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그들이 없는 언론" 폭압에 맞선 순진한 이들의 싸움
‘사익에 충실한 사람들은 성실하고 집요하며 뻔뻔하고 잔인하다. 반면 대의를 중시하고 공익에 충실한 사람들은 순진하고 여리다. 약간 게으르고 안일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는 내내 머리에 맴돌았던 생각이다. 예컨대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그의 언론특보 출신인 구본홍이 YTN 사장으로 왔을 때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섰던 현덕수(해직) 노조위원장은 영화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참 순진하다. 하지만 여기까진 대의에 충실한 말이다. 차기 노조 집행부가 구본홍 사장과 타협하려 하자 이후 노조위원장이 되는 노종면(해직)은 당시 집행부를 설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털어놓는다.
위험하지 않다고? 순진을 넘어 안일한 인식이다. 그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고 냉정한 인간인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막상 해고를 당한 후 현덕수의 말이다.
조승호(해직)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순진한 생각은 배석규가 전무로 왔을 때도 이어진다.
그러나 이 기대는 곧바로 배신당한다. 다음날 전무실로 찾아간 현덕수는 이렇게 배석규에게 따진다.
그러자 배석규는 차가운 표정으로 짧게 내뱉는다.
그들은 이렇게 뻔뻔하다. 그 이후에도 노종면은 여전히 그들의 ‘선의’를 이해하려 애쓴다. 착해도 너무 착해빠졌다.
설사 이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에게 ‘인간적인 미안함’까지 느낄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구본홍에 이어 사장 자리를 꿰어찬 배석규는 해직자들의 노조사무실 출입까지 물리적으로 막는다. 퇴근하는 그에게 조합원들이 몰려가 항의한다.
출발하려는 승용차 앞에 드러누워 “얘기 좀 합시다”는 절규를 끝내 외면하는 배석규. 이렇게 그들은 권력에 충성하여 사익을 취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다. 노종면의 순진함과 착함은 그래도 이어진다. 2009년 11월 6명 전원이 해고 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한 후 노종면은 이렇게 말한다.
항소할 가능성? 여전히 기대를 버리지 않은 말투다. 웬걸? 사측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항소한다. 물론 노조 출입도 여전히 금지한다. 이처럼 권력과 그 하수인들은 상상 이상으로 폭압적이었고, 훨씬 집요했다. 그들은 물에 빠진 개를 몽둥이로 때리라는 루쉰의 교훈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건 MBC 김재철 사장도 역시 똑같았다. 그는 “관제 사장 필요 없다”는 조합원들의 외침에 “여러분이 정치투쟁하고 있는 겁니다. 정치투쟁에 이용당하고 있는 거예요”라며 당당하게 받아친다. 그리곤 이런 뻔뻔스런 거짓말을 태연히 늘어놓는다.
그 후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MBC 사장을 임명할 수 있는 기구) 이사장이 김재철 사장에게 ‘좌파 척결 제대로 하라’며 조인트를 깠다는 인터뷰가 나왔다. 그러자 김재철은 이를 부인하며 김우룡 이사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후 한 달이 지난 후 기자회견에서 왜 아직 고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정말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그래 놓고 김우룡에 대한 고소 대신 노동조합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남발한다. 그들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앞서 현덕수는 언론인으로서 ‘부끄러워’ 싸움에 나섰다고 말했지만, 구본홍, 배석규, 김재철에게 부끄러움 따윈 없다.
그렇게 하여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은 해고상태가 1년, 2년, 1200일, 2000일을 넘어가니 두렵다. 잊히는 것이다.
영화는 전반부에서 YTN 상황에 초점을 맞추다 중반에 접어들면서 MBC를 비춘다. 그렇게 하나하나 해고자가 늘어 20여 명이 방송사에서 쫓겨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울러 김재철 사장이 잠적해 서울의 특급호텔을 전전하며 숙박비로만 1억 5,000만 원을 탕진하는 이야기, 그 와중에도 자신의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수배 전단을 붙인 노조 간부들을 알뜰하게 챙겨 고소·고발하는 김재철을 보여준다.
그런 과정 속에서 저널리즘은 철저히 망가지고 국민들은 방송에 등을 돌린다. 이 상황에서 발생한 세월호 사건! 2014년 4월 16일.
다음날인 17일 거의 구조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에서 KBS 여기자가 진도 팽목항에서 생방송 리포트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순간 생방송을 통해 누군가가 “야 씨발년아, 거짓말하지 마”라는 욕설이 들려온다. 그래도 기자는 당황하지 않고 꿋꿋이 대본을 읽는다.(역시 사익에 충실하면 뻔뻔하다.)
이때도 욕설은 계속된다. “구조대들이 도착할 이곳 진도 팽목항에는 구조…”까지 하다가 결국 리포트는 중단되고 화면은 스튜디오로 전환된다.
이렇게 영화는 그냥, 7년 동안 있었던 주요 장면들을 드라이하게 보여준다. 나레이터도 없고 그냥 보여줄 뿐이다. 아! 해설은 있다. 그것도 등장인물의 말을 통해서다.
대체로 다큐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 또한 ‘재미’를 기대하고 봐선 안 된다. 별로 친절하지도 않다. 예컨대 타이틀 장면에서 바닷가의 파도와 모자 쓴 한 남자 모습이 나오는데, 그 남자가 누군지, 왜 그가 거기에 바지를 걷고 서 있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이런 맥락 없는 장면이 군데군데 나온다. 거칠다.
그러나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이 보여주듯, 대한민국이 왜 이리 망가졌는지, 사익 집단이 정권을 잡으면 왜 방송부터 장악하려 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꼭 봐둬야 할 영화다. 다큐의 소임 중 하나인 ‘기록’에 충실한 영화다. 기록은 역사다.
그래도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이 질기게 싸울 때 결국엔 이기는 역사를 남길 거라고 이 영화는 복선을 깐다.
원문: 지역에서 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