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용손, 한국 용의 특징은 무엇일까?

조회수 2017. 3. 29.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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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구름과 번개를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하는 힘을 가졌다고 묘사하는 이유

괴물 백과 사전에서 많은 괴물을 다루었습니다만, 조선 초기 책인 ‘동국여지승람’에서 당시 조사 되었던 지역별 설화, 전설을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괴물은 단연 ‘용’이었습니다. 요즘도 어지간한 우리나라 산에는 용이 올라갔다는 계곡이라든가, 용이 나왔다는 구멍, 용이 사는 연못 같은 것들은 하나씩 전설로 내려오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운룡도

중국 고전에서는 예로부터 용이 임금의 상징이라든가, 용이 승천한다든가, 용이 비를 내리게 한다든가, 아주 옛날에 용을 길들이던 사람이 있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많이 나옵니다. 그 영향 때문인지 용과 비에 관한 전설들은 한국화되어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용이 물속에 사는 괴물로서 구름과 번개를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하는 힘이 있어서 기우제를 지낸다든가 하는 사례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나옵니다. 용과 호랑이를 라이벌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는지, 호랑이 머리를 용이 산다는 물속에 집어넣으면 비가 내린다는 미신을 조선 조정에서도 꽤 믿었습니다.


그 외에도 ‘동명왕편(東明王篇)’에 나오는 고구려 주몽의 친아버지 격인 해모수가 다섯 마리 용이 이끄는 수레, 즉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라든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새끼 용 여러 마리를 엮어 만든 허리띠가 있어서 거기에 물을 닿게 하면 진짜 용으로 변해 날아 가 버린다든가 하는 형태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거타지 설화에 나오는 용 두 마리가 배를 받치고 물을 건너가서 바다를 아주 잘 지나갔다는 이야기나, 의상 설화에 나오는 의상을 사랑한 선묘라는 여자가 용으로 변해 바다를 건너가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 등도 나옵니다. 이것은 불교 계통 설화에서 용이 이끄는 배를 타고 극락세계로 가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 등등에서 영향을 받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불교 계통 설화에는 인도 신화의 ‘나가(Naga)’를 ‘용’으로 번역한 사례가 많아서 불교 전래 이전 중국 고전 속의 용과는 또 다른 모습이 많이 나타나는 편입니다.

The Thirty Seven Nats에서 발췌한, 미얀마 사람들이 그린 불교계 설화 속 나가 그림

한국의 옛 그림을 보면 용의 모습은 큰 뱀과 비슷한 괴물인데 그러면서도 다리가 넷 달려 있고 사슴과 같은 뿔이 있으며 입은 악어처럼 묘사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림에서는 날개는 없지만 보통 날개 위치에 신비로운 기운 같은 것을 묘사하는 경우가 자주 보입니다. 


용의 색깔은 신라말 이후 대 유행한 풍수설 때문에 ‘좌청룡 우백호’라는 말 대로 청룡, 즉 푸른 용 그림이 적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실제 설화로 내려오는 이야기에서는 예전 설화일수록 청룡에 관한 이야기는 오히려 적은 편입니다. 설화 속에는 그보다는 백룡이나 흑룡이 많은 편인데 이것은 우리나라 바다에서 종종 발생하는 회오리바람을 보고 용이라고 착각했던 것 때문에 회오리바람의 색깔인 흰색이나 검은색 용의 이야기가 남게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동해에서 종종 관측되는 회오리바람 현상은 지금까지도 ‘용오름’이라고 부릅니다.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의 청룡

(중국, 한국 모두 용의 다리 길이가 과거로 갈수록 길게 묘사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뱀에 가깝게 다리를 짧게 그리는 듯합니다. 불교 전래 이전에 용의 모습은 위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 이상으로 다리가 상당히 긴 것이 많았던 것을 보면, 이 역시 불교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중국 전설에는 용이 아홉 가지 자식을 낳는데 각각 성향과 이름이 있는 다양한 괴물이라는 ‘용생구자(龍生九子)’ 류의 이야기도 있는데 한국에도 전래 되기는 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나 설화는 많지 않은 편입니다.


대신 한때 굉장히 널리 퍼진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의외로 한국 전설을 활용한 이야기에서 그만큼은 잘 쓰이지 않는 용에 관한 이야기로 저는 ‘용손’을 꼽습니다. 용손은 용의 자손인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자일 때는 ‘용녀’라는 말도 많이 씁니다. ‘용녀’는 용이 사람 모습으로 변신한 것을 일컫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슷하게 바닷속을 다스리는 ‘용왕’은 용의 모습을 어느 정도 지닌 사람이라든가 사람처럼 행동하는 용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용손, 특히 용녀 이야기는 중국에서도 소설, 극으로 자주 나오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한국에서 용손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많이 퍼진 것은 다름 아닌 고려 태조 왕건이 바로 용왕의 자손이라는 이야기가 고려 시대에 널리 퍼졌기 때문입니다.


‘고려사’ 등에는 왕건의 할머니인 원창왕후가 용왕의 딸, 즉 용녀라는 전설이 있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왕건의 선조는 바다에서 활발히 무역하던 사람들이었으니 아마도 처음에는 당나라에서 돌았던 용녀에 대한 소설, 설화의 영향도 받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후 한국에서 이 이야기는 더 퍼져 나가면서 왕건의 후예는 몸에 비늘이 나 있다든가, 고려 우왕이 죽을 때 자신이 왕건의 정통 자손이라는 증표로 몸의 용 비늘을 보여 주었다든가 하는 전설이 조선 시대에도 ‘어우야담’ ‘송와잡설’등에 기록되어 널리 돌았습니다. 약간 다르지만 고려 시대의 이의민이 자신이 ‘용손’이라고 하면서 새로운 나라를 세울 생각을 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고려사절요’ 등에 나옵니다.

고려 수창궁 터에 남아 있는 용머리 조각

이 이외에도 고려 시대 이규보의 시 ‘박연폭포’ 및 그 이후 오래도록 이어진 박연폭포 전설에는 옛날 박진사라는 사람이 박연 폭포 연못가에서 피리를 불었는데 그것이 너무 멋져서, 용녀가 자기 원래 남편을 죽여 버리고 나와서는 박진사를 취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니 용과 사람의 중간 형태인, 용손, 용녀 전설은 비교적 흔한 이야기였습니다. 

한국민속신앙사전 “용신” 항목에서 발췌한 무신도

이런 부류의 이야기가 유행한 한 이유로 저는 불교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불교 경전에는 불교의 이치가 너무나 훌륭한 나머지 물속의 괴물인 용왕마저도 감복해서 불교에 귀의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꽤 있습니다. 그러니 그 때문에 불교가 번창하던 삼국시대 이후로 용의 임금인 용왕이 마치 사람처럼 표현된 영향을 받지 않았겠나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중도 불화 중 용왕을 묘사한 부분 발췌

이런 이야기 속에 나오는 용손의 특징으로는 앞서 언급한 몸 깊숙한 곳에 용 비늘이 있다는 것 이외에 용으로 변신할 수 있다든가, 물속에서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든가 하는 것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특히 용궁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을 데려가는 형태의 이야기에서는 본인뿐 아니라 동행하는 사람도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는 힘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특색 있는 것으로는 앞서 언급한 “고려사”에 실린 원창왕후의 이야기가 역시 눈에 뜨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사람과 결혼한 원창왕후, 즉 용녀는 “자신이 용궁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절대 보면 안 된다”고 약속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몰래 엿볼 때 황룡의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이 드러나고 그 사실을 알자 남편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소재들을 그대로 살려서 정체를 숨기고 사는 신비한 용손 이야기를 한국 배경으로 다시 만들어 봐도 그럴듯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 초기에 고려 왕 씨를 다 죽인다고 했던 일 이후로 용손이 대대로 현대까지 정체를 숨기고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해 사고 등이 생기는 바람에 이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을 구한다고 능력을 발휘한다는 식의 이야기 말입니다. 아니라면 용손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잠수사나 수영 선수로 성공하는 이야기도 저는 생각해 봅니다.


원문: 곽재식의 옛날 이야기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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