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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예린은 정말 초심을 잃은 걸까?

조회수 2017. 4. 22. 15: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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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소비하고 있으니, 당신은 비위를 맞춰야 한다."

3월 31일, 용산에서 열린 ‘여자친구’ 팬사인회에서 그룹 멤버 예린은 안경 몰카를 이용해 자신을 찍은 남성 팬을 찾아냈고 회사 측에 이를 알렸다. 이후 그 남성은 자리를 떴다. 화를 낼만 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린은 화를 내는 대신 그 남성 팬과의 ‘손깍지 이벤트’까지 마친 뒤 내보냈다.


하지만 일각에서 이 상황을 두고 예린에게 비난을 가한다. 현장에서 굳이 몰카를 확인해서 해당 남성에게 무안함을 주었다는 이유다.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촬영이 허가되었다고 하지만 몰래카메라 장비로 누군가를 찍어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일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가?

‘초심’?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버젓이 벌어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보자. 백화점에서는 자기 성에 차지 않는 일이 생기면 종종 종업원의 무릎을 꿇린다. 어떤 높으신 분은 자기 머릿속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멈춰 세운 일도 있었다. 


이런 상상 이상의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각종 소매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감히 자신이 상상하기도 힘든 이유로 손님의 비난을 받고 난 다음에도 어쨌든 사과한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비인간적인 상황에서도 ‘나의 감정’ 보다는 ‘손님의 감정’을 우선하며, 그렇게 사회에서 요구하는 친절함을 유지하도록 교육받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얼마 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어느 젊은 콜센터 직원의 자살을 보도했다. 보통 서비스 해지를 위해 콜센터에 전화해도 바로 해지할 수 없다. 전화는 해지방어부서로 돌려진다.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어 해지를 막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렇게 몇 번 전화가 돌다 보면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들도 화가 난다. 덕분에, 해지방어부서는 전화를 받을 때부터 수화기 너머 고객이 욕을 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잦다. 세상을 등진 직원은 그 해지방어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출처: SBS
17살이 감당하기엔 너무 어려운 무게였다.

나도 예전에 콜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는 수화기 너머로 욕을 먹는 게 아주 일상적인 ‘업무’ 중 하나였다. 어느 날은 “너를 죽이러 갈 테니 주소를 부르라. 칼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어쩜 그럴 말을 할 수 있냐고? 얼굴도 안 보이겠다, 화도 났겠다, 더군다나 직원에게 쌍욕을 해도 돌아오는 페널티는 없는데,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나에게 이런 상황을 피해갈 수 있을 만한 아무런 방법도 제시해주지 않았다. 속에서 무언가 끓고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다. 하지만 그때마다 미친 듯이 목소리 톤을 높이며 고객을 응대했다. 분노에 가득 찬 친절을 보이며 나를 파괴하는 게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불쾌한 일을 당했음에도 미소로 응대하지 않았다고 욕을 먹는 ‘여자친구’ 예린을 보면서 나는 소비자와 감정 노동자의 관계를 떠올렸다. 내가 당신을 소비하고 있으니 당신은 나의 비위를 맞추라. 당신에게 ‘밥벌이’를 제공하는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 주변의 일상에서 너무 쉽게 들을 수 있는 논리다.

출처: SBS
누군가의 해소가 끝나면 또 누군가 고통받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기업은 소비자들에게 물건만 판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위에서 군림할 수 있다는 희열도 같이 팔았다. 어차피 그건 기업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는 일이었다. 감정노동에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 안 되는 시급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비자는 왕이 되었고, 그것에 대한 감당은 모두 노동자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 아주 잠깐 소비자로서 군림했던 다수의 사람은 일터로 되돌아가면 다시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다. 월급을 받는다는 이유로 온갖 부당한 일들을 감내해야 한다. 돈을 매개로 이어진 온갖 갑질들의 향연 속에서 서로 간 소모해야 하는 감정의 양은 점점 늘어만 간다. 끔찍한 악순환이자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과잉 친절과 과잉 분노 속에서 결국 힘든 것은 고만고만하게 없이 사는 우리일 텐데 말이다.

‘초심’을 잃었다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원문: Twenties Timeline / 필자: 백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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