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제가 하는 일은 회사의 브랜딩 요소 중 눈으로 보이는 것들을 만드는 일입니다. 로고부터 제안서, 브로슈어, 회사소개서, 웹, 앱, 굿즈, SNS 콘텐츠 등 밖으로 보이는 모든 비주얼 콘셉트와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죠. 저런 것들은 너무너무 영역이 다르고 제가 손댈 수 없는 것들도 있답니다.

저는 주로 페이퍼와 SNS 콘텐츠 쪽을 잡고 로고나 아이콘 제작, 웹, 앱, 굿즈, 패키지 등은 전문디자이너님들과 함께 팀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 로고는 참으로 복잡다단하고 어렵고도 심오한 세계인데 그 깊이가 가히 충격적인지라 감히 쉽게 손대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로고를 만드시는 디자이너님들에게 경의를 표한 뒤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포지션이 이렇다 보니 실제 제작 대신 클라이언트와 로고 디자이너 사이에서 그 내용을 정리하고 기획 콘셉트를 잡아 전달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 일은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대다수가 개인사업자거나 회사를 운영하는 분들일 테니 ‘어떻게 디자이너에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읽어보면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들은 대부분의 개념을 이미지화시킵니다. 뭔가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림으로 그려내곤 하죠. 종종 디자이너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다면, 아마 지금 들은 말을 이미지로 구현해내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흔히 이런 말들이죠.

뭔가 굉장히 추상적이거나 우주적 개념, 모순된 개념, 딱 떠오르지 않는 단어들이랄까요. 흔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그냥 대표님이라고 하겠습니다)과 디자이너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에요. 이해하는 방식도 서로 다르죠.

보통 대표님들은 본인의 비즈니스가 머릿속에 맥락이 이미 잡힌 상태입니다. 왜 이걸 시작했는지 어떻게 만들어나갈 건지 본인은 다 알죠. 하지만 듣는 사람은 그런 배경 지식이나 맥락이 전혀 없다는 게 중요합니다. 맥락을 안다고 해도 각자 감정의 차이가 있을뿐더러, 같은 감정을 느끼더라도 서로가 가지고 있는 심상(모티브)이 다르죠. 대표님은 ‘신선함’을 ‘이슬 맺힌 자리에 햇살 반짝이는 초록색 상추’로 그리지만 디자이너는 ‘화이트톤의 깔끔한 접시에 플레이팅한 샐러드’로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중간에서 어떻게 이 간극을 좁혀서 전달하는가가 관건이 되겠습니다. 그 전에 일단 그러면 로고는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부터 생각해봅시다.

로고는 무엇일까

사실 로고는 ‘로고타입(Logotype)’의 줄임말로 원래는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브랜드의 이름을 뜻합니다. 흔히 “디자인해주세요~”라고 하는 그림은 심볼(symbol)이죠.

심볼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동사인 ‘심발레인(symballein)’입니다. ‘조립하다’ ‘짜 맞추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요. 여러 이미지를 조립하거나 짜 맞추어서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로고와 심볼을 동시에 쓰는 것은 콤비네이션 마크(Combination mark)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게 심볼은 알레고리(Allegory)와 자주 비교합니다. 알레고리란 일반적인 것을 위해 특수한 현상을 찾고 현상을 개념으로 변형시킨 뒤 다시 그 개념을 이미지로 변형시키는 과정을 통해 얻는 이미지입니다.

주로 1:1 대응 관계를 이루고 상징보다 좀 더 추상적이거나 의인화한 상태로 등장합니다. 가장 흔하게 이솝우화 등을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여우와 신포도로 이야기에서 여우는 어리석은 자로, 포도는 욕망의 대상을 뜻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상징은 1:多 대응 구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입니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 다양한 의미들을 끌어낼 수 있죠. 흔히 확장된 은유라고도 표현합니다. 단 “내 마음은 호수요”에서 호수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은유일 뿐이죠. 어찌 보면 알레고리에 더 가깝습니다.

로고는 어떤 일을 할까

로고는 3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이미지, 컬러, 구조! 각각의 요소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이때 만든 각각의 이미지와 컬러는 앞으로 제작될 모든 제작물의 중심이 됩니다. 회사를 대표하는 색이 되고 모든 제작물엔 로고가 들어가죠.

이 로고를 통해 홍보하고, 로고를 알리며, 로고를 기억시키기 위해 노력하죠. 로고가 곧 회사의 얼굴입니다. 물론 로고 자체가 브랜드는 아닙니다. 하지만 브랜드의 ‘이름’에 해당합니다.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고민하듯이 앞으로 평생 불릴 이름이니 신중하고 많은 고민을 거쳐야겠죠. 

비주얼적으로도 한 번 정해진 로고는 쉽사리 바뀌기 힘듭니다. 왜냐면 이미 수많은 제품과 페이퍼에 동일한 로고가 퍼졌기 때문이죠. 로고는 비주얼의 중심이자 경영 철학을 함축하는 이름의 역할을 합니다.

로고는 어떻게 만들까

아까 위에서 설명했던 ‘하나의 이미지가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다’라는 의미를 역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미지는 곧 심볼을 의미하겠죠. 하지만 우리는 그걸 만드는 과정이니까 일단 ‘다양한 의미’를 먼저 끄집어내야 합니다. 제가 미팅할 때 문장과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말해볼게요. 1-3단계까지가 대표님이 할 일입니다.

1. 비즈니스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기

비즈니스는 문학작품이 아니므로 관념적인 다양성을 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걷는 만큼 페이백 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걸음’에 대한 역사적 관념적 해석을 고민할 필요는 없죠. 물론 뭐 이것도 선택의 문제겠지만… 대신 ‘관점의 다양성’을 생각해볼 필요성은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먼저 나열해본 다음 각각의 대답을 한 번 찾아보도록 해요.

이런 식으로 답이 나왔다면 ‘걷기’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을 종합해서 ‘걷기’의 재정의를 시작하는 겁니다. 걷는다는 건 단순히 힘들고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또는 단순히 건강을 위한 억지스러운 노력도 아니죠. 걷기는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1, 2번은 감성적이고 여행 같은 느낌이 강해요. 3번은 좀 더 현실적이고 직관적이죠. 비즈니스 콘셉트를 어디에 맞출지 고민을 해봐야 해요. ‘걸으면서 돈 벌기!’가 될지 ‘내 삶을 사랑하는 시간’으로 포커싱할지, 하나를 선택해봅시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추구했던 바가 있을 거예요. 그것을 정하는 시간이죠. 한쪽으로 포커싱 되었다면 이제 이 문장을 단어로 분리시킵니다.

2. 문장 인수분해하기

이런 식으로 해당 문장을 분리합니다. 핵심 키워드를 뽑아내는 과정이죠. 추후에 이 키워드는 각종 회사 소개에 관련한 워딩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가 됩니다.

3. 방향성 정하기

키워드가 두 가지 정도 나왔다면, 그 두 키워드 간 관계를 규정해봅니다. A가 B가 되는지, A와 B가 상호보완적인지, B에서 A로 흘러가는 것인지 등. 방향성을 고민해봅시다.

어떤 것을 우선 이미지로 설정하고 어떤 것을 합성 이미지로 둘지 무게감을 설정합니다. 위에서 설명했듯 심볼은 ‘조립’ ‘결합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의 의미가 다양성을 지니도록 두 의미를 합쳐서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키는 것이죠.

4. 스케치와 레퍼런스 확보하기

여기서부턴 디자이너의 몫입니다. 물론 대표님과 계속 소통은 해야죠. 중심 컬러와 심볼 모양, 상징에 대한 여러 레퍼런스를 찾아봐야 하니까요.

걷기를 나타내는 이미지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발, 다리, 길 모양, 건널목, 신발, 땀방울… 그중 가장 메시지와 적합한 것을 골라내야 하는 것이죠. 서브 이미지와 의미가 잘 연결되도록 말이에요.

5. 이미지의 결합과 컬러의 설정

2~3개의 키워드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설정했으면 그 방향성과 의미가 손실되지 않는 한에서 변형과 단순화 작업을 진행합니다. 컬러의 조합과 배치도 이때 진행되죠.

곡선과 이미지 간의 부적합성, 간격과 시스템적인 부분도 결정합니다. 아래 이미지를 한 번 참고해 보세요.

6. 수정 작업 

이렇게 만든 로고도 추후 수정을 통해 시각적인 부분을 더 다듬습니다. 텍스트 간격과 각 부분 그리드도 정확하게 맞추고 시각적 정렬이나 미디어 적용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가이드라인을 구축합니다. 이 작업은 어렵다기보단 아주 짜증 나는 노가다가 심합니다.

별것도 아닌 걸 왜 이렇게 신경 쓰냐는 분들이 있다면 이 작업의 중요성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각각 자간이나 요소 간의 비율/정렬은 겉으로 보기엔 별로 구분되지 않고 그닥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 요소들은 ‘인식’이 아니라 ‘인지’되는 영역이죠.

이것들은 상대방의 무의식에서 작용합니다. 뭔가 비율이 불안정하거나,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불안정한 정보로 인식합니다. 로고가 지닌 의미나 로고 자체보단 그 불편함이 더 기억에 남죠. 특히 어색한 색 조합이나 뭔가 비대칭에 가까운 불안정한 모양이라면 불편함은 더욱 심해집니다.

수많은 로고와 심볼이 넘치는 요즘 딱히 좋은 요소는 아닙니다. 잘 만들어도 될까 말까 하는데 리스크가 될 요소는 최소화시키는 것이 좋겠죠.

7. 가이드라인 제작 

이렇게 해서 완성된 로고는 가이드라인을 구축해서 전사 공유합니다. 이때 가이드라인에는 다양한 로고의 변형 모드와 적용 범위, 저작권, 적용 방법 등을 명시합니다. 이미지를 잠시 보실까요.

로고는 웹에서 보이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인쇄, 제작물에 사용되므로 다양한 환경에서 잘 보여야 하고 변형이 최소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쓰더라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쓸 수 있도록 그 규정사항을 확정하는 것이죠. 이후 회사가 커지고 상표 등록 및 저작권에 대한 권리와 지속적인 사용에 대한 사실적 증명이 되기도 합니다. 

보통 이런 가이드라인은 제작한 디자이너 측에서 제작해서 전달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렇게 로고 원본과 이미지 파일, 가이드라인까지 확정되면 그것을 전달하고 대표님은 그걸 전사적으로 공유하며 직원들에게 로고 사용 교육을 한 번씩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누가 내 이름을 이상하게 부르면 짜증 나듯 회사도 제대로 불리고 제대로 써지길 원하겠죠. 로고는 이렇게 완성됩니다. 

마치며

가끔 모 사이트에서 ‘로고 제작 10만 원에 해드립니다’ 뭐 그런 카피를 봤는데… 음… 개인적으론 제가 로고 디자인을 하지 않더라도 이게 10만 원짜리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으니 그냥 대충 간단하게 만들어줘’라는 오더도 심심찮게 있는데 누구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로고는 몇 개월 못 가서 그냥 대충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고 제작 비용은 만만찮게 비쌉니다. 단순히 ai 원본 시안을 만드는 비용이라기보단 전체 비즈니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철학을 가시화시키는 역할에 대한 비용이 더 크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만든 로고의 문장과 핵심 키워드, 워딩 등은 추후 슬로건과 다양한 이미지/제작물/콘텐츠를 만드는 핵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브랜딩 가이드를 생성하는 것이고 전사적 공유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냥 맡기는 식의 로고 디자인 의뢰보단 디자이너와 함께 고민하고 상의하며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시길 권합니다. 앞으로 진행할 비주얼 브랜딩의 중심축을 견고하게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문: Aftermoment Creative Lab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