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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은 언제부터 비빔밥의 필수 요소가 되었을까?

조회수 2017. 8. 14. 2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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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LA 올림픽 전후로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매운맛'이라는 표현이 자주 보였다.

옛 비빔밥에는 고추장이 필수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음식/식문화 전문가들은 옛날의 비빔밥에는 고추장이 들어있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주영하 교수의 경우 ‘나물 중심으로 밥을 비빌 때는 고추장 대신 조선간장으로 맛을 냈는데 그 전통은 아직 안동의 헛제삿밥에도 남아 있으며 비빔밥에 고추장이 들어가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진주비빔밥이 그 시초로 보인다’고 했다.


당시 진주에는 우시장이 있었고 우시장 주변에서는 비빔밥에 육회를 사용했다. 이 육회의 비린 맛을 없애기 위해서 고추장을 약간 썼다는 것이다.

출처: jjongphoto
안동 헛제삿밥.

비빔밥이란 게 워낙 스펙트럼이 넓은 음식이었다. 궁중에는 궁중의 비빔밥, 양반가에는 반가의 비빔밥, 농민에게는 농민의 비빔밥, 거지에게는 거지의 비빔밥이 있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있겠지만 결국 밥과 반찬을 한 그릇에 넣고 뒤섞는 것이다. 이 뒤섞인 밥에 간을 더하기 위해 형편에 따라 간장도 넣고 된장도 넣고 고추장도 넣었을 것이다. 


태생이야 어찌 됐든 비빔밥에 고추장이 필수 요소가 된 것이 그렇게 오래된 일일지는 의문이다. 1970년대 후반 왕준련의 요리책에도 양념한 고추장은 필수 요소가 아니라 ‘곁들이로 두고 취향에 따라 넣어 먹으라’는 선택 요소로 기재가 되어있다.

骨董飯。菜蔬骨董飯。以平壤爲珍品。如雜骨董飯、鯔膾鮆膾鰣膾芥醬骨董飯、鱅魚新出炙骨董飯、乾大鰕屑蝦米屑骨董飯、黃州細蝦醢骨董飯、蝦卵骨董飯、蟹醬骨董飯、蒜骨董飯、生胡瓜骨 董飯、油鹽炙海衣屑骨董飯、美椒醬骨董飯、炒黃豆骨董飯。人皆嗜爲珍美

나물과 푸성귀를 섞어서 밥을 만든다. 평양의 것을 가장 맛있다고 친다. 여러 가지 재료로는 갈치, 준치, 숭어 등의 생선회와 겨자장 골동반, 갓 잡은 전어구이 골동반, 마른 새우 가루 골동반, 황주의 새우젓 골동반, 새우알 골동반, 게장 골동반, 달래 골동반, 생오이 골동반, 기름 발라 구운 김가루 골동반, 미초장 골동반, 볶은콩 골동반 등이 있다.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다른 것들을 넣고 즐기는데 모두 맛이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찾은 내용인데 비빔밥의 옛 이름인 골동반의 종류를 줄줄 나열한다. 기본적 여러 나물 이외에 들어가는 별미 재료로 이름을 붙인 것 같다. 그러니까 새우 비빔밥, 멍게 비빔밥 같은 작명이다.


새우젓 비빔밥, 달래 비빔밥, 생선회 비빔밥 등이 등장하는 가운데 미초장 골동반이라는 게 등장한다. 저 미초장이 아마 고추장 계열 아닐까 싶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미초장이 고추장이라고 친다면 고추장을 넣기는 했지만 필수요소라기보다는 별미요소였다는 거다. 멍게 비빔밥처럼 말이다.


고추장이 비빔밥을 포함한 모든 한국 음식의 필수 요소가 된 것은 1980년대가 아닐까. 1984년의 LA 올림픽은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당시 국민학교 몇 학년의 꼬마 딱지였으니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돌이켜보건대 2002년 월드컵 만큼 화제가 되었던 것 같다. 왕발 하형주, 양궁 서향순…


아직도 6.25와 보릿고개의 기억이 나라를 지배하던 시절, 선생님이든 동네 어른들이든 걸핏하면 너네가 보릿고개를 알어? 굶어는 봤어? 라고 협박하던 시절이었다(뭐 나도 5살짜리 딸아이에게 가끔 그렇게 협박을 하는데, 요즘 애들은 그런 협박이 안 통하는 것 같다).

당시 우리나라는 농담으로라도 선진국이 아니었고 얄미운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10년이 걸린다, 30년이 걸린다, 아니 죽어도 못 따라잡는다 같은 이야기가 논쟁거리였다. 그런 나라에서 운동선수들이 금메달을 한 개도 아니고 대여섯 개나 줄줄 따왔다. 우리나라에 자신감이 싹트고 문화에 자신감이 피어오르는 그 무렵부터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매운맛이라는 표현을 방송에서 자주 보게 되었다.


입 짧은 양키와 일본인들에게 고추를 먹이면 너무 핫해 카라이 이따이 하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매운맛이 애국심과 결합되고 확대재생산 되던 것도 이 무렵 아닐까 생각한다. 일단 흑백텔레비전으로는 고추장의 뻘건 색이 멋들어지게 살아나지 않기도 하거니와…



비빔밥뿐 아니라 고추장도 변했다


1980년대에 또 한 가지 바뀐 것이 있었다. 내 경우 1980년대 중반에 아파트로 이사 갔는데 당시 동네에는 아파트가 두어 개밖에 없었다. 대부분 옥상이 있고 장독대가 있는 개인주택/연립주택이었다. 김치와 장은 대부분 집에서 담가 먹었다. 공동주택인 아파트도 청국장이나 된장을 띄우기도 했다. 옆집 사람들이 착해서 참았다기보다는 어차피 자기 집도 띄워 먹을 테니까 서로 그것은 용인해주는 분위기.


더하여 베란다에 샷시 공사를 하기 전 시절이라서 우리 집 베란다에도 장독대가 있었다. 비가 오면 장독을 덮고 햇빛 나면 장독을 열어주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에 몇 년 살다 보니 그런 건지 할머니가 연로하셔서 안 하게 되었는지 파는 된장·고추장이 그럭저럭 먹을만하게 나와서 그랬는지. 아니, 사실 그 모든 게 다 합쳐진 이유로… 1980년대 후반부터는 된장·고추장도 시제품을 사 먹게 되었다.

가정에서 만든 간장·된장·고추장은 식재료의 느낌이 강했다. 쿰쿰하고 짜고 진해서 그냥 밥을 비벼 먹자면 좀 부담스러운 맛이었다. 다른 야채 및 부재료를 섞어서 비비거나 꿀과 고기를 넣고 볶아야 비로소 밥에 비벼 먹을만한 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상업화된 고추장은 맛이 달랐다.


시판 고추장의 성분표를 보면 대부분은 그 물엿 함량에 깜짝 놀랄 것이다. 설탕도 많이 들고 다른 양념도 들어서 재료가 아닌 그 자체로 요리라고나 할까? 전통 고추장으로는 꿀과 고기를 넣고 볶기라도 해야 밥에 비벼 먹을만한 것이 되는데, 시판 고추장은 그냥 퍼먹어도 대충 비슷해진다고 할까?


황교익 씨가 미각의 제국에서 비빔밥 조리법에 대해, 꼼꼼히, 밑줄 긋듯이 읽어주기를 요청한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1. 사골 곤 물로 밥을 짓고 밥이 끓어오르면 불을 줄여 콩나물을 얹어 뜸을 들인다.
  2. 콩나물이 익으면 밥과 고루 섞는다.
  3. 쇠고기는 채 썰어 배즙, 청주를 넣고 무쳐서 1시간 정도 놓아둔 뒤, 마늘, 청장, 참기름, 깨소금, 잣가루를 넣고 무쳐두었다가 육회로 사용한다.
  4. 미나리는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데친 후, 소금, 참기름, 마늘, 깨소금을 넣어 무친다.
  5. 콩나물은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삶은 후 찬물에 헹군다.
  6. 도라지는 소금을 넣고 주무른 후 씻어 쓴맛을 제거한 다음 마늘, 소금을 넣고 볶다가 깨소금, 참기름을 넣는다.
  7. 고사리는 끓는 물에 삶은 다음 마늘, 청장을 넣고 무쳐서 볶다가 깨소금, 참기름을 넣는다.
  8. 표고버섯은 채 썰어 깨소금, 참기름, 청장, 마늘을 넣고 무친 다음 살짝 볶는다.
  9. 애호박은 채 썰어 소금에 절였다가 찬물에 살짝 헹구고 물기를 짠 후 마늘을 넣고 볶다가 참기름, 깨소금을 넣는다.
  10. 무는 채썰어 고춧가루, 마늘, 쑥갓, 소금을 넣고 무친다.
  11. 오이와 당근은 5센티로 곱게 채 썰고 황포묵인 4~5cm, 너비 1cm, 두께 3mm로 썰어놓는다.
  12. 그릇에 밥을 담고 나물을 색스럽게 올려 담아 가운데에 육회를 넣고 그 위에 달걀노른자를 얹은 다음 기름에 튀긴 다시마를 잘게 부숴 넣는다.
  13. 고추장을 따로 담아내서 개인 식성에 맞춰 넣게 하고 콩나물국과 물김치를 곁들여낸다.


양반 가문의 비빔밥 레시피가 외식화되면서 정련되었을 것이다. 이 레시피대로라면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을 것이다. 고추장은 고추장 대로의 맛이 있고 나물은 나물 대로의 맛이 있다. 순하고 맛있는 나물에 고추장을 섞으면 나물의 맛이 죽는다. 나물이 맛이 없거나 재료가 부실할 때라면 고추장이 좋은 맛 강화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원문: 찬별은 초식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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