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과 학습으로 기호를 읽어봅시다

조회수 2017. 6. 11. 2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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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스토리, 그 사이의 무언가

0. 섬집 아기


저는 오늘 트위터에서 섬집 아기에 대한 트윗을 했습니다. 요약하자면 대략 섬집 아기 동요가 불안감을 준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음악적인 부분에도 있고, 당시 사회 분위기에도 있을 것 같았지요. 여기까지는 가설이었습니다.


곧이어 그 동요를 무섭거나 슬픈 내용으로 생각했다는 멘션들이 들어왔지요. 섬집 아기가 죽는 것으로 믿고 있는 분들도 있었고요. 엄마가 죽어서 아이를 데려간다는 것으로 아는 분들도 있었고요, 이것을 무섭게 여긴 분들은 가사를 호러 스토리로 끼워 맞춰 보려는 경우도 있었죠. 그걸 들려주면 울어버리는 아이들 영상도 유튜브에서 몇 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약식이지만 실제 사례 되겠습니다.


하지만 섬집 아기의 가사는 그저 ‘아이가 잠깐 혼자 집 보는 것’ 밖에 딱히 별 게 없어요. 그래서 가사만 놓고 봤을 때 이걸 가지고 무섭다느니 슬프다느니 뭔가 있다느니 하는 건 오바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정말 그것 뿐이라는데 이것을 부정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점이 좀 찜찜합니다. 그래서 전 가사 외에 무언가가 있다고 본 거지요.

출처: 왓섭! 공포라디오

만약 제가 이 가설을 더 증명하고자 했다면 섬집 아기를 편곡하고 설문 조사를 실시하는 등 정식으로 논문 절차를 따랐겠습니다만, 섬집 아기 자체를 굳이 증명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이 가설 자체를 맞든 틀리든 ‘증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있다’는 것이 중요했지요. 그건 음악 기호라는 것이 이미 연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음악은 가사와는 상관없이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죠. 제 가설이 맞다면 섬집 아기가 가진 음악적 기호가 가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뭔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다른 맥락의 것으로 오독하게 만든 거죠. ‘혼자 집을 본다’는 가사에서는 눈물이 날 정도로 분리 불안을 유도한 것이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기호에 대해 겉핥기를 잠깐 해보겠습니다.



1. 기호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언어나 문자 기호가 아니고요, 아주 정교한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음악 기호보다는 영상 기호 쪽이 전공이니까 그걸 좀 써 보려는 것이죠. 먼저 기호에 대해서 위키백과를 찾아봤습니다.

기호(記號)는 어떠한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쓰이는 개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기호는 정보 전달이나 사고·감정·예술 등 정신 행위의 기능을 돕는 매체이다. 좁은 의미로는 문자나 마크 등 의미가 붙여진 도형(圖形)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표현물, 패션이나 다양한 행위(및 그 결과)까지도 포함한다.

위와 같이 나오네요. 즉 정보전달, 정신행위 등의 소통을 위한 시청각적 표현물, 행위, 그 결과까지 기호라고 하는 거예요. 이걸 정식으로 파기 시작하면 소쉬르니 퍼스니 기표니 기의니 하는 얘기부터 해야 하겠지만 어차피 수박 겉핥기이니까 다 뛰어넘고 영상 기호만 잠깐 말씀 드릴게요.


이미 낡은 예겠지만 롤랑 바르트가 이미지를 분석한 것을 저도 다시 복기할 겸 꺼내보겠습니다. 아래는 판자니 파스타 광고인데요, 바르트는 1964년에 ‘이미지의 수사학(Rhétorique de l’image)’에서 기호 도식으로 이 사진을 분석했습니다. 이 분석은 사진영상, 특히 광고사진 분석에 있어서 획기적인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죠(주형일, 2007, pp.150~151).

판자니 광고

이 광고에 그려진 것은 망태기, 야채, 파스타면이고, 컬러는 붉은색, 노란색, 흰색을 썼습니다. 카피는 고급 이탈리아풍 파메산 소스 면발 뭐 이런 게 쓰여 있다고 하네요. 이것이 겉으로 보이는 것들이지요. 


그런데 이 물건들이 망태기에서 쏟아지는 모습으로 연출한 것은 ‘시장에서 막 돌아와서 망태기를 내려놓은 모습’을 지시하고, 또한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다는 이미지를 은폐하고 집에서 요리해내는 ‘가정적인 음식’이라는 분위기를 은연 중에 풍깁니다.


야채를 배열한 형태는 정물화처럼 보임으로써 부르주아 문화, 고급스러운 느낌을 받게 하고요. 붉은색, 노란색, 흰색은 이탈리아 국기의 색으로 이탈리아풍이라는 의미를 강화합니다(주형일, 2007, pp.151~155, 폴 코블리, 1997, pp.51-53). 토마토 색의 배경은 토마토 소스를 암시함과 동시에 식욕도 돋울 수 있겠네요.


이와 같이 이미지는 문자가 아니라 즉시적이고 함축적이며 감각적인 언어를 전달합니다. 이것이 영상 기호지요(영상은 스틸에서 동영상까지 다 포함해요). 이 감각은 태초의 본능적인 것일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학습된 감각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지도 그렇다면 음악도 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밀레(Jean-Francois Millet)의 만종(The Angelus). 1857~1859

위는 밀레의 만종입니다. 씨감자를 수확하고 농부 부부가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죠. 따뜻하고 소박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저녁 석양이라고 보기에는 낮은 구름의 하늘이 음산하고, 땅을 너무 황폐하고 버적거리는 느낌으로 그렸어요. 


역광 때문이겠지만 생명력도 입체감 없이 납작하게 그려진 듯한 부부의 모습도 이상하죠. 무엇보다 여성의 고개가 지나치게 꺾여 있어요. 초집중하고 있죠. 아주 간절해 보여요. 가난한 부부의 힘든 삶을 지시하고 싶었다고 한다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저 여성의 기도하는 모습이 묘하게 신경 쓰이지요.


유명한 일화라서 아시겠지만 살바도르 달리도 이 그림에서 불길함을 느꼈어요. 감자 바구니가 그려진 것이 아닐 거라고 믿었죠. 나중에서야 초음파 분석을 통해 달리의 말이 맞았음을 알게 됩니다. 원래는 감자 대신, 어린 아이의 시체가 담긴 관이 그려져 있다고 하지요. 그러나 너무 충격적인 그림이라고 생각했던 친구의 우려로 시체 위를 감자로 덧칠한 거예요.


달리가 이 그림에서 느낀 불안감의 정체는 밀레가 의도했던 영상 기호를 읽어낸 거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요?



2. 학습된 기호, 연출


클리셰에 대해서 좀 말해봅시다. 듀나 님의 영화 게시판에서 찾아본 클리셰란 “생각없이 반복되고 있는 생각이나 문구, 영화적 트릭, 그 밖의 기타 등등”을 말한다고 해요. 저는 이 클리셰도 기호의 일종이라고 봐요. 이미 대중들이 충분히 학습한 기호인 거죠. 너무 많이 학습한 나머지 좀 뻔하다고 느낄 정도로요.


우리는 딱히 대사나 나레이션, 자막이 없어도, 크리세적으로 연출된 것을 보면 무얼 말하려는지 알아차리죠. 그러니 클리셰란 것도 기호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것을 이용한 개그 만화가 있어요. 랑또 작가의 SM 플레이어 3화입니다. 3화의 제목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왠지 찝찝한 만화”입니다.

모든 불길한 장면을 암시하는 클리셰적 연출을 다 쓰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용이에요. 보통 이런 연출을 하면, 뒷 여자에게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무 사연이 없어요.

심지어 이런 연출까지 하지만 없어요. 없습니다. 나이데스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우리는 이 연출 기호를 읽었어요. 이 여자, 사연 있다고. 하지만 이 웹툰 내용은 읽어낸 이 기호들을 모조리 배신하죠.

남친의 어머니께 첫 인사 드리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시어머니 되실 분은 아가씨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들은 뒤 덜덜덜 떨며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머리가 좀 아플 뿐’이라며 뭔가 숨기는 듯한 태도를 취하죠.


이거, 드라마라면 반드시 저 여자는 시어머니의 친딸이예요. 남주와는 이복동생 사이라고요.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우리가 읽은 기호는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아무 일 없어요. 독자들은 웃게 되지요.


이 웹툰이 웃긴 이유는 내용이 연출 기호를 배신하기 때문입니다. 기호라는 언어가, 스토리와는 다른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재밌는 거예요. 우린 두 언어의 갭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3. 끝으로


다음은 제가 좋아하는 단편 영화 ‘분노의 질주(Paths of Hate)’입니다. 대사 한 마디 없어요. 연출만으로도 종교도 가족도 모든 명분도, 심지어 자기 자신의 모습도 사라져 뒤얽히는 증오의 방향만 남는다는 전쟁에 대한 상징적인 내용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나요? 증오만 남은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성의 말살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너무 잘 연출했죠. 그래픽스도 좋아요. 3D를 굵직한 카툰처럼 렌더링한 기술도 아주 수준급이죠. 영상이 기호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 내용과 감정을 전달 받을 수 있었을까요?


원문: Mediafish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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