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띄어쓰기 규칙: "자신의 호흡에 맞게"

조회수 2017. 7. 31. 2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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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모아쓰기 글자라 띄어쓰기를 안 해도 읽고 쓸 수 있습니다.

한글 운동을 했던 사람으로 한글 띄어쓰기에 대해서 제 견해를 정리해봅니다. 많은 사람이 한글 띄어쓰기가 매우 어렵다며 ‘한글이 어렵다’ ‘한국말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잘못된 규정이 문제지 한국말이나 한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 개념과 역사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1. 한글은 띄어쓰기가 필요 없는 문자로 만들어졌다


한글은 ‘모아쓰기’ 글자입니다. 덕분에 띄어쓰기를 안 해도 문장을 읽고 쓸 수 있는 우수한 특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반면 영어는 ‘풀어쓰기’라서 반드시 띄어쓰기해야 합니다. ‘topin’으로 붙여 쓰면 ‘to pin(투핀)’ ‘top in(탑인)’ 중 어느 쪽으로 읽고 발음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아래 마틴 루터킹 목사의 연설문 중 일부를 보면 거의 읽기가 불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WiththisfaithwewillbeabletohewoutofthemountainofdespairastoneofhopeWiththisfaithwewillbeabletotransformthejanglingdiscordsofournationintoabeautifulsymphonyofbrotherhoodWiththisfaithwewillbeabletoworktogethertopraytogethertostruggletogether,togotojailtogethertostandupforfreedomtogetherknowingthatwewillbefreeoneday.

반면 한글은 모아쓰기라서 ‘탑인’은 누가 읽더라도 ‘탑인’으로 읽게 됩니다. 그래서 띄어쓰기가 없더라도 정확한 발음으로 읽기가 가능하고, 문맥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피천득 선생의 ‘인연’ 중 일부입니다. 띄어쓰기, 마침표, 쉼표 없이도 읽는 데 어려움이 없고, 내용 이해에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날도토요일이었다저녁먹기전에같이산보를나갔다그리고계획하지않은발걸음은성심여학원쪽으로옮겨져갔다캠퍼스를두루거닐다가돌아올무렵나는아사코신발장은어디있느냐고물어보았다그는무슨말인가하고나를쳐다보다가교실에는구두를벗지않고그냥들어간다고하였다그리고는갑자기뛰어가서그날잊어버리고교실에두고온우산을가지고왔다.

당연히 훈민정음 때부터 조선 시대에 발간된 책들을 보면 띄어쓰기가 없습니다. 춘향전 경판본 등을 검색해 찾아보세요. 띄어쓰기 없습니다. 그래도 읽는 데 문제 없습니다. 음절이 그대로 읽히니 내용 이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가끔 띄어쓰기 필요성 말하면서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를 예로 드는 사람이 있는데, 문장은 문맥으로 이해하는 겁니다. ‘배 상태는 어떠냐?’에서 배가 먹는 배인지 타는 배인지 신체의 배인지는 앞뒤 문맥으로 파악하는 겁니다.


조선 시대 소설 한 권을 읽고 쓰는 데 아무 문제 없었는데 앞뒤 없는 극단적인 예 한두 가지로 띄어쓰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말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자백하는 꼴입니다.



2. 띄어쓰기는 읽기 편의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띄어쓰기가 필요 없는 우리말과 한글인데도 띄어쓰기가 도입된 이유는 한국어문법이 구미 문법을 받아들여 체계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문법에 대한 개념도 없던 조선 시대와 달리 근대화 과정에서 품사, 띄어쓰기 등이 한국어문법에 도입된 거죠. 여기서 질문을 합니다.

조선 시대에 띄어쓰기 없이도 한글을 잘 썼다면, 현대에서도 띄어쓰기 없이 한글을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맞습니다.현대에서도띄어쓰기없이한글을잘쓸수있습니다.지금이문장처럼쓰고읽는데문제없죠. 다만… 일정 뭉치로 띄어쓰기를 사용하면 읽을 때 편의성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띄어쓰기를 사용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입니다.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1. 한국말이 아닌 영어 문법에 맞춘 띄어쓰기 규정
2. 강제규정이라는 점

구미 문법은 낱말 단위로 띄어쓰기해야 합니다. 영어의 모든 낱말은 사전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낱말 단위로 띄어쓰기하는 것이 맞는 규정이고, 효율적입니다. 반면 우리말은 곡용과 활용을 하는 한국말의 특성상 낱말 단위로 띄어쓰기가 어렵습니다.

하다. 했다. 한다. 했었다. 했으니, 했었으니, 했는데, 하셨는데, 하시었는데, 하셨지만, 하셨습니다만, 했지만, 했다만, 할까?하셨을까? 하셨는가? 했는가? 했나? 했어? 해?…

‘하다’라는 동사 하나만으로도 사전에 등록 불가능한 수백 개의 낱말을 그 자리에서 만들 수 있고, 어디까지 낱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낱말 단위로 띄어 쓴다’는 규정 자체가 한국말에 맞지 않은 규정입니다.


그런데 한국말에 맞지 않는 띄어쓰기 규정이 강제성을 가지면서 우리 글쓰기를 어렵게 한 것입니다. 띄어쓰기의 강제성만 제거하면 띄어쓰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즉 꼭 지켜야 할 문법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편한 대로 띄어쓰기하라고 하면 됩니다.



3. 결론: ‘글 쓰는 사람이 자신의 호흡에 맞게 띄어 쓴다’


결국 띄어쓰기에 관한 가장 제대로 된 규정은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글 쓰는 사람이 자신의 호흡에 맞게 띄어 쓴다.

다시 말해서 글 쓰는 사람이 글을 쓰면서 이어서 읽는 게 좋을지, 쉬어가면서 읽는 게 좋을지 생각하면서 글을 쓰고, 이 호흡에 맞추어 띄어쓰기하면 됩니다. 읽는 사람은 글 쓴 사람이 띄어쓰기 한 문장에 맞게 호흡을 같이하면서 읽게 됩니다.

낱말 단위로 띄어쓰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참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라고 써도 좋고,

“낱말단위로 띄어쓰기할수밖에 없다는것은 참 답답한 일이 아닐수없다.’

라고 써도 좋은 겁니다. 결국 우리말이 우리말답고 우리 한글이 우리 한글답게 장점을 잘 살리는 길은 한국말에 맞는 문법 규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띄어쓰기에 관한 한국말에 맞는 문법규정은,

‘글 쓰는 사람이 자신의 호흡에 맞게 띄어 쓴다.’

이 되어야 합니다. 글 쓰는 사람이 낱말이라는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띄어 쓰고 싶은 데서 띄어 쓰면 됩니다. 이것이 한글에 띄어쓰기라는 문법을 도입해서 얻을 수 있는 읽고 쓰기의 편안함입니다.




아, 왜 그럼 처음부터 한국말에 맞게 제대로 문법규정을 만들지 못했냐 하실 텐데… 그건 그때 사정이 있었겠죠. 사실 과거에 정부에서 잘못 만든 규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벌식 대신 두벌식 선택한 것이며, 조합형 대신 KS완성형 선택한 것이며…


이미 지난 과거 따져봐야 신세 한탄에 불과할 것이고, 앞으로 맞춤법 규정을 다시 개정한다면 띄어쓰기에 대한 규정은 제대로 개정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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