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진 한 장 멋지게 찍어 줘 봐요."

조회수 2018. 3. 6.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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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뒷모습 대신 환하게 웃는 아저씨 사진을 찍었다.

얼마 전 옛 물건들을 뒤적거리다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빗자루를 들고 환히 웃는 한 아저씨 사진이었다. 머리가 조금 벗겨지고 인상이 좋았다는 것 말고는 아저씨의 이름 석 자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사진을 본 순간, 따뜻한 위로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뭉글하게 솟아올랐다. 나는 어느새 그날로 돌아가 있었다.


그때 난 첫사랑과 헤어진 뒤 가슴 아파했다.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못 이뤘다. 친구들과 가족이 위로하고 걱정해 줘도 그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빛도 소리도 없는 어둠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가장 빛나던 젊은 날을 함께한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내다 갑자기 그의 뒷모습이 그리웠다. 사진으로라도 남겨 둬야겠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정신없이 택시에 올라 그의 집 근처에서 기다렸다.


출근하는 그가 보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를 불러 세우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것이 가슴 아팠다.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찍으려고 울면서 카메라를 든 순간,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학생, 혹시 뭐 심부름 아르바이트 그런 거 해요?”

돌아보니 인상 좋은 아저씨가 빗자루를 들고 식당 앞에 서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당황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저…….”

“나도 사진 한 장 멋지게 찍어 줘 봐요.”

우물쭈물 대답을 못 하는데 아저씨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뒷모습 대신 환하게 웃는 아저씨 사진을 찍었다.


내 얼굴이 많이 안돼 보였나 보다. 아저씨는 밥이나 먹고 가라며 날 식당 안으로 데려갔다. 뭔가 홀린 듯 들어가 앉아 있는 내게 아저씨는 청국장과 밑반찬을 가져다주며 천천히 먹으라고 한 뒤 주방으로 사라졌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삼켰다.


나오면서 밥값을 내밀자 아저씨는 아직 영업 시작 전이라며 한사코 받지 않았다. 나는 나중에 사진을 드리러 오겠다고 말한 뒤 슬그머니 만 원짜리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나왔다.


집에 돌아온 뒤, 나는 조금씩 말도 하고 웃을 수도 있게 됐다. 돌아보면 위로라는 건 어디에서 어떻게 받을지 알 수 없는 것 같다. 아저씨가 내어 준 청국장 한 그릇으로 나는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큰 위로를 받았다.


세월이 흘러 나는 결혼을 했고, 그때 그 식당도 사라졌다. 사진을 가져다 드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너무 죄송하다. 아저씨가 어디에선가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라며, 이제야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아저씨의 사진을 다시 찾으면서 새삼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나도 누군가의 기억에 따뜻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김오희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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