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라는 교조주의를 폐기할 때다

조회수 2017. 7. 4. 10: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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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수꼴'과 '빨갱이'라며 사냥하기 급급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보수 v 진보, 화해할 수 없는 싸움


원래 의회정치는 겉으로는 충돌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대화가 계속 이루어지며 합의를 도출하게 되는 법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 등이 말하는 소위 ‘정무적인’ 과정이 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무적인 소통을 강조하는 박지원 전 대표(아님)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가 못하다. 좌파와 우파의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만 해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자유한국당은 온갖 구실을 붙여 의회 활동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좌우 중앙의 타협 가능한 영역이 점점 없어지다시피 하고 있다.


우파는 정부는 많은 돈을 낭비하므로 정부의 역할이 작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좌파는 부자일수록 세금을 많이 내야 하며 정부가 이를 사회적으로 재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파는 귀족노조로 대변되는 노동조합의 보호주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좌파는 노동조합 활성화가 경제민주화에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를 수꼴과 빨갱이로 몰아가며 싸운다. 젊은 층 위주의 소셜 미디어 댓글난과 조중동 댓글난은 서로를 악마 취급하며 맹렬한 비난을 쏟아붓고 있다.

 

노동권은 중요하다, 하지만 귀족노조는 문제다


그런데,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다. 좌·우파 도식에 따르면, 정부의 역할과 세금, 노동조합의 의의를 둘러싸고 그들은 충돌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들은 정말 충돌해야만 하는 가치인가? 사실 이들의 싸움은 상당 부분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 부의 편중 현상을 해소해야 하지만, 오늘날 정부의 역할엔 낭비적인 부분이 있다.

노동조합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정규직의 이득만 챙기는 오늘날의 노동조합은 문제가 크다.


이건 전혀 모순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상호보완적이다. 정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정부가 더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노동조합의 의의를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이려면 정규직 위주의 노동조합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고전적인 좌우 도식은 도전을 받고 있다. 더 이상 좌와 우의 논리는 이분법적이지 않다. 좌우 도식이 강요하는 선택에서 벗어나, 좌파적 논리와 우파적 논리 사이에서 가장 현실에 적합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렇다면 어떤 정답을 선택해야 하는가? 아마 ‘민주주의의 정원’ 같은 책이 한 해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강력 추천 마크를 박은 캐나다의 오바마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문재인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미남 지도자로 뽑히기도 했다 (우리 이니는 7등인데…)

 

미국의 해법, 한국의 해법


좌우 도식을 벗어난 답안지라고 해서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역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다.


도널드 트럼프는 첨단 산업과 중국, 멕시코, 자유무역 등을 적으로 설정하고,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를 미신 취급하는 등 완전히 포퓰리즘에 기대 정치를 벌였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러시아, FBI 스캔들을 비롯해 공적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모르며, 오직 나르시시즘에 취한 최악의 모습을 보인다.

천조국의_흔한_각료회의.jpg

반면 한국의 경우, 기존 우파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던 박근혜가 국정농단 스캔들로 탄핵당하고 벌어진 대선임에도 비교적 온건한 선거가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는 개혁과 변화를 열망하는 젊은 세대가 문재인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는 트럼프와 정반대로, 대통령 비서실장, 제1야당 당 대표자 등 기성 정치권에서 오래 종사했던 사람이다.


대선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 중 하나는 복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는데, 보수 우파 후보인 유승민이 증세를 주장하고 리버럴 진보 후보인 문재인이 수비하는, 기존의 좌우 구도로 설명할 수 없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정책본부장이랑 토론하셔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랜만에 헬조선이 천조국보다 우월한 모습을 보여준 셈이 되었다. (가끔 홍준표가 등장하여 토론회를 예능으로 만들긴 했다.)

홍준표의_예능감.jpg

우파이기 때문이 아니라, 틀렸으니 틀린 것


한동안 우파 경제논리의 핵심이었던 낙수효과는, 감세와 친기업 정책 등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그 부가 중산층, 서민층에게 확대된다는 논리를 품고 있다. 처음부터 경제학계에서는 그리 설득력 있는 논리로 여기지 않았음에도 세계적으로 많은 정부에 의해 채택되었는데, 역시나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아마 낙수효과가 이토록 현실 정치에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그것이 우파의 구미에 잘 맞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낙수효과를 둘러싼 논의는 좌파는 반기업적이고 우파는 친기업적이라는 도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낙수효과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유념해야 할 것은 낙수효과가 좌파의 논리냐 우파의 논리냐가 아니라, 이게 그냥 쓸모없는 이론이라는 사실 하나 뿐이다.

'민주주의의 정원’이 낙수효과를 대신해 제안하는 경제 정책은 두터운 중산층을 중심으로 하는 미들아웃 경제학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폴 크루그먼은 다른 책에서 경제학 이론과 과거의 실증적인 사례를 설명해가며 중산층을 두텁게 만드는 것이 진정 경제 번영의 지름길이라 호소한 바 있다.


경제적으로 미국이 가장 번영했던 시기는 노동조합 활동이 유례없이 활발했고 중산층 규모가 가장 컸던 시대라는 것이다.

총파업 투쟁의 효용

쌓여있는 화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상위층에 집중된 ‘부’를 사회의 ‘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효용을 누리는지가 사회의 ‘부’를 결정한다.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갖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생산성’ 높은, ‘부유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좌파적인 관점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파가 좋아하는 경제 규모의 차원에서도 얘기는 다르지 않다. 중산층이 두터워져야 사회 전체적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여력이 높아지고, 경제에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 이 ‘미들아웃’ 이론은, 낙수효과와 달리 역사적으로 상당부분 증명된 것이기도 하다.


좌우, 보혁의 차이가 없는 건 아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가, 기회의 균등을 중시하는가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 가치의 차이는 그리 본질적이지 않다. 낙수효과 위주의 경제 정책인가, 중산층 위주의 경제 정책인가 하는 질문에서 좌우란 사실 곁가지에 불과한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 봐도 해답은 비교적 분명할 테니.

 

‘규제’가 아니라 ‘돌봄’으로 성장하는 정원


정부가 우월한가, 시장이 우월한가 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오늘날의 사회는 나름의 질서에 따라 돌아가고 있지만, 그 질서는 우리가 모두 손에 잡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개개인은 합리적이기도 하지만 그 합리성은 불완전하며, 감정적이고 역동적이다.

감성을 살리기 위해 가내수공업으로 USB에 잉크칠을 한다든가

그렇기에 나름의 ‘돌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 ‘돌봄’은 일부 우파 진영으로부터 흔히 ‘규제’라 불리며 공격받지만, 우리가 논해야 하는 것은 ‘규제란 필요한가’ 같은 일반론이 아니라, ‘어떤 규제가 필요한가’ 하는 더 세밀한 논의인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원’(The Gardens of Democracy)이란 그런 뜻이다. 우리가 앞으로 만들 민주주의란 통제될 수는 없지만, 계획될 수는 있는 정원과도 같은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그리 쉽게 ‘계획’되진 않는다. 당장 중산층 중심의 경제 정책이라 해도 실제 이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있어서는 이론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교육은 수월성을 먼저 생각할 것이냐 평등을 먼저 생각할 것이냐, 최저임금은 어느 정도 상승률이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는 최고선일 것이냐… 모두 어려운 문제다.


책은 미국을 비롯한 북미권 정치 상황에 맞춰 쓰여졌고, 때로는 우리가 공감하기 힘든 대안을 내놓기도 한다. 정치자금 규제나 필리버스터 개혁 같은 것들은 사실 한국의 정치 상황과는 잘 맞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딱 한 번 해 봤는데 뭐…

그러나 여전히 이 책은 위에서 소개한 낙수효과와 ‘미들아웃 경제학’에 대한 논의를 비롯해, 큰 정부와 작은 정부의 도식에서 벗어난 ‘작고도 큰 정부’ 모형 등 이 책은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다양한 고찰로 가득하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비로소 사익을 추구할 수 있다거나, 사회보장제도는 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활동의 촉매라는 생각 등은 흥미롭다.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 이후 세계 정치는 급속히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득세하던 극우주의는 기세가 한풀 꺾였고, 한국은 탄핵 후 새 대통령을 뽑았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국수주의와 테러가 양 극단에서 힘을 겨루고, 의회는 협치를 말하면서도 실상은 몽니를 부리며 주도권을 잡으려 애를 쓴다.

대통령 지지율 80%에 겹쳐 이런 짤방 놀이가 유행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직도 고민해야 할 것이 많다.


‘작고도 큰 정부’가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면,

사회보장제도가 어떻게 경제활동의 촉매가 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커뮤니티 안에서는 이타심이 이기심보다 사익을 충족하는 데 더 이득이 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라. 새로운 민주주의를 고민함에 있어 생각보다 훨씬 많은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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