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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2017.08.16. 작성

누가 지금 룸메 판타지를 말하였는가

왜 혼자 사는 것도, 같이 사는 것도 이렇게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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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사람이 너무 좋던 때가 있었다. 왁자지껄하게 모여서 파티하고 마주보며 웃고 근황을 나누고 떠드는 게 너무 너무 좋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내가 가족 아닌 남과 함께 살아보기 전의 이야기. 남과 함께 살아보는 그 작은 경험 하나로, 지금까지의 내가 너무 어리숙했음을 깨달았다.

요즘_내_얼굴.jpg

왜 혼자 사는 것도, 같이 사는 것도 이렇게 힘들까? 왜 생활이라는 것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서 떠먹어야 하는 조율의 과정일까?’ 사는 건 왜 이렇게 피곤한지. 3분요리처럼 뚝딱 하고 나오는 게 하나도 없다.

 

0. 전쟁의 서막: 통학


나는 ‘통학러’였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통학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던 시절. 시외버스를 타고 하루 만 원씩의 교통비를 (물론 부모님이 내주셨지만) 내며 왕복 4시간을 버스 안에 갇힌 채로 다니다 보니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차에서 푹 자면 되지’ 생각하긴 했어도, 앉아서 자는 게 나를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는 경험해 보기 전엔 절대 모른다. 학교에 도착하면 병든 닭마냥 꾸벅꾸벅 졸고, 모든 약속 2시간 전에 출발해야 하는 나에게 여유는 없었다.

그때_내_얼굴.jpg

‘자고, 일어나고, 학교 가고, 집에 오고’. 그 4가지로도 내 생활은 너무 벅차버렸다. 운도 더럽게 없어서 기숙사 추첨도 번번이 떨어졌다.


앉아서 자야 했던 시간이 2년 정도 지난 후에야 드디어 기숙사에 들어가게 됐다. 그냥 사는 것도 힘들어 죽을 것 같던 터라, 탈출이라고 생각했던 기숙사가 “같이 살아야 하는” 두 번째 관문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1. 같이 살기 입문: 기숙사에서 같이 살기


《집이 아닌 공간을 집이라 불러야 하는 것》
― 잠만 자는 공간도 집인가?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원래 같이 사는 건 힘들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조금은 설레기도 하고 ‘잘 해봐야지’ 생각하기도 했고… 화장실을 같이 쓰지 않는다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화장실 같이 쓰는 게 왜 고역인지는 나중에 차차 설명하기로 하자.  


다행히도 나와 첫 룸메 사이에 방을 바꿔야 할 정도의 문제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기숙사 룸메”라는 것은 토플 시험 준비할 때 읽었던 책 속에 나오는 ‘룸메이트는 밤에 활동하고 나는 밤에 잠을 자야 해서’ 같은 예문에나 나오는 개념으로만 생각하고 살았으니까.


어쨌든, ‘같이 산다는 것’은… 그냥 싫었다. 그냥 불편했어. 내 방에 남이 같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불편했다.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이 싫고, 친하기도 안 친하기도 한 어색한 사이끼리 이 하나의 같은 방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집’에 돌아가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노래도 크게 못 틀고 이어폰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나를 해방시킬 ‘집’이라는 공간이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

집에서_내가_원래_해야_되는_것.jpg

그런 사소한 것들이 나를 불편하게 했으니 나는 참 예민하다. 그치만 이 작은 불편이 시작에 불과했다는 건 절대 몰랐지. 이때는 입만 다물고 있었으면 됐으니까.

 

2. 같이 살기 기초: 자취형 × (같이 살기 + 혼자 살기)


《自炊도 힘든데 自-他炊를 어떻게 하니》
―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살림의 세계,그걸 어떻게 반으로 쪼개서 책임을 나누지?

기숙사가 끝나고, 가까운 곳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너무 편해져서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와 같이 살게 되었다. 하지만 ‘같이 산다는 것’을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걸까, 기숙사의 경험을 성찰해보지 않아서였을까.


아무 준비 없이, 혼자 살기도 좁은 방 한 칸에, 애매하게 친한 자와 같이 살자고 들어갔던 것은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 같다.


자취라는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하는 것인데, 손수 자기 밥을 지어먹는 자취(自炊)를 알기도 전에, 자기 밥과 남의 밥으로 2인분을 지어야 했으니, 그 책임과 스트레스를 2분의 1로 정확하게 나누자는 요구는 너무 쪼잔하고 머리 아프고 상처 되는 일이었다. 


차라리 기숙사에서는 같이 화장실을 쓸 필요도, 같이 장을 보거나 요리를 할 필요도, 같이 청소를 할 필요도 없이 살림과 관련된 모든 것이 별 문제가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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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로 그 친구와 멀어진 것은 당연한 일. 엄청 친해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친구끼리도 살기 힘들다는데, 애매한 친구와 같이 사는 게 이렇게 크고 힘든 일이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어쨌든, 난 그때부터 남이 아닌 친구와 같이 사는 것마저도 불편해졌다. 특히 애매한 사이에서 생활을 공유하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고… 그때부터 남을 만나는 것에 있어 조심하기 시작한 것 같다.


혼자 사는 건 쉬웠냐고? 그 집에서 도망치듯 나왔을 때는, 혼자 살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거지로 혼자 자취를 시작했을 때 나를 찾아 온 것은, 외로움.


같이 살 때도 외로웠지만, 알바가 끝난 후 집에 돌아와 바닥에 누워 아무 말도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집 안이 너무 조용하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가만히 누워 있다가 눈물이 나오기도 했었다.

이시절_내_모습.jpg
출처: Yori Kurokawa, Coamix

밤에 혼자 자는 건 너무 무섭고, 그래서 매일 친구들한테 질척거렸지,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같이 있는 게 싫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근데 또 같이 ‘살자’ 하면 그건 싫어! 같이 살면서 너와 지금처럼 하하호호 웃으며 살 자신이 없어… 


아무튼 그때, 느낄 수 있는 온갖 외로움은 다 경험한 것 같다. 그리고 다시는 그 외로움이 나를 끌고 다니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나 혼자 산다는 그것도 절대 못 하겠다.

 

3. 같이 살기 응용: 생태형 같이 살기


《살림 나누기가 끝나면 마음을 나눌 줄도 알아야 한다》
― 야 씨 여기서도 같이 사는 게 이렇게 고생이고 스트레스구나

휴학을 했다. 옛날부터 시골에 사는 로망이 있었기에, 휴학 후에는 생태 청년 자립공동체에 들어갔다. 운 좋게도 그들이 나를 받아주었고, 나도 그들이 좋았다. 시골에 살고 싶어도, 여자 혼자, 연고도 없는 시골에 들어가 사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니까.


프리-라이더 같긴 했지만, 어쩌면 그들이 만들어 놓은 생활 터전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기만 하면 좋은 공기, 맑은 물,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꿈꾸던 것들 하면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도시의 방 한 칸에서 남과 같이 사는 것보다는, 넓게 트인 시골에서 자연 친화적인 남들과 그들의 생활 습관에 맞춰 사는게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명이_말하면_나머지는_다_듣고있다.jpg
출처: YWAM Korea

도착하자마자 내가 겪은 건 ‘마음 나누기’.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내가 일주일간 어떻게 살았는지, 그래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얘기하고,


당신과 내가 어떻게 맞지 않는지 그게 나에게 어떻게 상처가 됐고 불편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끝은? 내가 이렇게 남을 받아들이기에 모자란 사람인가 하는 미안함과 자괴감과 폭풍 오열.


그렇다고 또 내내 힘들기만 했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사실은 매번 그렇게 펑펑 울면서도, 그들이 타인이라는 사실 덕분에 그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오기 전 이미 여러 차례 마음을 나누고 폭풍을 지나 보낸 그들은, 끈끈함과 서로를 향한 믿음 그리고 ‘포기’를 버무려 놓은 듯한 상태였으니까.


‘같이 살면서 왜 지지고 볶고 싸우고 우리는 왜 영원히 평안할 수 없는가’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됐을 테니까.

참외됨.jpg

아무튼 초심자로서 프리-라이더로 편하게 얻어만 가려던 나의 계획은 그들 사이에 타인이 돼 버림으로 끝이 난 것 같다.


그들을 붙잡고 울고불고 나는 외롭고 힘들고 상처받았고 하는 말 없이, 그들 같은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같이 사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것도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려면 내가 내려놓아야 하는 것들이 많은 까닭에, 차라리 이렇게 같이 살지만 마음은 조금 닫고 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울고불고 싸우고 화해하는 그들을 지켜보며, 공간적으로 함께 했기에, 내가 같이 사는 것에 전문가가 된 줄로만 알았다.

당시_내_기분.jpg

4. 같이 살기 숙련: 주거공동체형 같이 살기


《살림도 마음도 나누는 과정은 투쟁이자 비즈니스》
― ‘집’에서 이렇게 지지고 볶고 살아야 되나?

‘시골 공동체’를 지내다 왔으니까, 서울 주거공동체를 지내는 것쯤은 절대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근데 내가 한 건 수박 겉핥기 식, 나는 여전히 ‘같이 산다는 것’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동안의 내가 같이 살면서 생기는 실질적 문제를 방관하거나 그 해결(이라 쓰고 싸움이라 읽는다)을 피해 왔다면, 이때부터 나는 같이 사는 문제를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이젠 내가 불편해서 못 살겠는 것들을 상대에게 상처 되지 않게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도 살아야 하니까.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그때부터, 같이 살기가 시작된다.

때마침 심리상담을 받고 있어서 선생님의 조언이 함께 사는 문제에 대해 부딪히고 말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너의 그 생활 습관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너의 그 말투가 나를 힘들게 하고, 너의 그 빨래 방법이 나를 괴롭게 하고, 나를 눈치보게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왜 내 샴푸 얘기 안 하고 썼어. 수챗구멍 머리카락은 누가 치우는 거야. 화장실 슬리퍼 하루만 그냥 놔 두면 안 돼? 용기를 내서 말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았다. 남에게 상처가 될까 참고, 양보하면서 힘들었던 마음들은 사실은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 ‘저질 배려’였다.


내가 그동안 배려라고 해 왔던 것들이 사실은 그들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었고, 배려한 후에 ‘얘는 왜 몰라주지’ 원망했던 것들도 모두 배려라 불릴 수는 없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이기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같이 사는 문제에 있어서 불편을 말하지 않는 게, 내가 할 수 없는 것까지 배려하려 하고 참는 게, 이기적인 문제를 넘어 서로를 더욱 괴롭게 할 뿐이라는 것을, 충분히 괴롭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난 내가 엄청난 대인배인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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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같이 사는 것에 대한 해결 방법을 알게 됐어도, 나는 여전히 그 해결 방법인 ‘불편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직도 힘들다는 것이다.


그 불편함을 마주하기가, 서로를 보며 얘기하기가 너무 힘들어… 싸우기도, 같이 살기도, 좋기도, 싫기도 한 그 폭풍 같은 관계를 나는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

 

5. 같이 살기 다시(?) 입문: 가족형 같이 살기


나는 다시 가족에게 돌아왔고, 여전히 ‘같이 산다는 것’에 대해서는 1도 모르겠다. 남이 아닌 가족과 지내며, 여기서는 또 어떻게 다른 모양의 관계를 형성해야 하나 싶어 여전히 머리가 빠개질 것 같다. 


그래도 그나마 괜찮은 것은, 지금은 그냥 내 생활을 열심히 살아가면 되니까, 남과 함께 살 때보다는 편한 느낌이다.


아빠랑 같이 사는 건 편하다. 서로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살면 되니까. 아빠가 가르쳐주는 생활 습관 아래에서, 나는 청소와 빨래를 담당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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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같이 사는 것은 서로 다른 생활 습관 속에서, 누구의 생활 습관에 맞출 것이냐, 즉 누가 살림 주도권을 갖느냐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전혀 다른 생활 습관의 남과 살아가는게 기본적으로 힘든 것이겠지. 하지만 생활 습관의 문제를 벗어나면 더 어려운 문제, ‘어느 정도 바라고, 어느 정도 배려해야 하는지’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함께 살며 배려하고 소통하려 할수록, 나를 얼마나 열어야 하고 남을 어느 정도 궁금해해야 하는지 그 적당한 정도가 찾기 어려웠다.


아빠는 내게 내 성격이 너무 모났다고 말한다. 그러니 남들과 같이 살기 힘들어하지, 나가서 누구와도 함께 사는 걸 즐겨하는 것 본적이 없다고. ’왜 그러지?’라고 생각해 봤자, 자기 성찰은 너무 우울하고, 나는 점점 자기 검열이 강해질 뿐.


남 탓을 해봤자 벗겨지는 건 모자란 나밖에 없기 때문에 입을 다물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제 같은 생활 공간에서 같이 사는 것을 넘어 같이 숨 쉬고 공부하고 배우는 것도, 같이 걷는 것도 지친다. 나는 모두를 받아들일 수 없어, 모두도 나를 받아들일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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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아직도 어떻게 하면 같이 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해야 한다. 혼자 살겠다는 용기도, 돈도 없으니까.


나는 계속 머리 아파하고 몸이 아파하고, ‘그런다고 죽지는 않겠지 설마’하면서 자주 까먹고 기억하고 자주 묵인하며 같이 살아가고 있다. 같이 산다는 것은 나를 마주하는 일이니까.

 

에필로그: 그래서 결국 같이 산다는 건 무엇인가


같이 산다는 건 ‘돈을 아끼기 위해서’, ‘경제적이니까’, ‘아 공유경제의 힘 넘나 대단한 것!’ 등으로 설명되는 단편적인 문제는 아니다.


가족이 아닌 남과 함께 살며, 힘겨루기와 커뮤니케이션 사이에서 ‘나’를 유지하는 것, 끊임없이 발가벗겨지는 과정에서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같이 사는 생활의 실상 내지는 목표가 아닐까.


제일 좋아하는 노래, 함께 살 때 힘들 때마다 마치 찬송가처럼 함께 부르던 ‘같이 산다는 건’이 떠오른다.


같이 산다는 건, 날 덜어내고 너를 채우는 일
같이 산다는 건, 내 우주 너의 우주 만나는 일

그래, 우주끼리 만나면 별이 터지고 없어지고 만들어지고 난리가 나니까.아, 살아 있는 건 왜 이리 고행일까.


Alors, c’est ça l’enfer. Je n’aurais jamais cru…
vous vous rappelez: le soufre, le bûcher, le gril…
ah! Quelle plaisanterie.
Pas besoin de gril,
l’enfer, c’est les autres.

이게 지옥이야. 나는 도저히 믿지 못했지만…
자네는 지옥 하면 불이니 유황이니 고문 같은 걸 생각할 테지?
참 우습지! 고문 따위는 필요없어.
나 아닌 모든 사람이 바로 지옥인 거거든.

― 장 폴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中

원문: TWENTIES TIMELINE / 필자: 오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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