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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채식'이 가져온 변화

조회수 2017. 7. 28. 09: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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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코 베지테리언 도전기

고양이 눈빛에 고기를 끊었다


그날은 무척 힘든 날이었다. 아마도 ‘취준생’이었던 내가 또 어느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거나 했던 것 같다. 엉엉 울다가 고양이들이 있는 방으로 갔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많이들 그렇겠지만 힘들 때 고양이를 안고 있으면 조금은 위로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때 날 바라보는 고양이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라며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알고 있다. 이건 다분히 내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동물도 인간들처럼 마찬가지로 감정을 갖고 가족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고양이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이 있고, 애착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동물들 또한 우리가 과연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개, 고양이보다 돼지의 인지능력이 더 높다.


나는 동물보호 단체에서 제작한 공장식 축산업 현장의 처참한 모습을 찾아봤고, 그날 이후로 소, 돼지, 닭 등 육류를 먹지 않기로 했다. 2013년의 일이었다.

올해 8살난 우리 고양이.

고기 끊었더니 5kg 빠졌다


이후 1년여 정도 고기를 먹지 않았다. 당시 나는 ‘취준생’이었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곳이 없었고 따라서 식단을 내 맘대로 선택하기 다소 수월한 편이었다. 해산물이나 달걀까지 먹지 않는 ‘비건(완전한 채식)’이라면 모를까 육류만 먹지 않는 정도는 쉬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살이 5kg이나 빠지고 이후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쉽게 유지가 되는 등 효과가 상당했다. 그러던 중 나는 취직을 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1년 정도 계속해오던 원칙을 포기하고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한 채식, 약 끊었다


그렇게 2년 정도가 더 지났다. 그동안 나는 직장을 옮기고, 업무 스트레스가 가중되면서 슬슬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과민성 대장염으로 매일 화장실에 수차례 들락거리고, 습관적인 두통과 감기몸살로 가방에 늘 진통제와 감기약을 넣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병원에 가도 잠깐 나아질 뿐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푹 쉬라’는데 쉴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심한 복통과 구토증세가 났고 약을 먹으면서도 일주일 정도를 앓았다. 이런저런 건강정보를 찾다가 문득 채식하는 이들의 글을 읽었다. 예전에 잠시 하다 포기했던 채식 생각이 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한번 해 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 어려우면 다시 포기하면 되니까. 일단 눈에 보이는 육고기만 끊어보자고 다시 결심했다.


그렇게 또 2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눈에 보이는 육고기(집에서 먹을 때는 소고기다시다 등 육류 성분도 안 먹는다)만 피하는 정도지만 효과는 상당하다. 먼저 지난 2개월간 단 한 번도 약을 먹지 않았다.


잠시 감기에 들 것 같다가도 한숨 푹 자거나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면 깨끗이 나아졌다. 심하게 앓아눕거나 배탈이 난 적도 없었다.


체력도 좋아진 것 같다. 해외 출장을 다녀와서 같이 갔던 일행들 모두 일주일 내내 피곤하다고 하소연했는데 정작 나는 평소와 다를 게 없어서 놀랐던 적이 있다.


고기를 끊고 나서 첫 일주일간 심한 어지럼증과 무기력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 시기가 지나니 완전히 사라졌다. 검색해 보니 체질이 개선될 때 나타나는 ‘명현현상’의 일종인 것 같았다. 지금은 전혀 그런 증세는 없다. 지난번과 달리 살은 아직 거의 빠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건강상태가 호전됐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채식주의자’는 아니고, ‘비육식주의자’


물론 나보다 훨씬 엄격한 수위의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나의 경우에는 엄밀한 의미로 ‘채식주의자’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어쩌다 회식이나 친구들을 만날 때는 그냥 눈에 보이는 고깃덩어리만 안 먹을 뿐 성분을 확인할 수 없는 육수 정도는 먹을 때도 많고 고기밖에 나오지 않는 식당에서 회식할 땐 굶고 있을 수는 없으니 고기 기름 묻은 채소, 국수 정도는 그냥 건져 먹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그냥 고기를 먹지 않는 ‘비육식’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채식만이 정답이며, 모든 사람이 채식을 해야만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듯이 나에게는 지금의 식생활이 우연히 더 잘 맞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돼지기름이 든 음식(감자탕, 짜장면 등)을 먹으면 간혹 체하거나 배탈이 나는 경우가 잦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몸에 맞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건강 말고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내 고양이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가진 모든 생명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당연히 모든 동물성 성분(달걀, 우유 포함)을 먹지 않고 ‘비건’이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직장생활을 하고(그것도 직업 특성상 새로운 사람들과 식사를 많이 해야 하는 편이다) 있고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나 외식을 할 때 내 식생활로 인해 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았다.


채식으로 인해 잃는 것이 많아지면 그만큼 중도 포기하기도 쉬울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채식 커뮤니티에 가입해 채식을 결심한 사람 중 1년 이상 지속하는 비율은 정말 낮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힘든 도전이다.)

내 생활까지 바꾼 채식


건강 때문에 시작한 채식이지만 고기를 먹지 않게 되면서 음식 외 옷, 생활용품 등도 조금씩 ‘윤리적인’ 소비를 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됐다. 채식 관련 정보를 찾으면서 나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의 존재를 알게 됐고 모피 등 동물성 성분을 사용하지 않는 ‘비건패션’도 알게 됐다.


이후로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선 이왕이면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을 사려고 하고 겨울옷도 라쿤털이 붙지 않은 것으로 장만했다(겨울 패딩에 흔히 붙어있는 라쿤 털은 산 채로 벗겨낸 가죽을 이용한다).


생활용품도 가격이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천연가죽이 들어가지 않고 인조가죽이나 혹은 공정무역 제품 등을 이용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이 글은 고기를 먹는 분들에게 채식하라고 강요하려 쓰는 글은 절대 아니다. 내 고양이 또한 육식동물이기에 다른 동물의 성분이 든 사료를 먹고 있고(간혹 채식하는 분 중 고양이에게도 채식사료를 먹이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육식동물이 고기를 먹는 것까지 막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 일반사료를 먹이고 있다) 누구에게나 가장 맞는 생활패턴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나 윤리적인 딜레마 혹은 건강상의 문제로 채식과 사회생활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하나의 ‘사례’를 알려 주고 싶을 뿐이다.


아, 고기 안 먹으면 무슨 낙으로 사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원래부터 고기라면 죽고 못 사는 편은 아니기도 하지만 그래도 치킨이나 와퍼 같은 건 꽤 좋아했는데, 다행히 요새는 고기를 넣지 않은 대체식품들이 워낙 잘 개발돼 있어서 먹고 싶은 건 거의 다 먹을 수 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고기 안 든 채식 만두를 먹고 있다. 물론 일반 만두 못지않게 맛있다)


그동안 먹은 것만 해도 치킨, 만두, 햄버거, 불고기, 두루치기, 동그랑땡, 피자 빵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다 고기 안 넣고 만든 것들이다. 아래는 그동안 먹은 음식들. 모두 동물성 성분은 1%도 안 든 것들이다. 고기 안 먹고도 나름 괜찮은 식생활을 할 수 있다!

종로 조계사 앞 ‘삼소’의 사찰 채식 점심뷔페
신촌의 채식빵집 더브레드블루의 감자빵과 피자빵 두종류. 이곳에서 파는 빵들은 우유, 계란, 버터도 넣지 않는 완전 비건식이라고 한다.
채식 전문 쇼핑몰에서 이벤트 당첨돼서 받은 콩불고기랑 두루치기로 쌈밥 해 먹은 날.
압구정 ‘사뜨바’의 비건버거

원문: 루씨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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