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주고 싶으니 누가 못 가져가게 해 주세요

조회수 2017. 8. 10. 11: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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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철이를 불러 일기내용을 말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속초 초등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그 시절만 해도 속초는 피난민이 모여 살아가난했다. 어촌이라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렸는데, 허탕 치는 날이 잦아 굶는 일이 다반사였다.


당시엔 고학년인데도 글을 읽지 못하는 학생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글공부를 시킬 요량으로 일기를 쓰게 했다. 하루는 눈물로 쭈글쭈글해진 동철이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글씨가 번져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동철이를 불러 일기내용을 말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동철이는 난처해하더니 조심스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등굣길에 시래기 한 뭉텅이가 떨어진 게 보였단다. 순간 병든 어머니에게 시래깃국을 끓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교에 가야 해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한데 수업내내 시래기가 생각나 선생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래기는 어머니에게 주고 싶으니 누가 못 가져가게 해 주세요.'라고 몇 번이나 기도했다. 동철이는 '그러나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도 돼요.' 라고 마음에 없는 말까지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그 자리로 달려가니 다행히 시래기는 그대로 있었다. 된장 항아리 바닥을 긁어 국을 끓이자 좀처럼 음식을 못 먹던 어머니가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며 두 그릇이나 비웠단다. 그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려 했지만 어머니 앞이라 참다가 일기를 쓰며 펑펑 운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뻐근해져 말했다.

“씩씩한 줄만 알았는데 미안하다, 동철아. 내가 좀 더 살폈어야 하는데…….”

하마터면 모르고 넘어갔을 동철이의 아픈 마음을 일기로 알 수 있어 다행이었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양춘옥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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