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최악의 성교육 TOP5

조회수 2016. 12. 14. 11: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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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교육은.. 참.. 좀 많이 그랬어..'

1. 생각해 보니 ‘그 영상’을 봤던 사람


성교육이라. 사실 기억이 흐릿하다. 십여 년 전 중학생 대상으로 규정된 성교육 시간이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일평생 살면서 인상에 남은 성교육은 두 번 정도다.


그중에서 조금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성교육 일화는 아마 중학교 1학년 때 경험했던 일 같다. 체육 시간이었는지, 담임선생님의 담당 과목(기술과 가정) 시간이었는지, 대충 ‘필수적이지 않은' 시간에 여학생들은 교실에 남고 남학생들은 운동장으로 축구나 농구를 하라고 쫓겨나간 적이 있다.


그렇게 여학생들만 따로 남은 교실에서 ‘성교육’을 한답시고 ‘낙태’ 영상이 틀어졌다. 이 기억이 흐릿흐릿한 성교육 시간 중에 그나마 선명히 기억나는 이유는, 바로 그 영상을 보던 친구들의 반응 때문이다.


임신중절을 위한 도구들이 체내에 들어가자 뱃속에 있는 태아는 마치 도구를 피해 여기저기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 중에서는 충격을 받아서 영상에서 눈을 못 떼는 친구도,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우린 여기까지만 보기로 합시다.

나는 별 반응 없이 차분히 영상을 보는 소수의 사람 중 하나였다. 누가 봐도 그 태아는 낙태를 ‘당하고’ 있었는데, 저런 태아가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엔 너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구를 피할 정도의 지각이 있는 상태라면 출산도 가능한 상태 아닌가? 그럼 임신중절 수술 대상이 아닐진대, 왜 산모의 목숨도 위험하게 굳이 수술을 하나?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그래선지 별 감흥이 없었다.


결국 그 태아의 말로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전혀 안 나지만,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SNS상의 담론을 보고 있으면, 그 ‘낙태’ 영상은 전국적으로 여학생들에게 적잖이 많은 충격을 안겨준 영상인 듯했다. 그것도 대개의 경우 여학생들만 따로 영상을 봤다고.


이제서야 희미하게 다시 생각나는 그 옛날의 한 시간은 꽤 많은 이들에게 선명한 기억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내가 갖고 있는 감흥보다는 더 심각하게, 그리고 불필요하게. (이서아)



2. 야한 생각 없이 자위에 성공하려고 노오오오오력했던 사람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필자는 폭주하는 호르몬과 경건한 영성 사이에서 갈등하던 흔한 청소년이었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 매번 유혹에 쓰러지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보편적인’ 고민이었고, 그것을 해소해주고자 교회에서는 수련회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전반적으로 ‘교회에서 한 것 치고는’ 그렇게 이상한 내용의 성교육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일단 그놈의 ‘순결캔디’는 없었으니깐.


교회치고는 꽤나 개방적인 내용들이 많았는데, 먼저 ‘성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값지고 소중하고 즐거운 것이다’ 전제를 깔고 갔다. 그 이후에는 ‘(남자의) 자위행위가 건강상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등에 대한 궁금증을 의학적으로 접근했고. (결론은 별 영향이 없다는 것이었고 필자는 안도했다)


그러나 그 성교육이 아직 미스테리로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성교육의 결론, 바로 ‘자위행위를 해도 좋으나 음란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출처: SNL KOREA
확인만 한 거야 확인만

저 말을 들은 순간의 충격과 의문을 기억한다. 음란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자위행위를 하라. 이건 ‘자위는 괜찮지만 야동은 안 된다’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저 개념이 성립하는가 하는 의문이 곧추섰고, 살짝 주변을 돌아보니 방 안에 있는 모두가 다 그래 보였다.


그래, 백보 양보해서 이 가르침이 나오는 경위는 이해할 수 있다. 이분들 입장은 그러니까 성과 성감은 긍정되어야 하는 것이고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또 허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님 말씀에, 음욕을 품기만 해도 마음으로 간음한 자라고 하셨으니까.


그래서인지 그렇게 낸 결론이 너무나도 기이하고 위태로웠다. 우리는 일심동체로 ‘그럼 대관절 어떤 마음으로 자위를 해야 하나’ 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딱히 물어보기도 또 우리끼리 토론하기도 몹시 ‘뻘’하여 그냥 다들 가만히 있었다. 교회에서 그렇게 하라는데, 라는 마음으로 필자도 몇 번인가 ‘음란한 생각 없는 자위’를 시도해보았다. 물론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이쯤 되면 대체 그게 가능하긴 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누구라도 이것을 단 한 번이라도 해낸 분이 계시거든 제보 바란다. 그 가르침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지. (초점이탈)



3. 가정통신문 1건이 고등학교 성교육의 전부였던 사람


알고 보니 내가 나온 중학교는 꽤 수준이 높은 학교였다. 당장 성교육에 대해서도 그랬다. 교육용으로 개조한 버스가 학교에 오면 순서대로 한 반씩 들어가 그 안에서 성교육을 받았던 일이 있다. 스킨십의 종류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해 주는데 아마 손잡기-포옹하기-키스-애무-성관계의 5가지로 얘기했던 것 같고, “여러분은 사귀는 사람이 생기면 어디까지 하고 싶냐” 하는 질문도 받아 봤다. 네 몸은 너의 것이니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 애인과 상의해서 하고 싶은 만큼만 하라는 이야기를 해줬던 것 같다.


그때 온 버스가 어디서 온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안에서 배운 것들은 지금 떠올려 보니 꽤 선명하다. 기초적인 피임법도 배웠는데, 콘돔 끼우는 법을 직접 보여주고, 만져볼 수 있게 해준 후, 물티슈로 손 닦고 나가면 된다고 했던 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마 당시로서는 진보적이고(?) 획기적인(?) 성교육을 중학교 때 받았던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본 성교육이라는 것은… 물론 개판이었다.

출처: 청소년성문화센터
우린 그저 운이 좀 안 좋았던 거라고 생각합시다.

명목상으로마저도 성교육 시간이랄 것이 없었다. 기억나는 성교육? 딱 하나 있다. 가정통신문 한 장이었다. 써 있는 말인즉 남학생들은 성욕을 잘 주체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성 교제를 하던 여학생이 공부에 집중도 하지 못하고 고민을 거듭했더라는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개뿔 웃기지 말라지. 그 이성 교제를 해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당시 사귀던 ‘남자’애보다는 내 성욕이 더 강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공부를 방해받은 건 내가 아니라 그 ‘남자’애였을 텐데.


큰 강당에 애들 모아 놓고 순결교육이라도 시켰으면 차라리 나았겠는데, 그런 생색 치레마저 없었다. 이성 교제는 학칙으로 금지된 학교였고, 고3 남자 선배가 여자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훔쳐보고 있는 걸 걸려도 ‘고3 스트레스가 오죽했으면’ 같은 식으로 어물쩡 처벌 없이 넘어가는 곳이었으니.


그 가정통신문은 아마도 ‘그러니 연애 따위 하지 말고 대학 가서 알아서 해라’ 하며 끝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과연 이런 가정통신문이 대학 가서 건강한 연애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가 생각해 보면… 아 생각하지 말자 다들 알잖아. (Sein)



4. 모든 것을 덮어두고 쉬쉬하던 학교 출신


나는 고등학교 때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아닌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성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기억에 남지 않는 성교육을 받았거나 둘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결국 둘 다 성교육을 안 받은 거나 마찬가지니 그닥 중요하진 않다. 왜 성교육이 없었냐고 묻거든 그건 잘 모르겠다. 다른 중요한 일들로 바빴거나, 다들 알아서 잘 하리라(?) 여겼던 것이 아닐까.


어쨌든, 혹은 그랬기 때문에, 당시의 교육받지 못한 10대 후반의 건장한 사나이들은 넘치는 활력과 타오르는 본능으로 은밀히 여자친구를 만들고 아찔한 스캔들을 빚어 여기저기 흩뿌리고 다녔다. 농밀한 염문들이 머리를 들고나와서 골치깨나 아팠던 학교 수뇌부의 지도 방향은 적절한 성교육이 아니라… 오히려 화끈한 계엄령 선포였다.

출처: 중앙일보
우리가 교직원이 되면 이런 건 좀 원점 재검토합시다.

불건전한 행위를 하다 적발된 이들은 약하게는 일정 기간 동안 기숙사에서 퇴출되었고, 강하게는 권고전학이라는 형장의 이슬로 산화해 다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게 효과가 있었냐고? 그런 탄압이 먹힐 리가 없지 않은가? 야동을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그들은 방법을 찾아냈다. 호르몬으로 불타는 청년들이 언제나 그렇게 해 왔듯이.


학교 지하실, 기숙사 구석, 깊숙한 심연 아래 드나든 자취도 없는 다목적실에서. 통제가 강할수록 그들은 더욱 진한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위태위태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갤노트7 수백 대가 버젓이 학교를 활보하는 격이었다.


그때야 큰일은 없었지만, 누가 알겠는가. 이미 여러 건 터졌는데, 학교가 엄정하게 잘 덮어두신 덕에 나만 모르고 지나간 걸지도. (JJ)



5. 졸업식 날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순결상’을 받은 사람


내 황금 같은 중학생 시절은 남학교에서 허비되었다. 내 주변의 인간들은 하루종일 뭔가를 비꼬고 싶어 했고 무엇을 보아도 섹스를 떠올렸다.


일본어를 배우던 3학년 때, ‘気持ち良い’라는 단어가 수업 때 나왔는데 동창들은 그 단어를 일본 야동에서 이미 들어 알고 있었고, 내 본명은 그 단어와 발음이 비슷했다. 그래서 어둠의 다크니스를 품은 힙합 갱스터가 꿈이었던 한 중학생은 1년 내내 ‘기모찌’로 불리는 망신을 당해야 했다. 그 와중에 일본어 선생은 이 모든 정황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저 쓰게 웃으며 지켜보기만 했다.


빨리 이 학교 떠나서 기모찌 소리 그만 듣자는 일념으로 블랙넛처럼 찌질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졸업을 하게 되었는데, 교내 방송이 날 방송실로 호출했다. 방송에서 나오는 내 이름을 듣고 조건반사로 ‘기모찌’를 외친 놈들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고 방송실에 가니, 이게 웬걸. 잠시 후 있을 실내 졸업식 중 우수자 시상식 때 나가서 상을 받으라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 봉사상이니 개근상이니 그럴싸한 것을 받기로 예정되어 있었을 때 내가 받게 될 상의 이름은… ‘순결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욕만 나온다. 난 순결 우수자였다! 쓔ㅣ발!

출처: 사단법인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
우리는 우리 조카 자식 손주들에게 이런 것 주지 않기로 합시다.

상을 받자마자 방송실을 나와 교실로 돌아가는데 기분이 복잡했다. 세월이 지나 곰곰이 곱씹어보니, 순결선행상이라는 상장과 메달을 받은 사람이 여럿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은 분노도 부끄러움도 아닌 아찔함을 느낀다.


내가 받은 중학교 3년의 공교육은 “앙~기모띠”의 쾌감이 얼마나 왜곡되고 조작된 형태의 ‘기분 좋음’인지는 가르치지 않았고, 단지 몇몇 범생이들을 시상해서 “순결”을 부러워하게 만들면 그 모든 모순과 허위를 모른 체해도 된다고 믿는 교육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하필 내가 ‘순결상’을 받아야 할 이유는 뭐였을까. 설마, 단지, 별명이 ‘기모찌’였어서? (기모찌)


원문 : TWENTIES TIMELINE / 작성 : 안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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