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에 대한 공감을 낮춰야 할 때

조회수 2017. 6. 20. 13: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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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편과 거리를 두세요. 사회는 그렇게 바뀝니다.

※ Nautilus에 Erika Weisz와 Jamil Zaki가 기고한 ‘The Case for Less Solidarity’를 번역한 글입니다.


사람들은 정부의 적자(federal deficit)를 항상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공감 능력의 부족(empathy deficit)을 더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6년 노스웨스턴대학 졸업식에서 버락 오바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오바마의 연설 이후 “공감 부족”은 학계와 언론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2016년 미 대선과 그 결과는 특별한 공감 능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한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공화당원들을 인터뷰했고 농촌 지역의 가난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J, D. 밴스의 『힐빌리 엘레지(Hillbilly Elegy)』, 아를리 혹스차일드의 『자기 땅의 이방인(Strangers in Their Own Land)』을 생각해봅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두 지지자 사이의 긴장을 낮추지 못했습니다. 공감을 위한 노력이 언제나 성공하는 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로는 역효과를 부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이기적으로 행동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만으로 자신들도 이기적으로 행동합니다. 정말로 공감 부족 때문에 사회 분열이 일어난 것이라면 공감을 위한 노력이 이를 치유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문제는 해결방법이 아니라 진단 자체일지 모릅니다. 공감은 모든 음의 세기를 동시에 키우고 낮추는 볼륨이 아니라 각각의 세기를 다르게 조절하는 이퀄라이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을지도요. 즉 우리는 전반적으로 더 공감하거나 덜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더 공감하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덜 공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충분히 다른 이들에게 공감하는 이도 공감 불균형 때문에 고통받을 수 있습니다. 곧 자신과 외모와 생각과 행동이 비슷한 이들, 즉 내집단에게는 크게 공감하지만 그렇지 않은 외집단에게는 공감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집단의 의견과 관행에 의문을 제기할 때 외집단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몇몇 연구는 이러한 불균형이 결핍보다 더 큰 문제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올해 심리학자 에밀리 브루노, 미나 시카라, 레베카 색스는 미국인과 아랍인, 그리스인과 독일인, 헝가리인과 난민이라는 세 가지 내집단-외집단 쌍에 대해 공감 정도를 측정했습니다. 


이들은 외집단보다 자신의 내집단에 더 공감하는 이들, 곧 공감 불균형을 겪는 이들이 외집단에 대해 더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심지어 외집단에게 해를 끼치려는 마음까지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실제로 한 사람의 평균 공감 능력보다는 불균형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이는 전체적인 공감 능력을 키우는 프로그램이 만약 이들의 내집단 공감 능력을 키우게 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함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내집단에 더 큰 공감을 느낄수록 내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폭력을 불사하게 됩니다. 자신의 내집단에 애착이 큰 이들은 더욱 편향되었으며 자신의 집단에 불리한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심리학자 제오프 코헨은 새로운 법안을 평가하게 하는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법안의 내용보다는 법안을 제안한 정당에 더 좌우된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놀라운 점은 사람들이 이런 자신의 편향을 눈치채지 못했을 뿐 아니라 법안 평가가 법안의 내용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바탕 둔 객관적 평가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사회적 분열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쩌면 상식에 반하는 답일 수 있습니다. 바로 내집단에 대한 공감을 낮추고 같은 편과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정말 가능할까요?

내집단과 거리 두기가 가능할까?

명확한 예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내집단에 대한 공감 능력을 낮춤으로써 공감 불균형을 해결한 현실의 예가 있습니다. 2017년 1월, 상원의원 존 매케인과 린지 그레이엄은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테러리즘과의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자해”라고 비판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비판왕”이라 부른 매케인은 트럼프가 미국의 예맨 공습을 “대성공”이라 불렀을 때, 트럼프가 미국과 러시아가 도덕적으로 같다고 말했을 때도 계속해서 트럼프를 비난했습니다. 매케인은 일생을 공화당원으로 살았지만 이제 자신의 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좌파 진영에도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반파시스트 운동이 거세지던 2월, 밀로 이아노풀로스의 버클리 연설을 방해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창문을 깨고 건물에 불을 질렀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곧 이러한 폭력이 자신들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같은 진영 일부를 비난함으로써 평화라는 당을 초월하는 가치를 지켰습니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집단이 감정적으로 잘못되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의 입장을 조절해 균형을 잡으려는 행동을 “감정적 보상(emotional compensation)”이라 부릅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아밋 골드버그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 특정 불의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개인은 더 큰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와 그의 동료는 새로운 이민법에 의해 추방당한 팔레스타인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이스라엘인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일부 참가자에게는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고, 나머지 참가자에게는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도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그룹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수록 더 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내부 고발은 공정함과 충성심 사이의 갈등이다.

내집단의 감정이나 행동을 부인하는 것은 내부자 고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심리학자 아담 웨이츠, 제임스 던간, 리앤 영은 내부자 고발이 공정함과 충성심 사이의 갈등이라고 말합니다. 이 두 감정은 내집단이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때 충돌합니다. 


웨이츠와 그의 동료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공정함 또는 충성심의 중요성에 관한 글을 쓰게 했고, 그룹별로 1에서 30까지를 영어로 쓰는 작업을 시켰습니다. 이후 참가자들은 연구자에게 다른 참가자가 작업 도중 규칙을 어겼는지 말하게 했습니다. 공정함에 관한 글을 쓴 이들은 동료의 규칙 위반을 더 많이 보고했고, 충성심에 관한 글을 쓴 이들은 동료의 부정을 더 많이 눈감았습니다.


세 사람은 모든 공공기관 및 집단은 충성심이 아닌 공정함을 강조해야 하며 모든 개인과 집단이 공정하고 윤리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비윤리적인 행동을 보고하는 것이 그 집단에 대한 진정한 충성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충성심을 재정의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를 통해 내부자 고발과 다른 모든 종류의 감정적 보상은 자신의 집단을 배신하는 게 아니라, 집단의 가치를 보호하려는 숭고한 행위로 바뀔 수 있습니다. 내부의 의견 충돌은 심지어 장려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외국인협회(AFSA)는 비공식 포럼에서 부서의 정책을 비판하는 직원에게 건설적 비판 상을 수여합니다.


물론 자신이 속한 집단과 거리를 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집단에 대해 공감 능력을 낮추는 일은 사실 흔히 발생합니다. 이를 적절하게 사용할 경우 기존의 방법으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풀릴 수 있으며 모두가 반성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 선분의 길이가 같은가요?”

1950년대 이루어진 순응에 관한 유명한 실험에서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사람들이 어떤 사실을 결정할 때 얼마나 다른 사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지 보였습니다.


애쉬는 연구진을 참가자로 가장한 후 진짜 참가자들과 그룹을 만들어 이들에게 특정 선분 몇 개의 길이가 같은지 다른지 물었습니다. 참가자로 가장한 연구진이 실제로는 다른 길이의 두 선분이 같은 길이라고 답하자 진짜 참가자들은 자신의 판단 대신 이들의 답을 따랐습니다. 


애쉬의 실험에서 적어도 75%의 참가자들은 한 번 이상 틀린 답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애쉬는 후속 실험을 통해 이러한 순응을 피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집단을 따라가고자 하는 본능을 무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특히 누군가가 먼저 집단의 의견을 거부했을 때 더 쉽게 이를 무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참가자로 가장한 다른 연구진이 전체 의견과 다른 의견을 내자 진짜 참가자들도 집단의 의견에 반대하기 시작했으며 집단에 순응하는 비율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용기는 전염성을 가지고 있으며, 한 사람이 집단에 반항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릅니다. 모든 집단 구성원의 마음속에는 독립성을 가진 개인으로 건설적 비판에 참여할 수 있는 잠재적 외로운 의인이 숨어 있습니다.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과 거리를 둠으로써 한 사람은 두세 사람이 되고, 두세 사람은 다시 집단이 되고, 집단은 운동이 됩니다. 사회는 이렇게 바뀝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


참고

1. Epley, N., Caruso, E., & Bazerman, M.H. When perspective taking increases taking: reactive egoism in social interac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1, 872–889 (2006).
2. Bruneau, E. G., Cikara, M., & Saxe, R. Parochial empathy predicts the reduced altruism and the endorsement of passive harm.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in press).
3. Cohen, G. L. Party over policy: The dominating impact of group influence on political belief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5, 808–822 (2003).
4. Goldenberg, A., Saguy, T., & Halperin, E. How group-based emotions are shaped by collective emotions: Evidence for emotional burden and emotional transfe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7, 581-596 (2014).
5. Waytz, A., Dungan, J., & Young, L. The whistleblower’s dilemma and the fairness-loyalty tradeoff.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9, 1027-1033 (2013).
6. Asch, S.E. Studies of independence and conformity: A minority of one against a unanimous majority. Psychological Monographs 70, 1-7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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