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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기 전, 책이 나올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조회수 2017. 5. 12. 2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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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지는' 삶이 줄어들고 '살아내는' 삶이 늘어나면서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저 주입식 공부만 해온 학력고사 세대

1993년에 대학을 들어갔으니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다. 우리 다음부터 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었다. 학력고사에서 수학은 다 맞았고 영어 1점, 국어 1점 틀렸다. 암기과목은 원체 싫어했는데, 다행히 암기과목도 통틀어 몇 점 안 틀렸던 것 같다. 우리 때 학력고사가 역대 가장 쉬웠고, 때문에 고득점자가 무척 많았다.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렇다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사교육과는 인연이 없었고, 몸은 교실에 있었음에도 워낙 학교라는 공간 자체를 싫어했던지라 수업을 제대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항상 수업시간에 상상의 나래만 펼쳤던 것 같다. 성적표에는 매번 약속이나 한 듯 ‘수업태도불량’이 등장한다. 자율학습시간을 땡땡이 쳐서 담임에게 골방에서 뒈지게 맞을 뻔했던 기억만 생생하다. 도대체 뭐가 ‘자율’이냐!


사실상 독학으로 공부했던 것 같다. 학과 공부하는 것을 워낙 싫어했지만 좋은 대학 가야한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너무 많이 들었다. 삶의 목적은 그저 좋은 대학 가는 것이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진행되는 모든 교육의 최종 목표가 명문대학 진학으로 귀결되는 사회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에, 나 역시 그런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공부는 하기 싫지만 어쨌든 좋은 대학은 가야할 것 같으니 최대한 학력고사라는 시험 제도에 맞춤형 공부를 했다. 심지어는 독서실에서 모의 학력고사 문제집으로 실제 학력고사를 보는 것과 똑같은 시간을 배정해서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진정한 목표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력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었으니.


중학교 때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한 후 그럴듯한 꿈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1993년도에 서울대학교 전기전자제어계측공학과군에 입학한 것도 그냥 커트라인 높고 취직 잘 되고 전망도 좋다는 게 이유의 전부였다. 솔직히 뭐 하는 곳인지도 잘 몰랐다.


집에서는 의과대학 가기를 바랐으나 내가 적록색약인 것을 어떡하나. 지금이야 적록색약도 의과대학 진학에 전혀 문제없지만, 당시 적록색약은 서울대 의대에서 받지 않았다. 어쨌든 서울대 가는 게 삶의 목표였는데 19살에 삶의 목표를 이뤘다. 덜컥 꿈이 없어진 청년.


 

알고 경험해야 글이 나온다

글을 참 못 썼다. A4 용지 1장 채우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던지. 머릿속에는 아이디어와 기발한 생각이 많은 것 같은데 막상 글로 옮기면 5줄이 안 넘는다. 억지로 글을 쓰다 보면 어느덧 논설문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르바이트로 보습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칠 때, 같은 보습학원의 나이 지긋한 문학 선생님께 상담을 했다.

“제가 머릿속에 생각은 많은데 막상 글을 쓰면 분량이 너무 적습니다. 솔직히 머릿속에 이런저런 멋진 아이디어가 넘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솟아오르는 것 같은데 왜 글은 5줄을 못 넘을까요?”
“승수씨, 머릿속에 쓸거리가 많은데 글이 안 나오는 것이 아니에요. 승수씨가 글로 쓸 수 있는 딱 그만큼만 머릿속에 들어있는 겁니다.”

그렇다. 독서실에서 모의고사 문제집 펴놓고 학력고사 체험 시뮬레이션이나 해온 청년의 삶에서 그 무슨 글이 나오겠는가. 19살에 이미 인생의 꿈을 이룬 덕분에, 꿈이 없어진 청년에게 무슨 조화로 글이 솟아나올 수 있을까. 내 머릿속에는 쓸 거리가 없는데, 학력고사 맞춤형 지식 더미(Dummy)를 쓸거리로 착각하며 살았구나. 내 삶에서 글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2006년에 직장을 때려치우기 시작하면서였다.


2001년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 삶에서 처음으로 방학이 없어졌다. 대학 시절의 꽃은 방학이었다. 6월 중순 이후로는 방학 모드로 들어가 7월과 8월을 내리 논다. 9월에 개강하지만 사실상 9월 중순까지는 방학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따져보면 대략 세 달 정도의 기간인데, 잘 알다시피 이런 것이 하나 더 있다, 겨울방학. 그런데 이것이 송두리째 날아갔다.


직장에는 여름휴가라고 불리는 어설픈 방학의 흔적만 존재했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하는 일이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정말 재미없었다. 오죽하면 밤에 꿈꾸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을까. 한창 스릴 넘치는 꿈을 꾸다가 알람 소리에 느닷없이 깨 출근하는 심정을 아는가? 인생을 허비하는 느낌이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과연 이렇게 살아야 하나.


자연스레 직장생활과는 다른 별개의 삶을 꾸리고 있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보적인 정치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정말 열심히 활동했다. 직장 마치고 당 사무실로 다시 출근(?)해서 당원들에게 연락하고 당 사업과 관련된 일을 처리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의 21세기 사회주의를 연구하는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을 만들어 연구 성과를 지속적으로 축적해나갔다.


흘러가는 시간 중에 ‘살아지는’ 삶이 점점 줄어들고 ‘살아내는’ 삶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쓸거리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갈수록 ‘살아내는’ 삶이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회사를 왕복하는, ‘살아지는’ 삶은 의미를 찾기 힘들게 됐다. 결국 2006년에 회사를 그만뒀다. 같은 해 12월에 첫 책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가 출간됐다. 당시 은행잔고는 600만 원이었다.

 


경험에서 나오는 글은 다르다

그렇다! 글의 재료는 ‘경험’이다. 고로 글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경험의 부재에 있다. 2012년 2월의 어느 날, 한겨레신문을 읽다가 우연히 소름이 끼치는 표현을 발견했다. 남극을 묘사한 내용인데 이 소름끼치는 표현을 사용한 사람은 베스트셀러를 쓴 소설가도, 국문학 교수도, 단련된 기자도 아니었다.


김예동 극지연구소 남극대륙기지건설단장이 바로 문제의 주인공. 남극 제2기지 건설 사령관 격인 김 단장은 1983년 한국인 최초로 남극을 탐험한 뒤 30여 년 동안 한길을 걸어온 한국 남극 연구사의 산증인이다. 이 분이 한겨레신문 기자에게 ‘처음 남극에 도착했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


흰색과 파란색 두 가지밖에 없었어요. 창문도 없는 C-130 미군 수송기를 타고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출발해 7시간 반을 날아서 내리니까 눈부신 세계가 펼쳐졌는데 하늘만 파란색이고 그 아래는 전부 흰색이었어요. 다른 색은 어디에도 없었지요.


일반인이 남극을 찍은 사진을 보며 세 줄 정도로 글을 쓰면? ‘저기… 빙하가 보입니다. 앗! 펭귄도 있네요. 밤에는 오로라가 장관이네요…’ 정도의 글이 나온다. 절대로 ‘두 가지 색밖에 없는 곳’이라는 표현은 쓸 수가 없다. 왜일까? 사진 안은 남극이지만 사진 밖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김예동 단장이 문학가도 아닌데 이런 엄청난 표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그가 남극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직접 남극에 가서 보니 어디로 눈을 돌려도 색깔이 두 가지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는 자신이 직접 본 것을 그대로 얘기했을 뿐이다. 내가 글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도 진정 원하는 삶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녹색평론》이라는 격월간 잡지가 있다. 생태적인 삶과 대안에 관한 진지한 글로 가득 찬 매우 뜻 깊은 잡지다. 인연이 닿아서 몇 번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이 잡지에 실린 글을 읽다가 무척 인상을 받은 구절을 소개한다.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우화 하나를 가지고 말머리를 꺼내볼까 합니다. 어떤 남자가 고요한 바닷가에 앉아서 평화롭게 낚시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멈춰서서 하는 말이, 왜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낚싯대 하나 걸쳐놓고 고기를 잡고 있느냐고 그래요. 이 이야기 여러분들 대개 아시죠? 알고 계시겠지만, 이야기 진행상 필요할 것 같아서 되풀이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낚시질하던 사람이 묻습니다. 그러니까 지나가던 사람이 그물을 쓰셔야지요 하고 말합니다. 그물을 쓰면 한꺼번에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지 않느냐고요. 그래서 그 낚시꾼이 그렇게 고기를 많이 잡아서 뭐가 좋으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그걸 팔아서 돈을 많이 벌어 큰 배를 살 수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원양어업을 본격적으로 할 수도 있을 거고.

낚시하던 사람이 또 묻습니다. 원양어업을 해서 뭐 할 건데요? 행인이 말합니다. 그러면 큰 수산회사 사장도 되고, 회장도 될 수 있다고. 그러자 또 낚시꾼이 묻습니다. 큰 회사 회장님이 되면 뭐가 좋은데요? 아니, 나중에 은퇴해서 편하게 살 수 있지 않느냐. 어떻게 편하게 사는데? 고요한 바닷가에 나와서 낚시질을 하면서 지낼 수 있지 않겠느냐. (웃음) 내가 바로 지금 그러고 있지 않느냐.

이 이야기를 읽고 마치 큰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면서도 사실은 행복을 미루고 있는 게 아닐까? 세계 역사에서 부와 권력,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틀어쥔 사람을 꼽으라면 분명 진시황도 들어갈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위세 당당했던 진시황이 그렇게 찾아 헤맸던 것이 무엇인가? 바로 불로초다.


그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도 지나가는 ‘시간’을 부여잡으려고 발버둥 친 것 아니겠는가.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시간’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돈에 시간을 팔지 않게 됐을 때 글이 나오기 시작한다.


 

당신은 책이 나올 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호주의 브로니 웨어라는 호스피스 간호사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며 그들이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정리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그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언급한 후회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이었다. 이 책의 국내 번역서의 제목 또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이다.


참고로 내 은행잔고는 여전히 600만 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 저자가 되고 싶어 하는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은 책이 나올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글은 ‘살아지는’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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