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삼십 분 넘게 앉아 있던 단골 할아버지

조회수 2017. 8. 15. 11:25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우리 제과점 단골손님 중 아흔 살 정도 되신 할아버지가 있었다.
우리 제과점 단골손님 중 아흔 살 정도 되신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늘 제과점을 지나쳐 공장 문을 두드렸다.
“할아버지, 거기 아니고 이쪽으로 오세요.”
매일 말씀드려도 소용없었다. 나는 빵을 만들다 말고 할아버지를 모시러 갔다. 그사이 빵이 탄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할아버지는 오백 원짜리 팥빵을 좋아하셨다. 팥빵과 물을 드시며 삼십 분 넘게 앉아 있을 땐 불편하기도 했다. 한 명 앉을 자리밖에 없어 할아버지가 계시면 빵을 포장할 곳도 마땅치 않아 여러모로 일이 늦어졌다. 손님에게 가라고 할 수도 없어 답답할 때가 많았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텔레비전을 틀어 달라, 물 좀 달라, 내 얘기 들어 달라며 이것저것 요구하셨다. 사정을 설명드려도 통하지 않았다.

한번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 할아버지 안 오시면 좋겠다. 일에도 방해되고 우리를 꼭 감시하시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러자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런 마음으로 빵 장사하는 거 아니야.”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싶어 불만이 쌓였다. 할아버지가 가시면 어머니랑 말다툼까지 했다.

몇 주가 지났을까?
자주 오시던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매일 가게를 찾을 땐 귀찮았는데 오랫동안 안 보이시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늘은 할아버지 오시겠지?”
나와 어머니는 날마다 서로에게 물었다. 팥빵이 먹음직스럽게 잘 나오면 할아버지 생각이 더욱 커졌다. 미운 정이 무섭긴 한가 보다.

그러던 중 제과점에 온 할아버지 딸이 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 아버지, 이 집 팥빵을 제일 좋아했는데 이제 드실 수가 없네.”
가슴이 철렁했다.
갑자기 미워했던 할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팥빵을 드시며 흐뭇하게 웃던 하회탈 같은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 팥빵을 먹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그 뒤로 팥빵을 만들 때마다 할아버지 얼굴이 아른거린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팥빵 세계 최고로 만들겠습니다. 할아버지 계신 곳까지 전해지도록 말이에요. 옹졸했던 저를 용서해 주세요.”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고동석 님의 사연입니다.

현재는 지원하지 않는 기능입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