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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동네는 십자가마저 가난하다

조회수 2017. 8. 10. 1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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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그랬다

그 날은 그랬다.


낮엔 어떻게 보이듯 상관없다는 듯 멋대로 감긴 전깃줄은 예수의 몸처럼 축 늘어졌다.

파란 하늘에 걸린 작은 교회의 십자가는 내 자취방 창문 안으로 폭 들어왔다.

원래 색이 뭐였을지 아무런 상상도 자극하지 못하는 빛바랜 십자가는 파아란 가을 하늘에 묻혀 더 비참했다.

2학기가 시작되고 학교 앞 제기동의 허름한 옥탑에 머무르기로 했을 때, 나는 ‘자취’라는 대학의 로망을 실현한다는 생각에 잔뜩 들떴다. 터무니없이 싼 값에 부모님에게 받는 용돈만으로 나만의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니.


이유를 가늠할 수 없이 얼룩덜룩한 구석 벽지라거나 건장한 청년이 밀쳐내면 무기력하게 기능을 상실할 것만 같은 문이라거나 하는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동네에 잠시 거쳐 갈 사람이니까, 라는 생각은 오묘하게 선이 기운 천장조차 젊음이 거뜬히 이겨내야 할 아름다운 시련으로 포장했다.


그러나 중간고사 기간- 즉 자취 초반의 자유에 대한 들뜸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친구들과 술로 채우기엔 공부를 하느라 그저 마음이 허하던 순간 – 노을이 물들기 바로 직전의 시간에 나는 자취방 창문을 통해 십자가를 보게 되었다.


물론 십자가야 항상 그 자리에 있었을 테지만, 이상하게, 그 날따라, 자취방에 들어섰을 때, 아직은 익숙지 않은 공간의 향과 공기가 순간 나를 훅 감싸 챘고, 그 이질감이 낳은 당혹감은, 십자가를 갑자기 내 눈앞에 묶어놓았다.

이 창문에서 십자가가 저렇게 잘 보였나. 십자가가 원래 저기 있었던가, 음, 무교인 나에게는 띄지 않았던 것일까. 근데 원래 십자가가 저리도 쓸쓸해 보이는 것이었나. 항상 서울의 야경에서 유난히 반짝거리는 십자가’들’은 그 당당함이 건방지다고 느끼곤 했는데.


가난한 동네는 십자가마저 가난한가.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십자가에 믿음을 구하나. 가난한 십자가를 보고 구하는 믿음은 가난한가.


십자가가 나에게 던진 파문에 홀리듯 창문을 마주하는 벽에 기대앉았다. 그리고 어느새 찾아온 노을의 냄새가 진해질 때까지 한참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십자가 뒤로는 이런 동네는 지나치는 곳일 뿐이라는 듯한 거대한 고가도로가 무심한 뒤통수를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그 옆의 전봇대마저 십자가보다 위풍당당해 보였다. 전깃줄에 불 켜진 밤에야 상관이 없겠지만, 낮인 지금 십자가에 엉킨 전깃줄이 너무 초라하고 흉했다.


그러나 사실 정작 십자가는 자신의 외양이 어떻게 보이든 지 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보였다. 작은 교회 위에 마른 다리로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보였다.


그것이 주는 느낌은 드라마 속 자식의 담임선생님 앞에서 유난히 초라한 가난한 어머니의 마르고 주름진 손등. 남에겐 작고 초라해 보이지만 다른 남에겐 힘든 삶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


그 십자가를 보며 나는 처음으로 나와 인접한 공간을 향유하는, 내가 여기 오기 전부터 이 동네가 삶이었고 삶인 익명의 얼굴들을 떠올렸다. 작고 마른 십자가의 등에 자신의 힘든 삶을 기댄 이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내가 청춘의 낭만으로 포장한 낡은 서울 동네의 정취가 아니라 이 동네 골목의 담벼락처럼 페인트가 벗겨져 낱낱이 속살을 드러낸 생생한 현실이었다. 문득 울적해졌다.


바로 다시 감정을 거두어들인다. 그들이 이루어내는 풍경 위에 가난과 슬픔 따위의 주석을 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건방진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참을 두서없이 써 내려간 생각의 글은 벽에 부딪혔다. 그러다 갑자기 오랜만에 진짜 글을 쓰고 싶어졌다. 노트북을 켠다.


정확히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사용되는 마침표는 전체 글을 맺지 못한다. 마침표 옆의 커서는 깜박이며 나에게 다음 문장을 재촉한다.


비닐 캐러멜 포장지처럼 앞 꼭지랑 뒤통수가 꼭 짚여있는 글을 쓰는 건 쉽지 않다. 낯선 십자가로부터 던져진 생각의 편린들은 수면 위로 떨어진 낙엽처럼 그저 제자리에서 잔잔히 각기 다른 리듬으로 흔들릴 뿐이다.


원문: 김연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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