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조회수 2017. 5. 25. 16: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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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 교육의 핵심은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출처: 프레시안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말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됨을 자각한 공공의식을 갖춘 그런 국민, 즉 ‘시민’이 주인 되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오는 정치가 아니라 시민에 의해 권력이 만들어지고 견제되고 교체되는 정치다. 물론 이러한 일에 필요한 지식, 기능, 태도를 갖춘 사람이 ‘훌륭한’ 시민이 있을 경우의 일이다. 이 훌륭함은 도덕적인 선, 착함과는 의미가 다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을 다룬 <윤리학>과 훌륭한 시민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을 다룬 <정치학>을 구별하였다.

에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으로서의 덕을 “공직을 담당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였다. 시민은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나랏일을 맡아 볼 수 있을 정도의 지식과 기능, 그리고 문제를 사적 이해관심이 아니라 공공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는 태도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화주의자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까닭도, 군주정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당시 피렌체 시민들이 훌륭한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갖출 가망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지식과 기능, 그리고 공공선에 대한 관점은 인간의 본능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것들은 우리 본능을 억제함으로써 얻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시민으로서의 훌륭함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교육되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잘 교육된 시민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존속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다. 민주시민교육 없는 국민주권은 결국 폭민 정치로 흐르고 만다.



민주시민 교육의 핵심은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다


민주시민교육의 구체적인 내용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공직을 담당할 수 있는’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자칫 공무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능처럼 오독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노량진 학원에서 이루어지는 공무원 시험 대비 코스들을 민주시민교육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분명 “공직을 준비”하는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공직이 오늘날의 관료와 전혀 다른 뜻이기 때문이다. 직업적인 공무원, 직업적 관료는 19세기 이후에야 등장한 개념이다. 고대 아테네, 그리고 더 나아가 로마에서는 공공의 일을 직업적 관료가 아니라 시민들의 토론을 통해 결정했다.


공직을 담당한다는 것은 전문적인 관료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문제에 대한 토론을 주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말한 시민으로서의 훌륭함이란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사리사욕이 아니라 공공의 관점을 가지고 토론에 참여하여 훌륭하게 발언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토론의 능력은 민주시민에게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고대 아테네나 로마보다 훨씬 복잡하다. 공공의 문제 역시 논리와 수사만으로 다룰 수 있는 경우가 별로 없고, 다양한 전문적인 분과학문의 지식을 요구한다.


특히 21세기 이후 사회적 쟁점의 70% 이상이 과학기술 혹은 사회과학과 관련된 문제이다. 과학적 소양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이 환경문제, 경제적 불평등 문제, 교육 문제 같은 쟁점에서 제대로 된 토론을 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과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면 토론에 참가하지 못하거나, 공연한 고집과 생떼를 부리기 쉽다.

출처: Perkins school for the blind

물론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모든 시민이 전문적인 과학기술자나 사회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과학적 방법론을 충분히 이해하고, 과학적 견해를 이해할 수 있을 수준의 지식은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토론처럼 보이지만 실상 서로의 주장을 강변하며, 결국 목소리 큰 쪽의 뜻대로 사회가 움직이다가 큰 손해를 보는 일이 발생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시민들은 점점 의사결정 과정에서 밀려나며, 과학기술, 사회과학 분야의 소수 전문가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만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20세기 후반부터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며,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민주주의의 위기다.


또한 토론은 다양한 견해, 관점에 대한 관용을 전제로 한다. 특정한 종류의 사고방식이나 견해를 혐오하는 사람은 토론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토론을 끝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 ‘관용’은 “그래야 한다.”라는 도덕적 당위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관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도, 실제로 그런 생각과 삶을 자주 접해보지 않았다면, 막상 실제 상황에서 관용의 정신은 쉽게 발휘되지 않는다. 이성은 “관용해라”라고 명령하지만, 감정은 어느새 경계하거나 꺼리고, 심지어는 혐오하는 것이다.


다른 생각, 다른 삶의 방식을 다양하게 미리 경험해 두어야 하며, 그 경험을 자주 성찰적으로 검토해 두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겠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러 나라의 역사, 문학을 읽고 예술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된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 학생들 중 상대방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많이 아는 학생들일수록 혐일, 혐한 감정이 낮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관용은 단지 도덕적 태도가 아니라 많이 알고 경험하는 만큼 발휘되는 것이다.



책으로 깨어있는 시민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책으로 귀결된다. 민주시민이란 책을 많이 읽는 시민이다.

민주시민 교육은 책을 많이 읽히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회적 쟁점을 토론하는데 필요한 자연과학, 사회과학적 지식들, 그리고 논리와 수사는 요점정리식 수업을 통해 얻을 수 없다. 관련 문헌들을 찾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여러 다양한 나라, 민족의 역사, 문학, 다양한 삶의 방식과 견해들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도 역시 책을 읽는 것이다.


어느 정치인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깨어 있음’은 정의감, 도덕적 비분강개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선악 논리를 통해 자신을 선이라 믿는 사람들로 가득한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이런저런 선동과 파시즘이 기승을 부릴 뿐이다.


깨어있는 시민이란 폭넓고 다양한 독서, 그리고 꾸준한 사색과 토론을 통해 시민으로서 훌륭함을 갈고 닦아서, 어떠한 거짓 선동, 흑백논리, 혐오 조장에도 넘어가지 않는 그런 시민이다. 이런 시민들이 서로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완전히 정착하고, 어떠한 종류의 독재나 반민주정도 틈을 노리지 못할 것이다.


원문: 권재원-부정변증법의 교육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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