는 겁니다.
9. 뭔가 부산해
10. 디자…이너…님…
마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적은 것입니다만 업무적 대화든 그냥 미팅이든 만남의 본질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직접 만난다는 건 전화나 메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나 오해를 풀 수 있고, 일을 더 빠르게 진행시키기도 합니다. 목소리나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속마음과 진짜 니즈를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서로의 진심을 보이는 자리인 만큼 예의와 존중은 필수입니다.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선 클라이언트의 유형만 얘기했지만 디자이너 유형도 정말 각양각색입니다. 그중엔 정말 비매너에 고집스럽고 답답한 유형도 많죠. 어느 한쪽만 피해자나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서로가 서로를 가치 있게 대하는 마음과 진심 어린 존중이 아닐까 싶습니다. 잠시나마 함께 만나서 일을 하는 인연으로써 말이죠.
원문: Aftermoment Creative Lab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