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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과 역사 바로 세우기

조회수 2017. 7. 4. 17: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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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은 단순히 경제민주화라는 영역을 넘어 나라의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

대한민국 재벌의 탄생과 성장 과정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굴곡과 궤를 같이한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에 있어서 38도선 이남의 조선 땅은 일본으로부터 빼앗은 일종의 전리품이었다.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에 대한 통치권을 확보한 미 군정은 1945년 12월 6일에 조선 내 일본인 재산의 권리 귀속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법령 33호를 공포한다.


일본의 정부, 기관, 개인이 소유하고 있던 일체의 재산은 1945년 9월 25일부로 미 군정의 소유가 되는 조치였다. 당시 일본의 폭압적 식민통치를 거치며 조선 땅에 있는 대부분의 근대기업과 광대한 농지와 토지는 법적으로 일본 소유였다. 그런데 이 법령 33호를 통해 일본의 재산은 모두 미 군정의 소유가 된 것이다.


미 군정의 이런 조치는 당시 들불처럼 번지고 있던 노동자 자주 관리 운동과 갈등과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1946년 8월 미군정청 여론 국의 조사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사회주의 지지율 70%, 공산주의 지지율 7%, 자본주의 지지율 14%, 모른다 8%)


당시는 좌익이 대세였으며 대중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일본인 관리인이 떠난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나 자치위원회를 구성해 자주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 군정이 들어와 법령 33호에 근거해 일본 재산을 접수하고 각 공장에 미 군정이 임명한 관리인(친일파)을 파견하니 갈등과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미 군정의 화순탄광 노동자 학살 사건은 갈등과 충돌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대표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미 군정은 좌익 세력을 탄압하고 입맛에 맞는 이승만을 밀어주며 38도선 이남에 친미자본주의 국가를 세우는 작업에 들어갔고, 결국 이승만이 단독선거 단독정부론을 내세우며 미국의 지원으로 분단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특징은 민간에서 기업을 소유해서 이윤 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때문에 미 군정에 귀속된 적산(적국인 일본의 재산)을 민간에 매각하는 절차에 들어갔는데,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의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매각에 나온 적산 기업은 시장가격의 1/4에서 1/3에 해당하는 헐값에 팔려나갔는데, 그마저도 최장 15년에 이르는 분할상환을 허락해주었으니 특혜도 이런 특혜가 없었다.


예컨대 시장가격 100억 원에 이르는 기업을 25억 원이라는 헐값에 매각하는데, 그 대금마저 15년 분할상황이 가능하니 첫해에 2억 원도 안 되는 돈만 마련하면시장가치 100억 원대 기업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승만 계열의 자유당 국회의원이자 중앙위원이었던 강경옥이 조선 타이어 공업을 매수한 경우를 보자. 조선 타이어 공업은 1953년 11월 11일에 정부의 사정가격 1억 3,700만 환으로 공개입찰 됐는데 워낙 헐값이라 경쟁이 붙어 무려 12억 7천만 환에 낙찰되었다.


그런데 강경옥이 압력을 넣어 매수를 포기하게 만든 후, 공개 입찰도 거치지 않고 수의계약으로 1957년 2월 13일에 고작 8,642만 6천 환에 불하받았다.


이렇게 로또와 다름없다 보니 너도나도 한몫 잡으려는 분위기가 뜨거웠다. 하지만 아무나 살 수 없었다. 귀속재산처리법 시행령 제10조에는 ‘법 제15조의 규정에 의하여 합법적이며 사상이 온건하고 운영능력이 있는 선량한 자’라는 제한 규정이 있다.


이승만 정부 입장에서는 도대체 누가 사상이 온건하고 선량해 보였을까? 바로 자신들에게 뇌물을 갖다 바친 사람들이 온건하고 선량해 보였다. 그런 이유로 귀속재산 매각 과정에서 온갖 부정부패와 뇌물이 판을 쳤다.

바로 이 과정에서 재벌이 탄생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은 1951년에는 무네이(棟居)양조장을 불하받았고, 1957년에는 한국흥업은행을 적산으로 불하받았다. 삼성과 연관이 깊은 신세계백화점의 전신인 미쓰코시백화점 역시 이때 불하받은 적산기업이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은 서울 중구 초동의 200여평 대지를 불하받아 현대자동차공업사의 부지로 사용했다. SK그룹의 창업주 최종건은 자신이 사원으로 있던 선경직물을 불하받아 대기업 SK그룹의 토대를 마련했다.


한화그룹 창시자인 김종희는 일제시절 조선화약공판에서 일했는데 미군정이 실시된 후 관리인으로 선임됐으며 관련기업인 조선유지 인천공장도 관리하게 됐고 1952년에 기업을 불하받았다. 두산그룹은 소화기린맥주를 불하받았으며 해태제과는 영광제과를 불하받았고 쌍용그룹은 동경방직과 조선직물을 불하받았다.


이들은 뛰어난 경영능력과 탁월한 기술력을 통해서 재벌이 된 것이 아니라 ‘사상이 온건하고 선량하다’는 것을 뇌물로 증명하여 특혜를 받고 재벌로 탄생했다. 탄생부터 부패한 정경유착으로 점철된 재벌은 그 성장과정 역시 썩은 내가 진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물자가 부족해 미국의 원조물자와 원조달러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미국은 원조물자와 원조달러를 보내면서 동시에 미국 관리들을 파견해 원조물자와 원조달러의 사용처를 일일이 관리 감독했다.


미국은 대한민국 정부가 원조물자와 원조달러 매각을 통해 얻은 수익의 절반 이상을 군수부문에 사용할 것을 강요했다. 미국의 목표는 대한민국을 공산주의 국가를 겨누는 창으로 활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업들에게 이 원조물자와 원조달러는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적 요소였다. 원조물자와 원조달러는 말 그대로 원조를 통해 들어와서 가격이 무척 쌌기 때문에, 이승만 정부로부터 원조물자와 원조달러를 배정받는다면 사업이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였던 것이다.


이승만 정부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상이 온건하고 선량한’ 재벌들에게 원조물자와 원조달러를 주로 배정했다. 대표적인 재벌기업 삼성이 원조 설탕(제일제당), 원조 면화(제일모직), 원조달러(삼성물산)로 성장한 것을 보면 상황이 어땠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뇌물은 이승만 독재를 유지 및 강화시키는 자금으로 쓰였다.


부정부패한 이승만 정부가 4.19 민중항쟁으로 무너졌지만 혼란한 정국을 틈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초반에 부정축재 기업인을 구속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이윽고 재벌들과 타협하면서 구속을 풀어주고 부정축재환수액도 크게 깎아주며 재벌을 정부의 하위파트너로 포섭했다. 


재벌들은 박정희 정부의 요청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를 결성했는데 초대 회장이 바로 삼성의 이병철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재벌을 자신의 뜻대로 통제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로 은행 국유화 조치를 실시했다. 당시는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이 자금을 융통하는 방법은 은행과 사채밖에 없었다.


사채 금리는 50~60%인데 반해 은행 금리는 24~26% 정도였으며, 은행을 틀어쥔 정부가 은행자금 중 일부를 수출자금이라는 형태로 특별 지원했는데 이 자금의 금리는 6%였다.


때문에,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이 수출자금을 확보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사업 성패의 큰 변수였다. 박정희 정부 역시 ‘사상이 온건하고 선량한’ 재벌들에게 수출자금 및 대출을 몰아주었으며(대기업 대출금이 전체 대출금의 70%) 그 과정에서 얻은 뇌물로 독재정권의 유지 및 강화에 사용했다. 이 재벌체제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까지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을 했으며 유신헌법을 만든 김기춘이 그 딸의 비서실장을 하지 않았는가. 재벌들 역시 2세 3세에 걸쳐서 부를 세습하며 더러운 정경유착으로 쌓아올린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촛불투쟁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많은 국민들은 새 정부의 재벌개혁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재벌개혁은 단순히 경제민주화라는 영역을 넘어서 나라의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이다. 취임 직후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한 결기로 철저한 재벌개혁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원문: 북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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