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선물한 그릇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조회수 2018. 3. 21. 11: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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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을 못 찾으면 여행은 없던 일로 하자며 엄포를 놓고 집을 나왔다.

거제도로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친정에서 출발할 계획이라 전날 미리 가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한데 설거지하다 일이 터졌다. 얼마 전 내가 선물한 그릇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물으니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슈퍼를 운영하는 엄마는 평소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했다. 청소부, 우유 배달원, 심지어 위층 여관에 묵는 손님들까지 누구나 슈퍼에 들르면 따뜻한 커피로 온정을 나눴다. 음료수 하나 팔아 얼마 남는다고 저러나 싶어 다투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내가 사 준 것만큼은 나눠 주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그릇이 사라진 것이다.  엄마는 절대 주지 않았다고 했지만 목소리에 확신이 없었다. 기분이 상한 나는 그릇을 못 찾으면 여행은 없던 일로 하자며 엄포를 놓고 집을 나왔다.


엄마에게 서운하고, 작은 일을 들쑤셔 크게 만든 스스로에게 화가 나 차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 무심코 휴대 전화로 그릇 주문 내역을 확인했다. 맙소사, 내가 개수를 헷갈렸던 것이다. 얼굴이 화끈거려 바로 달려갔다.

  

“엄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야단맞을 각오를 했는데, 엄마는 담담히 내 변명을 들어 주었다.


다음 날, 거제도 가는 길에 엄마 고향인 고성을 지났다. “외할머니 얼굴 보고 갈까?” 하니 부모님은 무척 좋아했다. 읍내에 들러 할머니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잔뜩 사서 외갓집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반가워했다.


때마침 지나가던 이웃이 우리를 보고 들어왔다. 할머니는 한 명씩 소개하더니 우리가 사 온 간식거리를 이것저것 품에 안겼다. 이웃이 떠나자마자 엄마가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먹으라고 사 왔더니 다 주면 우야노.”

순간 어젯밤 일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딸 마음은 다 같은가 보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송은지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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