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할 줄 몰라?

조회수 2018. 3. 27.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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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 내 방에서 밥 먹자. 내 방은 601호야.

제대 후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던 스물두 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때 눈을 돌린 곳은 전공이었던 러시아어. 마침 아버지 친구가 마련해 준 기회로 벨라루스라는 나라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현실은 냉정했다. 혹독한 추위와 열악한 생활환경,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도무지 늘지 않는 러시아어까지. 모두가 나를 비웃는 듯한 강박 관념까지 생겼다.


그때 내게 손 내밀어 준 이는 큰 키에 웃는 모습이 시원시원한 중국 친구 '천취'였다.


“네가 요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요리할 줄 몰라? 오늘 밤에 내 방에서 밥 먹자. 내 방은 601호야.”


이후 그는 내게 멋진 형이자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감기라도 걸리면 종류별로 약을 사다 주고, 성탄절마다 선물을 챙겨 주었다. 


“건강에 좋은 거야.”라며 정체불명의 중국 음식을 줬다. 그가 없었다면 6년간의 벨라루스 생활은 삭막했으리라. 그의 방은 마음의 안식처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날만큼은 웃음소리도, 구수한 음식 냄새도 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601호 방문을 열자 며칠은 굶은 듯한 그가 희미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이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대화가 필요 없었다. 그를 위해 처음으로 요리했고, 말없이 밥을 함께 먹었다. 그렇게 우린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은 진짜 친구가 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우리는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왔다. 종종 연락할 때마다 그는 웃으며 말한다.


“네가 요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요리할 줄 몰라? 오늘 밤 내 방에서 밥 먹자. 내 방은 베이징에 있어.”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최규환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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