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졸업할 수 있을까?

조회수 2018. 3. 9. 17:59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에프를 준다고 하셨는데 정말일까?

대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2학기 초에 급히 취업했다. 수강 신청한 과목 교수님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취업계를 제출하고, 시험이나 과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하겠다고 사정을 말했다. 대부분 이해해 주었고 나도 회사 생활하는 틈틈이 과제를 했다. 하지만 유독 한 교수님만 미리 얘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점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겁주려고 그러나 생각해 봤지만 실제로 나와 같은 상황에서 졸업하지 못한 선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반드시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한 필수 과목이라 포기할 수도 없었다. 교수님에게 찾아가고 전화하고 메일도 보냈지만 역정만 낼 뿐 학점을 줄 수 없다는 뜻은 완강했다.


미리 양해를 구해도 모자랄 판에 취업한 뒤 찾아갔으니 교수님 입장에선 불쾌했을 것이다. 내 잘못을 통감하면서 만회할 방법을 생각했다. 그 수업은 매 시간마다 과제를 내야 했다. 나는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에게 물어 매주 과제를 제출했다.


회사 측에 양해를 구하고 중간고사도 치렀다. 특히 기말고사 때는 신입 사원 연수 후 실무에 투입돼 바빴던 시기라 퇴근하고 공부하느라 밤을 지새웠다. 이런 상황에서 불성실한 답안을 제출했다가는 교수님 심기만 더욱 불편하게 할 듯해 열심히 노력했다. 


기말고사를 치른 뒤 출근하면서도 ‘정말 졸업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졸업 생각밖에 없었다. 졸업을 못하면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했고, 한 과목 때문에 등록금을 또 낸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학기 내내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


마침내 학점 발표 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넷 창을 바라보았다.

‘에프(F)일까? 에프를 준다고 하셨는데 정말일까?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아니야. 내 잘못이니 겸허히 받아들이자. 하지만 등록금은 또 어떻게 마련하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학사 행정 사이트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학점을 확인한 순간,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에이(A)였다.


그 뒤 교수님의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자네만큼 날 괴롭힌 사람은 없으며,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한 학생에게 학점을 준 것도 교수 생활 시작하고 처음이라고 했다. 


교수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매주 과제를 내고 시험에 빠지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내가 보낸 메일 중 한 문장이었다고 했다. 대학교 졸업식에서 어머니에게 학사모를 씌워 드리고 싶다는, 못난 자식이 되지 않도록 도와 달라는 말이었다. 나는 약속대로 졸업식 날 어머니와 찍은 사진을 교수님에게 보냈다.


대학 졸업반일 때 했던 그 걱정은 기우라기보다 ‘꼭 해야만 하는 걱정’이었다. 그만큼 간절했고 그래서 결과가 더 감동적이었다. 


혹 지금 걱정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걱정만 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할 행동을 시작하라고. 물론 걱정할 일이 없는 게 가장 좋지만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진부한 말이 어쩌면 가장 보편적인 진리가 아닐까.


이 글을 빌려 나를 졸업시켜 준 교수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전찬무 님의 사연입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