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이 살 수 있는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한다

조회수 2017. 6. 23. 10: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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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글쓰기'와 '먹고 살기'가 양립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출판사는 사실상 도산한 상태다


2000년대 초반이었다. 한 출판인의 번역소설을 펴냈다. 처음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창고에 묶여 있던 이 소설이 나중에 한 신문에서 크게 소개되었다. 감동구조가 확실했던 이 소설은 그때부터 팔리기 시작했다. 50만 부 이상 팔리며 스테디셀러가 되자 이 출판사 사장은 출판이 두려웠다고 했다. 실력이 있어서 책이 팔린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 출판사는 최근 몇 년간 신간을 한 권도 펴내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 좋은 그 출판사 대표는 궁색하게 굴지 않으며 잘 살아가고 있다. 한 책의 성공이 가져다 준 행복이었다.

출처: La blog de Carosou
그런 시절도 있었더랬습니다…

얼마나 많은 출판인들이 이런 꿈을 꿀까?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1인 출판사의 99%는 바로 도산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1년에 수천 개의 출판사가 새로 출현하지만 1년에 한 권의 신간이라도 펴내는 출판사는 3천여 출판사에 불과하다. 그러니 대부분의 출판사는 사실상 도산한 상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출판이 살 수 있는 시스템: 진흥원의 문제를 따져보자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등장한 이후의 출판진흥책은 심하게 말하면 1인 출판사 육성에 초점이 모아졌다. 게다가 자비출판이나 중복출판을 일삼는 이들이 주도하는 중소출판협의회하고만 정책적 연대를 꾀했다.


출판이 살아날 수 있는 제도나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출판사에 직접 지원을 해주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1인출판사에는 가점을 주어가며 지원했다. 정말 양서를 꾸준히 펴내는 출판사들은 오히려 억압했다. 진흥원의 간부들이 ‘닭모이’나 ‘새우깡’을 던져주는 쾌감을 누리는 사이에 우리 출판은 처절하게 무너져 내렸다.


내 블로그에 자주 들어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닭모이’를 주는 정책을 비판해왔다. 장기적인 비전을 마련하지 않고 굽실거리는 자들에게만 닭모이를 던져주면서 출판인을 조롱하던 그들에게 기대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에 그렇게 필요하지도 않은 기사들을 모아서 자료랍시고 제공하거나 어설픈 통계나 내놓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작년에는 진흥원에 독서진흥본부가 새로 생겼다. 팀을 본부로 확장한 것이다. 나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문화체육관광부 담당국장에게 진흥원을 만들어 출판을 그만큼 말아먹었으면 됐지 이제 독서까지 말아먹으려고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들이 독서진흥을 하려는 자들에게 닭모이를 던져주면서 비판적인 저자를 강연자로 초청하지 못하게 하거나 비판적인 책을 목록에서 빼라고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후 문체부에서는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촛불혁명이 벌어진 이후 이들은 두려웠는지 책사회에서 뺏어갔던 ‘독서동아리’ 사업을 다시 책사회로 되돌려줬다. 책사회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것은 언론에 크게 소개된 바가 있다. 이제 새 정부 등장 이후 비정상적인 일들이 하나둘 정상으로 돌려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출판사에 직접 닭모이를 투여하는 정책은 비록 소프트랜딩을 하더라도 점차 줄여나가면서 출판이 살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진흥원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 옳지 않나 싶다.



이런 현실에서 문학이 부흥할 수 있을까


지금의 출판시스템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이 출판에 종사하려 들겠는가? 몇 년 일하다 실망해서 이 바닥을 떠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내가 황석영의 『수인囚人』(문학동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문학이나 출판이 살 수 있는 제도나 시스템이었다.

“당시(1971년)에 글쓰기를 전업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허황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 만용이었다. 글을 싣고 원고료를 받을 만한 지면도 변변히 없었고 몇몇 월간지와 계간지가 있다고는 하지만 고료는 한 달 생활비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설령 매월 단편소설 한 편을 발표한다 할지라도 먹고살 만한 돈이 못 되었다.

그리고 어느 누가 단편소설 한 편씩을 매달 써낼 수가 있을까. 이웃나라 일본은 그 무렵에도 단편소설 한 편을 쓰면 석 달쯤의 중산층 생활이 보장된다고 들었다. 그러니 느긋하게 일 년에 네 편을 쓰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는 삼년여에 창작집 한 권을 내면 작가로서 중간결산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우리네 본격문학의 형편은 현재까지도 비슷한 상황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2권, 243쪽)

부끄럽고 참담하다. 이런 현실에서 문학이 부흥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게다가 블랙리스트마저 등장했었다.

한국에서 '글쓰기'와 '먹고 살기'가 양립할 수 있을까?

나는 적은 원고료일지언정 약속한 날짜에 한 번도 미룬 적이 없다. 책을 발행하면 인세는 바로 지급하는 구조를 만들어놓았다. 직원들이 알아서 자동으로 지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놓았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지급되는 돈이 늘 너무 형편없다. 내가 할 도리는 하면서 살자는 생각이었지만 금액이 적어 늘 자책감에 시달리면서 살았다.


가족이 낙향하는 바람에 몇 년 전에 회사를 떠난 회계담당 직원이 돈 문제에 관한 한 당신이 가장 깨끗했다는 카톡을 보내온 적이 있었는데 내가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내 부도덕한 행태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을 것을 생각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100일 글쓰기 곰사람 프로젝트』(최진우, 북바이북)가 입고됐다. 이 책을 살펴보다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더 이상 글쓰기가 두렵지 않다!”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전적으로 편집자의 아이디어다. 이 책은 좀 팔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이제 기획에서 손을 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출처: DAUM 책
귀… 귀여워

내가 아이디어를 낸 월요일에 입고된『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은 ‘조선일보’에서 한 줄 단신으로 소개해준 것이 유일하다. 이 책에는 4000부 인세에 해당하는 원고료 600만원이 투입됐다. 처음부터 원고료를 모두 건질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기분이 꿀꿀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알라딘에 화요일에 입고된 이 책이 벌써 사회과학 주간 64위, 사상가/인문학자 분야 주간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이게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판매부수를 생각하면 한국출판이 걱정스러울 수준이지만 말이다.


출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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