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 지연, 인맥이라는 그들만의 리그

조회수 2017. 3. 17. 11: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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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창업한 한 '지잡대 출신'의 이야기
출처: linkedin

스타트업을 하면서 피부로 느끼는 부분 중에 학연, 지연은 빼놓을 수가 없다. 재미있게도 스타트업 역시 학연, 지연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명확하게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다.



1. 학연


젊은 친구들은 흔히들 말하는 일류대학과 상위권 대학을 제외한 대학을 '잡대', 잡대 중에서 지방에 있는 대학교를 '지잡대'라고 부른다. 나는 이렇게 '지잡대'라고 불리는 학교 중 한 곳을 졸업했다.


첫 직장에서 지금의 스타트업까지, 14년 동안 학연은 나를 따라다녔던 그리고 앞으로도 따라다닐 꼬리표다. 부정할 수 없고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겪은 현실은 참으로도 냉정했지만, 이제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단단해져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지잡대의 뜻?

학창 시절 머리를 믿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전교에서 꽤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했다. 중학교 시절 부모님께서는 엄청나게 비싼 돈이 들어가는 특목고 학원을 보내 주셨지만 머리만 믿고 자만심에 빠져있던 나는 특목고로 진학하지 못했다. 과학고, 외고 아니면 어때? 인문계 가서 좋은 대학 가면 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도 했었고.


고등학교 진학 후 흔히들 말하는 '일진' 친구들과 친해져서 술, 담배를 배우고 놀기 시작했다. 그에 비례해 성적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서 가면서도 내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졸업 후 성적에 맞추어 지방대학교를 가게 되었다. 직장생활 하며 경력이라는 장점을 살리고 학벌이라는 단점을 보완하면서 올라갔지만, 새로 바닥부터 시작한 스타트업에서는 아니었다.


어느 사회나 조직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스타트업 바닥 역시 학벌 위주로 돌아간다. SKY와 카이스트 출신들이 강세이고 성과 또한 역시 통계적으로 가장 많이 내고 있다. 한국만 이런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보았던 모습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피차 해외도 마찬가지다.
학벌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런 미사여구로 강의나 책에서 학생들을 위로한다. 하지만 현업에서 학벌은 정말 중요하다. 그 이유는 '기회의 차이'에 있다. 똑같이 이력서를 내도 서류전형에서 걸러지고 승진에서 밀린다. 이렇게 상대적인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열심히 놀았을 때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들, 이들과 동일하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가 열심히 공부하겠는가? 반대로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사시를 패스하고 의사가 되었는데 똑같이 취급받는다면? 이보다 불공평한 게 어디 있을까?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자. 학벌을 보는 이유는, 그 사람의 성향이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인내하는 점을 확인하는 데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흔히 말하는 일류대학에 들어가 성취감을 맛본 사람과, 그저 그런 삶을 살면서 지방대학을 나온 사람은 스타트업에서 일을 할 때도 명확하게 차이가 난다.

부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부자를 비판한다.

이런 말이 있다. 본인이 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불평불만으로 자기 위안을 삼는 사람을 꼬집는 말이다. 물론 절대적인 기준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학벌 좋은 사람이 성취감을 맛보았던 경험이 있고, 그래서 조직생활 내 목표가 생겼을 때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저 그런 삶에 만족하며 지내온 사람은 조직 내에서도 평범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격차는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다가 시간이 지난 후 연봉이 삭감되거나 후배들에게 밀려 명예퇴직 1순위가 된 후에야 지나온 삶을 후회한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학창시절 공부를 안 한 후회를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다.


40살 정도의 차장, 부장급의 연차가 되어서 연봉은 올랐지만, 업무성과는 나오지 않아 빠르게 밀려나는 모습을 직장에서 많이 봐왔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로 올라갈수록 회사 내 경쟁은 치열해진다.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나이 문제로 명예퇴직을 당했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실력이 있다면 이직이 가능할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합리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어느 조직이건 사원보다 대리가 적고, 대리보다 과장이 적고 부장이 적다. 그럼 나머지 사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꼼꼼하게 따져가면서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부분이다.


게다가 명문대학교 출신들은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일을 잘한다. 나도 동료나 선후배로 SKY 출신 또는 아이비리그 출신 친구들과도 일을 해봤는데, 이 친구들 10명 중 5명이 일을 잘한다면 지방대 출신들은 10명 중 1명이 일을 잘한다.


인정하고 싫다고? 같이 일할 기회조차 없는 게 현실이고, 기회가 주어져도 그 친구들의 노력 절반조차도 하지 않거나 포기한다. 그렇게 학벌 위주 사회를 비판하면서 노력은 하지 않는 부류를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



2. 지연


학연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지연 때문이다. 지연은 학연으로 연결된 사람 관계, 학창 시절 추억을 함께 나누었던 선후배와 동기들, 또는 이전 직장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밤을 지새우며 만들었던 끈끈한 인간관계로 만들어진 연결고리이다.


동문과 선후배들이 이미 업계에서 성과를 내었고 바닥을 다져놓은 상태에서 후배들이 들어온다는데 어찌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 실력도 없고 성과도 없는데 지연이 있어 좋은 대우를 받는 경우를 너무나도 조직생활에서 많이 보았다.


그래도 스타트업 바닥은 일반 회사들보다는 비교적 실력이나 성과로 판단하는 합리적인 바닥에 속한다. 하지만 그 스타트업들의 뚜껑을 막상 열어보면 좋은 대학교, 좋은 회사 출신의 멤버들이 가장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렇게 확률적으로 승률이 높기 때문에 VC 역시 좋은 배경의 출신 대표가 있는 스타트업을 선호한다.

스타트업 역시 학연과 지연으로 돌아간다

지금은 매우 훌륭하게 성장한 지방대 출신의 스타트업 대표님과 술자리에서 이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 있다. 똑같이 여러 사람을 뽑아봤는데, 확률상 명문대 친구들이 일을 잘하기 때문에 이를 져버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한 명을 잘 뽑아 놓으면 그의 유능한 지인들이 다시 회사로 유입되는 효과까지 있어, 결코 이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3. 인맥으로 들어가기


학연, 지연이 없으면 불리하다. 하지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찾을 수 있다.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거나 모임 등을 통해서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선배가 근무하는 VC 한번 만나서 투자받는 명문대 출신 대표가 아니라면, 20곳이든 30곳이든 쳐들어가서 어떻게든 미팅을 가지면 된다.


조그맣게라도 시작된 인맥이나 네트워크를 그냥 지나치지 말자. 그 네트워크 안에서 공감하고 교류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자. 물론 대표의 성향에 따라 이런 부분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네트워크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많은 실력의 향상을 가져왔다.


한국만 이렇다고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접한 학연, 지연 네트워크는 한국보다 더 심했다. 그들은 내 면전에서 어디 출신인지 대놓고 물어보았고, 그에 따른 반응도 즉각적으로 보여주었다. 실제로도 '페이팔 마피아'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고, '패밀리'라는 표현을 쓰는 데에도 거침이 없다.


나의 회사인 '마이쿤'의 기투자사 '본엔젤스'나 '500 Startups' 역시 투자한 스타트업들 간의 교류를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만하다. 스타트업 세미나에서 알게 되어 현재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는 'YEF'라는 모임에서도 훌륭하고 좋은 대표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서비스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스타트업 관련 교육이나 세미나 등은 자주 안 나가지만, 그래도 참석하는 자리에서는 만큼은 한 번이라도 더 인사를 나누고 한 번이라도 더 대화를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4. 나의 모습은?


올해 초 다른 대표님들의 소개로 흔히 말하는 명문대인 카이스트와 모교에서 하루 차이로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카이스트 방문을 했을 때 이 친구들은 어떻게 공부를 하나 궁금해서 도서관을 들렸다. 도서관은 꽉 차 있었고, 학교 내부도 공부하는 학생들로 방학 못지않게 붐비고 있었다.


하지만 모교의 도서관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방학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듯 교정도 한산했다. 학창 시절에도 이렇게 노력의 차이가 나는데, 졸업 후 대기업을 입사해서 똑같은 연봉을 받고 싶다고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에서도 소위 말하는 명문대, 좋은 회사 출신들로 구성된 팀원들과 멤버들이 많이 있다. 그런 친구들과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2배, 3배 아니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함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성공을 못 하는 건 지잡대여서가 아니라, 지잡대에서 만족하는 내 모습 때문이 아닐까?

학연, 지연 없이 성공을 한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들에 열광하며 관심을 가장 많이 가진다. 거봐, 그런 거 없이도 저렇게 되잖아. 자기 위안을 삼고, 나도 하면 되겠지, 생각과 다짐을 한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만이다. 생각과 다짐.


학연, 지연 없이 성공한 대표를 만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 대표님들이나 팀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피나는 노력과 고생, 생사의 갈림길을 수십 번 넘어서면서 이루어낸 성과들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그렇게 성장했음에도 멈추지 않고 일에 무섭게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멋진 스타트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6. 극복하기


"카이스트 출신의 OOO 대표가 설립한 스타트업"
"네이버 출신의 OOO 대표가 창업한 스타트업"

가장 많이 접하는 문구들이다. 스타트업이 홍보하기 위해서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대표의 출신 학교나 이전 직장은 그래서 초기 스타트업에 가장 많은 도움이 된다. 서로를 전혀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해당 이력은 가장 신뢰할 만한 데이터임이 스타트업 시장논리에서도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역시도 'LG전자 연구원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많이 썼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마 그런 이력이 없었다면 창업 후 초기 투자유치 역시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반대로 몇 주 전 잘 진행되던 시리즈 A 투자유치가 대표인 나의 출신학교가 별로라는 이유로 최종 결정에서 떨어졌다. 이때는 정말 팀원들한테 미안했다. 하지만 그 투자사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그리고 특이하게 우리 팀은 이런 일을 겪으면 더 파이팅을 한다.

다행스럽게도 대표의 이력이나 경력, 학연 지연은 그리 오래가는 일은 아니다. 주변에서 학연, 지연을 믿고 '묻지 마 투자'와 같은 말도 안 되는 투자를 했다가 실패하는 VC, 스타트업 이전의 학연, 지연으로 누리던 것을 내려놓지 못한 대표로 인해 죽은 스타트업을 너무나도 많이 봤다.


학연, 지연은 시작하기 좋은 위치일 뿐 결코 결과가 아니다. 이는 서비스나 제품의 객관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면 극복할 수 있다. 그래도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더욱 노력하는 것만이 이길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임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목수는 연장을 탓하면 안 되고, 선수는 구장을 탓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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