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베를 이야기하는가?

조회수 2017. 7. 18. 19: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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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로 이야기를 꺼내는 집단은 사회의 미움을 받는 아웃사이더다.

연인의 성격을 알아보려면 여행을 떠나거나 운전을 시켜보라는 말이 있다. 여행은 즐겁자고 하는 것이지만, 일상과 많이 다르기에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하는 일종의 부하 검사(tolerance test)다.


평소 데이트는 그날 기분이 좋지 않거나 컨디션이 나쁘면 약속을 취소하면 된다. 그래서 언제나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무거운 짐을 몇 개씩 들고 다녀야 하고, 일정이 꼬이면 기차역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고, 도둑에게 소매치기를 당할 수 있고, 바가지는 기본으로 당하는 여행에서는 멋진 모습만을 보여줄 수 없다. 그때 사람의 진면목을 엿보라는 뜻이다.


운전하는데 깜빡이도 켜고 들어오지 않은 앞차를 향해 쌍욕을 하는 남자가 있다. 휴가지 음식점에서 주문을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음식을 내온 아줌마에게 앙칼진 목소리로 면박을 주는 여자가 있다. 그들은 옆에 앉은 애인의 얼굴이 왜 어두워지는지 알지 못한다. 잘못은 저 사람이 했는데 왜 나보고 뭐라고 해?


일베, 동성애자, 의사…. 내가 주로 이야기를 꺼내는 집단은 사회의 주류가 아니고, 소수이며, 미움을 받는 아웃사이더다. 나는 일베를 바람직한 커뮤니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동성애자도 아니다. 


의료는 내 직업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왜 나는 굳이 피곤함을 무릅쓰고 이런 화제를 꺼내는가? 이런 문제 상황이나 혹은 소수집단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집단을 대하는 연습을 통해 사회가 더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 모든 것은 양면적이다. 양들은 늑대를 자신들의 자유를 파괴하려는 자라고 비난하고, 늑대를 쫓아낸 양치기를 자유를 준 사람이라고 고마워한다.

링컨이 한 말이다. 과연 양들의 판단은 옳았는가? 늑대가 양들을 해치려고 했다고 해서 양치기가 자동으로 양들의 수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믿기진 않지만, 늑대는 양치기를 쫓고 양들을 구해줄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은행 피싱을 예방하기 위해 온 국민의 컴퓨터에 백신을 깔게 하면 피해 금액은 줄어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 국민의 컴퓨터에 백신을 깔 수 있는 정부는 온 국민의 웹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정부다. 게임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미성년자의 야간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것은 합리적인 주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은 게임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명분을 얻었고, 제한적이나마 인터넷 접속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이것은 중요한 선례다. 조금 비약하자면 도둑을 예방하기 위해 안방에 CCTV를 달아 감시해달라고 부탁하는 격이다. 혹시라도 강도가 협박해서 끄는 것을 막기 위해 CCTV를 켜고 끌 수 있는 권리마저 넘기진 않았는가?


모든 일베 회원은 정상 참작할 것도 없는 재활용 불가 쓰레기다. 그러므로 일베를 한다는 의혹만 있어도 사회에서 매장해 버려야 한다. 일베는 유해 사이트이니 정부 차원에서 차단했으면 좋겠다. 


이렇듯 우리 사회가 ‘불량집단’ 일베를 대하는 태도는 전두환 시절 삼청교육대의 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일베를 이런식으로 축출하는데 가장 앞장서는 사람들이 비슷한 행동을 했던 전두환을 매우 싫어할 것으로 예상하는 점은 굉장한 아이러니다.

깡패와 도둑을 삼청교육대로 끌고 가 ‘갱생’ 시킬 수 있는 국가는,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남산 지하에서 물고문할 수 있는 국가였다. 동성애자를 섬으로 추방할 수 있는 국가는 한센병 환자도 같은 논리로 추방할 수 있다.


일베를 폐쇄할 수 있는 정부는 다른 어떤 사이트도 폐쇄할 수 있는 정부다. 모든 것은 양면적이고, 절대선은 없다. 그래서 나는 악을 이야기한다.

원문: 펜시브의 무권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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