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아저씨가 애처로워 울컥했다

조회수 2017. 12. 21.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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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든 사람은 나도, 가족들도 아닌 아저씨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부도가났다. 나는 여러 달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한 채 실업자가 되었다.


모아 둔 돈도 다 떨어져 급히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했다. 아는 분 소개로 하루에 10만 원씩 받고 일주일간 간병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아르바이트치곤 높은 보수라 넙죽 큰소리치고 찾아간 곳은 서울 일원동에 있는 의료원이었다. 원래 간병하던 아주머니가 집안에 일이 생겨 일주일간 임시로 봐주는 일이었다.


환자는 50대 초반 아저씨로, 어느 회사 이사로 일했는데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쳐 한순간 심장이 멈췄다. 뇌가 손상돼 몸이 마비되어 산소 호흡기를 낀 채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목에 연결된 호스로 죽을 넣어 주어야 했다. 내가 갔을 땐 다행히 상태가 호전되어 산소 호흡기를 떼고 손발의 신경이 되살아나는 중이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링거를 살피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욕창을 막기 위해 몸을 돌려 주는 방법 등을 배웠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결정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중환자라서 까딱 잘못했다간 큰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간병인 경험도 없지 않은가?


“헉헉.”

가쁜 숨을 내쉬는 아저씨와 단둘이 있으려니 두렵기도 했다. 내 할 일을 마치고 열한 시 즈음 한숨 돌리며 책을 보다 잠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다닥. 다다.”

이상한 소리에 깨 보니 아저씨가 목을 뒤로 젖히며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나는 재빨리 당직 간호사를 불렀다.


“도대체 간병인이 뭐하시는 거예요? 큰일 날 뻔했잖아요.”

아저씨 목에 연결된 호스에 낀 가래를 빼 주어야 하는데 깜빡하는 바람에 호흡 곤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비위가 약해 기저귀를 갈 때마다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한 적도 여러 번. 나는 점점 지쳐 갔고, 아저씨를 대하는 손길도 거칠어졌다. 일주일이 빨리 지나가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내 바람과 달리 아주머니는 일주일만 더 봐 달라고 했다. 마지못해 계속하는데 아저씨 가족들이 찾아왔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아저씨는 가족들에게 외면당했다. 잠시 화장실 다녀오는데 아저씨 형제들과 부인이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보험금을 서로 관리하겠다는 것이었다. 보험금이 나오기 전에는 잘 찾아오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말이다.


아저씨는 눈을 꼭 감은 채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렸다.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말소리는 알아들었던 것이다. 나는 가족들을 병실에서 몰아냈다. 불현듯 아저씨가 애처로워 울컥했다. 가장 힘든 사람은 나도, 가족들도 아닌 아저씨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저씨, 모두 갔어요. 이제 눈뜨세요.”

아저씨가 조용히 눈을 떴다. 두 눈에 슬픔이 가득했다. 그렇게 아저씨 마음을 이해하자 간병하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아저씨를 대하는 손길이 부드러워졌고, 빨리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틈틈이 팔다리를 주물렀다. 그러곤 아저씨 귀에 이어폰을 끼워 음악을 들려주었다. 아저씨는 좋아하는 클래식이 나오면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때론 신문이나 책도 읽어 주었다. 

“경제가 나아질 것 같아요?”라고 물으면 아저씨는 눈을 한 번이나 두 번 깜빡였다. 한 번은“ 그렇다.” 두 번은“ 아니다.”라는 대답이었다.


나는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다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늦게 얻은 하나뿐인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가슴이 찡했다. 하지만 초등학생인 아들은 아픈 아버지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가족들의 결정에 따라 한 번도 병실을 찾지 않았다. 


아저씨 부인에게 전화해서 아들을 보고 싶어 한다고 하니, 식물인간처럼 있는 사람이 어떻게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느냐며 엉뚱한 소리 하지 말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주머니가 돌아왔고, 나는 아저씨 곁을 떠나야 했다. 그동안 정들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아저씨와 눈으로 대화하는 법, 음악을 들려주거나 신문 기사를 읽어 주면 좋아하는 것을 알려 주었다. 아주머니는 보름 사이 아저씨가 많이 호전되었다며 놀라워했다.


아저씨 손을 잡고 작별 인사했다. 아저씨는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불만족스러울 때 보이는 행동이었다.


“아저씨, 저 가요. 힘내서 꼭 일어나세요. 아저씨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가족들도 달라질 거예요. 그러니 절대 용기 잃지 마세요.”


몸을 일으키려는데 맞잡은 아저씨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약한 힘으로나마 처음 내 손을 잡은 데다 아저씨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더욱 겸손해졌다. 인생은 무엇을 누리고 사느냐보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후 아저씨는 예전처럼 건강한 모습은 아니지만 휠체어를 타고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조종철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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