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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2017.03.20. 작성

한국의 원고료가 이 모양 이 꼴인 이유

적은 원고료에도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널려 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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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를 둘러싼 언쟁이 있었다. 정당한 원고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을 놓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모든 말을 다 본 게 아니라 정확한 주장이나 진의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이 글에서는 그저 ‘원고료’에 대한 이런저런 경험과 생각을 끄적거려 보자. 그러니까, 왜 외주 기고가들의 원고료가 이 모양 이 꼴인가 말이다.


 

한국의 원고료는 얼마인가?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는 아마도 일주일에 칼럼 하나 정도를 쓰고, 그 수입으로 맨해튼에 살고 가끔 명품도 구입하는 것 같다. 단언컨대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글쓰기 강의를 할 때마다 말해주는 건, 한국에서 프리랜서로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있기야 있다. 이지성 등등. 하지만 어디에서나 상위 1%는 척박한 환경과 시스템에서도 호의호식하며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건 늘 예외니까 치워버리고.

한국의 원고료는 천차만별이다.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다. 네임 밸류가 있으면, 그 필자의 글이 자신의 매체에 대단히 도움이 된다면 막대한 돈을 주고라도 끌어온다. 그게 자유경쟁의 원칙이다. 애초에 글을 쓰는 노동의 정도를 정확하게 재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는 원고지 10매를 한 시간에 쓰고, 누구는 5시간에 쓴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글은, 보통 쓰는 글의 몇 배가 걸릴 수도 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일단 결과물로 추정할 수밖에. 그래서 대충 원고지 1매당 얼마 정도의 가격이 매겨진다.


까놓고 말한다면 한국의 원고료는 평균 1만 원이다. 이건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비슷하다. 메이저 매체는 평균가보다 2, 3배 정도 많이 준다. 마이너 매체, 인터넷 매체는 그 절반이나 심하면 1/3, 1/4이다. 그러니까 적게는 원고지 장당 2,000-3,000원부터 많게는 3만 원 정도까지 있다. 물론 그 이상도 있고, 무료도 있다.


원고지 10매가 안 되는 칼럼에 50만 원, 100만 원 이상을 주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필자가 대단히 지명도가 높거나 다른 종류의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을 때다. 예전 문화일보에서 김용옥을 대기자로 모셔갈 때 수천만 원을 줬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불가능하다. 짧은 칼럼 하나에 수십만 원을 받고 싶다면 일단 다른 영역에서 전문성과 명성을 쌓고 나서 부업으로 글을 쓰는 게 낫다. 그 경우도 극히 희박하지만. 그러니까 보통의 필자를 이야기해보자. 보통 받는 원고료가 어떻게 되는지.


‘씨네21’을 두 번째 그만두고 오로지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지를 실험해본 적이 있다. 마침 그때는 영화 매체 호황기였다. 당시 주마다 쓰는 원고 5개, 격주 마감이 2개, 월마다 마감이 5-6개 정도를 고정으로 쓰고 그 외에 들어오는 원고를 추가로 썼다. 달마다 적게는 원고지 300매에서 많을 때는 600매 정도를 썼다.


거의 수익이 안 남는 책도 쓰고, 인터넷에도 쓰고, 가끔 ‘재능 기부’도 하고 그러면 한 달 수입이 평균 300-400만 원이었다. 그렇게 2년 정도 달리고 나서 드는 생각은 ‘원고를 써서 먹고 살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평생은 못 살겠다’였다. 그래서 다시 회사에 들어갔다. 이후 직장인과 프리랜서를 반복해 가며 살고 있다.

그야말로 누르면 글이 나오는 글자판기였다(...)

언론에 외주가 필요한 이유 : 전문성과 지명도 사이


개인적으로만 따진다면, 평론가나 자유기고가로 살기에는 지금의 환경이 더 척박하다. 일단 문화 분야로만 좁혀본다면 글을 쓸 수 있는 매체가 별로 없다. 영화잡지는 거의 망했고, 문화 전문지도 없다. 각 분야의 전문지 정도다. 일간지, 월간지 등은 대체로 기자들이 대부분의 글을 쓴다. 관리하기 쉽고 일정 퀄리티를 보장한다는 이점도 있지만, 요즘처럼 각 분야가 전문화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넘치는 상황에서는 ‘전문성’의 부족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외국처럼 에디터와 라이터를 분리시키면서, 외부 필자들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면 좋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예전 모 신문이 창간하면서 1년 정도 문화면을 외주로 준 적이 있었다. 그 신문은 특정 분야를 타깃으로 하고 만든 것이니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의 불만이 심해졌다. 소위 출입처와 취재원 등을 ‘관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광고도 받고 적당히 대접도 받으니까. 그래서 외주는 사라졌다.


한국에는 외국과 달리 르포를 쓰는 필자들이 살아남기가 힘들다. 외국에서는 반대로 회사에 속한 기자가 계속해서 하나의 주제에만 매달리기가 쉽지 않기에,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필자들의 글을 많이 받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일단 매체에서는 단순 원고료만이 아니라 경비를 지급해야 한다. 몇 개월 심하게는 몇 년씩 걸리는 취재와 인터뷰에 달랑 원고료만 준다면 아무도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논픽션 시장이 있어야 한다. 외국에서는 전기를 포함한 논픽션이 많이 출간되고, 많이 팔린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에는 이 분야 시장이 개척이 덜 된 상태다. 책을 내서 초판, 아니 5,000부, 아니 1만 부가 팔려도 생계를 유지할 정도가 되지 못한다. 이건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고 그냥 순수한 원고료 문제로 돌아가 보자.


매체를 만들면 원고료는 늘 시비의 대상이다. 고료가 정해져 있지만, 그건 또 필자들마다 차등이 있다. 모 영화지의 경우도 최하는 5,000-7,000원 정도다. 그 고료를 받고 왜 쓰냐고 묻는다면, 이름을 알리는 게 중요하니까. 라디오에 30분 나가서 이야기를 해도 받는 건 10만 원이 채 안 된다. 그래도 나가는 건 방송을 타서 지명도를 올릴 수 있으니까. 결국 이것도 권력관계다. 유명 필자라면 자신이 매체를 고를 수도 있고, 때로 고료와 출연료도 협상이 가능하다. 유명하지 않다면 주는 대로 써야 한다. 안 쓰거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더 많은 원고료를 주고라도 우리 매체에 쓰게 해야 할 필자는 누구인가’이다. 일단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 필자다. 그 필자가 글을 쓰면 몇만 부 정도가 더 팔리거나 수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될 수 있는 정도. 한국에서 이 정도라면 김용옥 정도일까? 매체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우리 매체에 이런 필자가 글을 쓰고 있습니다’로 홍보할 정도의 필자면 가능하다. 김훈이나 뭐 하여튼 각자가 생각하는 명사나 각 분야의 스승들이 있겠고.

뭐, 이분도 지명도는 꽤 올라간 것 같다(...)

매체의 지향점은 없고, 친한 사람에게 글을 주는 언론의 자충수 


일반적으로는 우리 매체에 꼭 필요한 글을 쓰는 필자, 우리가 원하는 글을 정확하게 잘 써 주는 필자다.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일단 매체의 지향점이 명확해야 한다. 에디터쉽이 확고하여 독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들에게 어떤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는지 늘 염두에 두고 필자를 선택한다. 필자마다 잘 쓰는 글도 있고, 모르는 분야도 있고,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게 있으니까. 반드시 필요한 필자라면 그들에게는 때로 두 배의 원고료를 주고라도 끌어 들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 에디터쉽이 확고한 매체가 그다지 없다는 현실이다. 그냥 이데올로기 지향성이 같으면 적당히 실어주고 관계가 돈독하면 주요 필자로 기용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 그러다 보니 필자들도 원고의 퀄리티를 높이려는 노력보다는 ‘관계 쌓기’에 더욱 치중한다. 술자리, 선물, 이런저런 친목 도모 등 할 수 있는 건 많이 있다. 모 영화 평론가의 경우는 칸 영화제에 갔다가, 모 일간지 기자가 숙소를 잡지 못했다는 말을 듣자 자신의 숙소를 기꺼이 내어주고 자신은 모 영화지 숙소에 끼워 잤다는 말도 있었다.


신문과 방송 등에 나오는 코멘트가 헛소리인 경우가 많은 건, 그들의 전문성을 정확하게 고려하지 않고 친한 누구 혹은 당장 연락이 되는 누구한테 대충 말을 듣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건 결국 기자들이 각 분야의 전문가, 필자의 전문성, 장단점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고.


횡설수설했는데 조금 정리한다면 이렇다. 원고료가 오르지 않는 이유, 현실화되지 않는 이유는 ‘아무나 써도 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적은 원고료에도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널려 있다는 생각. 즉 글에 대한 정확한 분별력과 매체의 지향성이 희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고료는 언제라도 줄일 수 있고, 줄이는 게 좋다는 인식. 적정 원고료를 지급해야만 글의 퀄리티도 좋아지고 매체도 좋아진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 그래서 회사 사정이 좀 안 좋아지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외고 줄이기’가 된다.

‘원고료’라는 건 늘 애매하다. 얼마 정도가 좋으냐고 물으면 당연히 많을수록 좋다고 말할 수밖에. 하지만 매체에 실리는 허접한 글들을 보고 있으면 복잡해진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10건 이상을 쓰는 척박한 현실이라는 건 알지만,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툭툭 던져대는 기사나 기본도 안 되어 있는 기사를 보면 ‘이러고도 월급 받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매체의 사정도 너무나 제각각이고 천양지차다. 그러니 늘 원점이다. 주는 대로 받거나, 심하다 싶으면 협상을 하고 더 받든가, 아니면 안 쓰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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