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되던 해에 집이 망했다
스물셋 되던 해에 집이 망했다.
우리 가족은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이사했다. 대학생이던 나는 반강제로 자취생이 되었다.
첫 번째 방은 학교 근처 고시원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취직에 성공해야 했다. 침대, 책상, 냉장고로 꽉 차 발 디딜 곳 없던 작은 방. 낮에도 해가 들지 않는 방에 홀로 남아 태어나 처음 '살아남는 법'을 생각했다. 방을 비우고 나올 때쯤, 정수리에는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탈모가 진행 중이었다.
취직 후 회사 근처로 이사했다. 이태원 번화가에 우뚝 선 회사는 늦은 밤까지 반짝였다. 거기서 내려다보면 내가 사는 곳은 꼭 달동네 같았다. 취직만이 나를 밑바닥에서 구원하리라 믿은 게 잘못이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밤마다 맥주를 마시며 불면에 시달렸고 내장 지방, 장염, 위염과 친구가 되었다.
심신이 시들해질 무렵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근처에 시장과 울창한 공원이 있는 곳으로 방을 옮겼다. 일찍 퇴근한 날이면 밥을 해 먹고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삶의 화두도 바꾸었다. '살아남는' 것 대신 '살아가는' 쪽으로.
그렇게 방향을 옆으로 조금 틀었을 뿐인데 숨통이 트이고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그즈음 만난 남자 친구와의 결혼으로 마침내 마지막 자취방을 떠났다.
돌이켜 보면 세 개의 방에서 살 때 나는 청년이었다. 고민을 정면으로 맞닥뜨렸고 답을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이제 곧 배 속의 아기가 태어난다. 이 아기가 겪을 청년의 시간은 어떨까?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김혜인 님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