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접대비 항목이 없어진다면 어떤 사회가 될까요?

조회수 2017. 7. 28. 15: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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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도요.
출처: 경향신문

아리랑TV 방 사장님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전 회계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예전에 건설사에서 신입사원으로 2년 근무하면서 보아온 것들, 그리고 현재 스타트업 CEO로서 직접 회계/세무 업무를 처리하며 이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만약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쓴 돈을 전혀 회사 경비로 처리해 주지 않는다면, 즉, 접대비, 그리고 복리후생비에 음식점, 유흥업소, 카페 등 모든 식음비를 회사 경비로 인정하지 않는 새로운 회계 기준을 도입하여 실제로 지켜진다면 어떨까 하고요.


처음 몇 년간, 어쩌면 매우 오랫동안은 기존의 업무방식 때문에 직원의 사비를 들여서라도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하면서 일 얘기를 하고, 음식점에서 식사와 반주를 하고, 유흥업소에서 업무의 연장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월급이 많이 오르지 않는 이상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대면 업무가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이메일이나 전화로 업무만 간단히 얘기하고 헤어져도 일을 성사시킬 수 있으면 비용을 아껴 좋을 것입니다.

물론 꼼수 대마왕들은 어떻게든 다른 비용을 우회 사용할 방법을 찾아내겠죠. 하지만 예전처럼 접대비 한도에 맞춰 카드를 몇 개씩 나눠 몇백만 원어치를 결제하는 꼼수는 못 쓰겠지요. 직원이 직접 그 비용을 결제해야 한다면 영업 실적에 따라 몇억 대 연봉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면 최대한 그런 자리를 피하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직원들 회식 자리에서 쓴 음식값, 술값을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기업 입장에서는 그에 해당하는 부가세 10%를 돌려받지 못하고, 매출 규모에 따라 소득세로 공제받던 10-22%도 내야 하므로 예전보다 세금 부담이 최고 32%까지 늘어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회식 자리도 줄고 회식하더라도 일찍 끝날 것입니다.


회식과 접대가 줄어들면 일단 부인이나 자녀들에게 일, 특히 접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녁 먹고 술 마셔서 늦게 들어간다’고 하는 핑계 대기가 어려워집니다. 또 친구들이랑 사적으로 술 먹는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고 거짓말하는 것은 더 어려워지겠지요.


전에 주5일 밖에서 식사하고 들어가던 횟수가 1~3일 정도로 줄어들 것입니다. 술이란 게 또 버릇이라 처음에는 금단 현상이 오겠지만 회식이나 접대 자리에서처럼 마구 들이부으면서 비용 걱정 없이 시킬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알코올 소비가 줄 겁니다. 자주 안 마시면 예전처럼 폭음하는 능력이 퇴보할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술이 술을 불러서 먹는 상황이 좀 줄겠죠.

식음비를 일절 인정하지 않으면 비즈니스를 상대로 하던 음식점, 유흥업소가 폭삭 망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사비 내고도 먹을 만한 곳들만 살아남거나요.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레 친구 만나 1차 밥 먹으며 반주하고 2차 술 먹고 3차 단란주점 가고 4차 더 좋은 데 가고, 그러던 습관을 지키기가 어려워지겠죠. 갈 곳이 없으니까요.


모든 직원이 예전에 비해서 회식, 접대를 하지 않게 되어 집에 일찍 들어가는 일이 잦아진다고 칩시다. 처음에는 가족도, 직원도 괴로울 거예요. 같이 시간을 보내는 법을 연마하지 않았으니까요. 어쩌면 이미 밥과 술이 사교생활의 전부로 굳어져 버린 20대 이후 세대는 영원히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지도 몰라요.


그러나 시간이 많아진 가족들은 어떻게든 그 시간이 덜 괴로울지 고민하다가 해결 방법을 어느 정도는 찾을 겁니다. 이게 또 습관인지라 곧 재밌어져요. 공동의 취미가 생길 수도 있고, 좀 더 서로의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면서 더 큰 것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될 테고요.


직접 아이들의 공부를 가르쳐 줄 수도 있고, 커가면서 갑자기 뚝 하고 단절되어버리는 일도 덜 생길 거고요. 상사가 쓸데없는 야근을 하지 않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찍 들어가면 팀원 전체가 일찍 들어갈 분위기가 되겠지요.

20대 때부터 사회생활의 준비 일환으로 술을 강요받는 게 제 대학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밥과 술이 아니더라도 더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터득한다면 조금 덜 공허한 삶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만의 취미, 자신만의 철학 등이 어릴 때부터 생기면 커서도 사회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사람들이 가정을 만든다면 가정이 더 즐겁고 행복해서 출산율에도 도움 되지 않을까요? 북유럽 어딘가에서 오랜 시간 정전 되었을 때 아기들이 갑자기 많이 생겼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다른 자극적인 놀 거리가 별로 없다면 자연스레 집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되고, 물론 많은 다른 요소가 있지만 꽁닥꽁닥하다가(히히) 출산율이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많아져서 육아도 덜 부담스러워질 거고요.


사실 오랫동안 밥과 술로 인간관계를 형성해왔던 우리에게 식음비를 회사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아마도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사회적 변화일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핀 하나를 뽑아버림으로써 얽히고설킨 많은 사회적 현상들을 한꺼번에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상주의자인 저는 꿈꿔 봅니다.

추신

모든 회사가 제가 겪은 것과 같은 상황도 아니겠지만, 제가 관찰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상상했습니다.
회계/세무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을 테고 저는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작은 식음비가 모여서 굉장히 많이 나간다는 사실, 그리고 그게 판관비로 들어가서 글로벌 회사들에 비해 우리 기업의 마진율이 낮은 요소로 작용한다는 샤오미와 삼성 비교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원문: Hailey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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