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영수증인데, 줄 세워 지갑에 넣고 다닐 건 뭐람.

조회수 2017. 9. 19. 15: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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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춘문예에 보낼 글을 봉투에 넣어 탁자에 두면 아빠는 그걸 들고 출근해 회사 앞 우체국에서 부쳤다.
해마다 신춘문예에 응모했지만 결과가 시원찮았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글쓰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틈날 때마다 쓴 글을 모아 계속 투고했다.
아빠는 이런 나를 조용히 응원했다.
우리 부녀에겐 둘만의 약속이 있었다. 내가 신춘문예에 보낼 글을 봉투에 넣어 탁자에 두면 아빠는 그걸 들고 출근해 회사 앞 우체국에서 부쳤다.

“딸, 방금 빠른 등기로 보냈다.”

문자 메시지를 받으면 등단 소식을 듣고 좋아할 아빠 얼굴이 떠올라 꼭 당선되길 바랐다.

한데 올해도 어김없이 떨어졌다. 속상한 마음을 추스르다 문득 아빠가 결과를 물어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접수만 해 주고 잊어버렸겠지 싶었다.
어느 날, 외출하려는데 가진 돈이 없어 아빠에게 전화했다. 필요한 만큼 지갑에서 꺼내 가라고 했다.
아빠 지갑을 여니 한편에 빽빽한 흰 종이 뭉치가 있었다. 신춘문예 응모할 때마다 우체국에서 받은 영수증들이었다.

'그냥 영수증인데, 줄 세워 지갑에 넣고 다닐 건 뭐람.'
툴툴거리면서도 아빠에게 고마웠다.
아직 서투른 습작생,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일하기 싫다고 불평만 했던 철부지 딸인데 아빠에겐 남달랐던 모양이다.

내 노력으로 두툼해진 지갑 덕에 늘 부자처럼 산다는 아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힘내야겠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박세미 님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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