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이곳이 향긋한 밥 냄새로 가득하길

조회수 2017. 8. 8.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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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라는 말이 맴돌던 어느 저녁, 학부모 두 분이 냄비와 큰 쟁반을 낑낑대며 들고 왔다.
태권도 선수였던 남편과 낯선 도시 외곽에 작은 체육관을 열었다. 사범을 쓸 형편이 되지 않아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함께 꾸려 가기로 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건만 사흘이 지나도 등록하는 아이가 없었다. 둘이 멍하니 앉아 있다 문 닫고 들어오는 게 일상이었다. 밤낮으로 전단을 돌리며 최선을 다했지만 세상살이가 얼마나 호락호락하지 않은지 느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에! 첫 수련생이 등록했다. 첫사랑의 추억만큼이나 설레고 벅찼던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둘이서 여자아이 한 명을 열심히 지도했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아이는 우려하던 질문을 던졌다.
“우리 체육관엔 저밖에 없어요?”
아이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적당히 둘러댔다.
“다른 시간에 벌써 하고 갔지. 신기하게 넌 친구들 없는 시간에만 오더라.”

그렇게 한 달쯤 흘렀을까. 두 번째, 세 번째 아이가 들어왔다. 하지만 열 명도 안 되는 아이를 데리고 체육관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았다. 포기라는 말이 맴돌던 어느 저녁, 학부모 두 분이 냄비와 큰 쟁반을 낑낑대며 들고 왔다.
“날이 추운데 식사도 제때 못하시는 듯해서요. 따뜻하게 한 끼 드시라고 준비했어요. 동생 같은 두 분이 열심히 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우리 애들도 태권도 얼마나 재밌어하는지!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얼큰한 육개장, 돈가스, 나물 등 한 상 가득 차려온 것이었다. 그 밥상은 쓰디쓴 세상살이에 지친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마음이 담긴 밥 한 끼가 주린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과 밥 한 끼 나누며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 나가길 기대한다. 우리 사는 이곳이 향긋한 밥 냄새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강정하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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